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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Apr 15. 2024

혜경언니에게

"언니는 저의 인복이고, 인덕이에요."

팬데믹 락다운이 끝나고 테이크아웃만 되던 카페에서 드디어 앉아서 커피를 마실  있게  어느 , 민주는 매일 일하던 카페로 돌아갔다. 집에서만 머물어야 했던 지리멸렬했던 시간 동안 민주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카페에 앉아 홀로 몰입하여  없이 글을 쓰는 것이었다. 글을 쓰다 고개를 드니 건너편 테이블에 아시안 여성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자연스럽게 '한국인일까?'라는 의문을 품었다가 다시 글에 집중했다. 출간 계약을  출판사와 약속한 초고 마감 날짜가 임박했다. 그때 그녀가 민주에게 다가왔다. 조용히 그녀가 물었다.


저기.... 로마가족.... 김작가님....?



잔인했던 코로나의 창궐이 이탈리아를 강타했던 1년 동안 로마에 살던 한국인 대부분이 떠났다. 텅 빈 로마에서 심지어 한국인은 거의 살지 않는 이 동네에서 단골 카페에서 민주를 알아보는 한국사람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혜경언니와 민주의 첫 만남이었다.


혜경언니는 스페인 남편 알베르토의 직장을 위해 로마에 왔다. 그리고 몇 달이 되지 않아 코로나가 이탈리아에 퍼지면서 미처 적응도 하지 못한 로마에서 집밖으로도 나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집에서만 머무는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하루는 남편 알베르토가 혜경에게 유튜브 채널하나를 보여주었다. 로마가족. 로마에서 사는 가족이 하는 유튜브였다. 어쩌다 스페인 남편에게 로마가족의 알고리즘이 닿았을까? 그렇게 일 년 동안 혜경은 로마가족과 내적 친밀감을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민주의 단골 카페는 혜경 커플의 단골 카페기도 했다. 언제나 엇갈리던 그들이 드디어 만난 것이다. 혜경은 민주에게 인사하며, 로마가족이 소개한 카페, 식당들을 모두 방문했다며 감사를 전했다. 이방의 도시에서 이방인 커플에게 로마가족의 맛집 소개는 단비와도 같았다.


코리아 아미 옷을 사랑하던 알베르토


그날을 시작으로 민주와 혜경커플은 매일 카페에서 만났다. 약속을 잡지 않아도 아침 카페에 가면 무심한 듯 알베르토가 민주에게 손을 흔들고 로마 현지인들처럼 사소하고 쓸데없는 매일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는 혜경인 동네에 맛있는 버블티 가게를 소개해주었다. 해 질 녘 민주와 혜경은 처음으로 약속을 하고 만났다. 버블티를 하나씩 손에 들고 동네 공원 잔디에 앉았다.


그날 혜경이 물었다.

"민주 씨, 올리브유 공구를 하지요? 그런데 왜 직접 한국으로 수입을 안 해요? 그러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올리브유를 소개할 수 있을 텐데요."


제가요? 직접? 그걸 어떻게 제가..


"에이~이미 거의 다 했는데, 이탈리아 운송업체만 알아보면 되죠."


혜경은 한국에서 무역업 쪽에서 일을 했다. 그녀는 이런저런 것들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날저녁 민주는 로마가족이라는 상호로 사업자등록을 했다. 그 이후 몇 년 동안 거의 다 했다는 말이 거의 다 못하겠다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매 순간 깨닫는 여정이었다. 이래도 저래도 빠저나 갈 수 없는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고 좌절할 때마다, 혜경은 같은 말을 해 주었다.


거의 다 했네요.
그러니까 그것만 해결하면
이제 끝난 거잖아요?


마치 마법 같았다. 밤새 잠 한숨 못 이루고 머리를 쥐어뜯고 도착한 카페에서 언니의 그 말을 들으면 맞네, 이거만 해결하면 되는 거네. 싶었다. 그렇게 매일 한 뼘씩 나아갔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어느 날, 혜경이 민주에게 말했다.

"민주 씨, 알베르토가 이번에 마드리드 지사로 옮기게 되었어요. 저희 1월 말에 마드리드로 가요."


며칠 뒤, 민주는 혜경과 약속을 잡았다. 민주는 혜경언니에게 밥을 사고 싶었다. 그곳을 꼭 아주 근사한 곳이어야 했다