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마 김작가 Jan 03. 2024

15. 어떻게 하면 불운을 행운으로 만들 수 있을까?

: 신속한 해결만이 답은 아니다.

선택이 어려울 때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분이 되고 싶어?"

_정혜윤 [삶의 발명] 2023, 위고


12월 28일 11월 주문을 받고 12월 크리스마스 직전 우여곡절 끝에 고객들에게 올리브유를 발송했다. 의도치 않게 민주는 산타가 되었다. 올리브 유을 발송하는 동안 매일 새로운 사건들이 터졌다. 올리브 농장이 있는 지역이 이탈리아에서도 오지에 들어가다 보니 올리브유 캔 수급부터, 기존보다 2배로 늘어난 주문량 때문에 밤샘 작업으로 농장 식구들이 쓰러지고, 촉각을 다투는 와중에 올리브유를 싣지 않은 픽업차량의 어처구니없는 실수까지. 애간장을 녹이던 지연의 시간들이었다.


민주가 이렇게 맘을 졸이는 동안 몇 주를 기다리던 고객들은 얼마나 애가 탔겠는가? 한국이라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이탈리아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들을 납득시켜야 했기에 민주는 매주 고객들에게 메일을 썼다. 헛웃음이 날 만큼 신박한 사건사고들을 적어 내려 가며 민주도 기가 막혔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메일을 썼다.


지난번 메일에서 말씀드렸죠?
다음 메일은 발송 메일이 될 거라고요.



올리브유 배송을 마치고 민주가 2020년부터 올리브유를 전하기 시작한 이래로 고객들로부터 가장 많은 연락을 받았다. 메일 속 고객들은 민주와 함께 애쓰고 있었다.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 위해 썼던 메일을 통해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 연대의식이 생겼다. 고객들에게 올리브유는 아주 어렵게 도착한 선물이었다. 이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떠한 과정을 통해 한국에 도착했고 얼마만큼의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올리브유 안에는 서사가 담겨있었다.



민주가 전한 이야기는 올리브유를 받은 이들을 통해 다시 전해지고 있었다.


"선물을 줄 때마다 이게 얼마나 힘들게 키워지고
수확되는지 일일이 설명해요."



민주가 지난 시간 공유했던 올리브유의 여정은 비단 민주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올리브유를 선택하고 기다린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올리브유 발송을 끝내고 이제 좀 발 뻗고 긴장을 풀어보려는 찰나 한국에서 통관과 국내 배송을 담당해 주는 파트너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탈리아에서 한국에 도착하고 통관을 거치는 사이 몇몇 박스에서 파손이 생기면서 누유가 발생했다. 파손된 캔은 많지 않았지만 누유로 인해 주변의 박스들이 다 젖어 버린 것이다. 통관 즉시 발송을 하려던 계획이 수정되었다. 살아남은 박스들을 우선 발송을 하고 박스가 훼손된 올리브유들은 모두 재포장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먼저 발송된 올리브유를 받은 고객들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국내 택배량이 폭발했고 설상가상으로 영하 17도의 기록적인 한파였다. 기존의 문제가 없던 박스들도 배송 중에 파손이 발생한 것이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받은 박스가 이미 누유로 인해 젖어있고, 심하게 찌그러져버린 캔을 발견한 고객들.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런데 민주가 받은 파손 발생에 대한 메일 어디에도 분노나 화가 담겨있지 않았다. 메일에는 안타까움이 묻어 나왔다. 어쩌죠... 그렇게 애써 주셨는데 올리브유 캔이 이렇게 되었어요. 마치 자신들의 잘못인 듯 미안한 마음이 글 속에 흘렀다.


어떻게 이런 마음일 수 있을까?



하나의 문제를 넘으면 또 문제가 발생했다. 민주는 원망했다.


왜 나는 단, 하나도 쉽게 되는 것이 없을까?
대체 왜 나에게만  이런 일들이 자꾸 생기는 거야?
이 파손 건을 또 어떻게 해결하라는 거야...


그러나 고객들의 메일을 받은 민주는 같은 상황에서 다른 질문을 해 보자고 생각했다.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내가 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질문을 찾고 또 찾고 그렇게 민주는 질문을 찾았다.


"어떻게 하면 파손과 누유를 좋을 기억으로 만들 수 있을까?"

올리브유뿐만 아니라 지난 시간들 속에서 민주가 경험했던 수많은 불행이 행복으로
 사건사고가 전화위복으로 기억되었던 것처럼 지금의 이 순간도 그렇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민주의 질문이 완성되었다.


어떻게 하면 불운을 행운으로 만들 수 있을까?


민주는 한 분 한 분 연락을 했다. 민주는 이탈리아에 있고 한국과 이탈리아의 8시간의 시차로 민주의 대응은 신속하기 힘들다. 하지만 신속한 해결만이 답은 아니다.


파손건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신기하게 고객들과 민주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스몰토크를 이어갔다. 민주의 올리브유에 대한 건설적인 피드백과 제안도 주고받았다. 그리고 파손건 고객께서 보내주셨던 아름다운 사진. 크리스마스트리와 멋들어지게 조화를 이룬 올리브유 캔이 유독 빛이 났다. 올리브유 캔에 무슨 보정을 한 것인가요? 라는 민주의 질문에 답이 도착했다.


"오일이 새는 바람에 닦았더니 반짝반짝 오일 마사지 효과 톡톡히 봤습니다."



우리의 불운은 행운이 되어 추억과 웃음으로 돌아왔다.


민주의 한국 통관은 시노로지스에서 담당한다. 시노로지스가 맡은 일은 이탈리아 내 운성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과 국내 통관까지이다. 하지만 그들의 인연은 그전부터 이어진다. 민주가 사업을 준비하면서의 서류적인 부분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도움을 주었다. 그 처음의 인연으로 한국 내 택배 발송을 고민을 하던 민주에게 국내 발송을 도와주겠다고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런데 이번 누유와 파손 건은 급하게 연락을 취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방법이 없었다. 민주는 이탈리아에 있지 않은가? 파손 건에 대해 알리면  올리브유를 그야말로 몇 분내로 포장해서 바로 발송했다. 하나를 발송하면 또 누유건이 생기고 하나 발송하면 또 누유건 연락이 오고... 로마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업무가 바쁘실 텐데 이런 일을 부탁드려도 될까? 걱정을 하던 민주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누유가 발생한 손님에게 문자 안내를 드리고 답을 받은 내용을 캡처해서 보냈다. 문자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로마가족 운송팀"이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고객은 오히려 감사를 전한다.


2023년 유독 민주는 팀이 되고 싶었다.

함께 일하고 싶었다.

민주는 이미 팀 속에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고객들과도 하나의 팀이 되어있었다.





2023 마지막 날을 앞두고 민주는 노트북을 펼쳤다. 2021  하나둘 유튜브 구독자들에게 전하던 올리브유를 본격적으로 사업으로 진행해 보고자 처음 사업자를 내고 올리브유를 한국으로 통과시키는 과정은 그야말로 힘겨웠다. 서류 하나를 준비하면  준비할 서류가 튀어나오고  서류마저도 번번이 문제가 생기고 수정하고 추가하면서 민주는 지쳐갔다.  당시에 민주가 셀프 카메라를 찍어 두었다.  일을  해내고 나면 "제가요. 이렇게 힘들었어요!" 하고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찍어두었던 영상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나서 갑자기  영상이 떠올라 다시 보게 되었다. 영상 처음에 민주는 말한다.

youtube@로마가족


지금 이것을 기록하는 이유는
몇 달 뒤, 아니면 몇 년 뒤에 다시 봤을 때,
정말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영상 속 민주는 울고 웃고 울고 웃는다.


youtube@로마가족


그 당시 민주는 실력이 쌓이면 문제들을 척척 해결해 나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주가 레벨업 될수록 역경도 레벨업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은 민주에게 태연함을 선물했다. 이제 민주는 생각지 못한 역경과 답이 없을 것 같은 문제 앞에서 능청스러울 수 있다. 민주의 몫이 아닌 문제는 흘려보내기도 하고 이건 못하겠어요 하고 고백할 줄 아고 '나 좀 도와주세요.' 하고 부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레벨업이라는 것은 어쩌면 혼자 움켜쥔 손에서 힘을 빼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민주는 왜 찍어두었던 영상을 편집하지 않고 그냥 두었을까?


처음 사업을 시작하고 지인을 통해 들었다.

"사람들이 민주 씨가 돈을 밝혀서 보기 싫대요."


처음 올리브유 사업을 시작하고 민주는 자신의 가족이 운영하는 유튜브를 통해 올리브유 주문이 오픈되면 라이브 방송을 했었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라이브를 켜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돈밝히는 민주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영상들은 혼자만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2023년의 마지막 하루를 앞두고 그 시간 속의 민주를 꺼내주고 싶었다.


올리브유 팔길 진짜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올리브 유를 팔면서 이탈리아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올리브유를 팔아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올리브유를 선물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달았다. 올리브유를 팔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올리브유를 팔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웠는지 모른다.


덕분에 정말 많은 기회를 만났고

신나는 경험을 했고

즐거운 사람들을 만났고

2024년 두근거리는 일들을 기획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민주는 돈을 벌었다.


선택이 어려울 때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분이 되고 싶어?"

내가 나 자신을 발견하고 싶은 곳은?
"좋은 이야기 속"

최선의 나로 사는 법은?
"감탄한 이야기에 나를 결합시키는 것"

사는 동안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은?
"자신의 이야기를 찾고 만나고 만드는 것"

_정혜윤 [삶의 발명] 2023, 위고






매거진의 이전글 14. 엄마는 장사를 진짜 잘하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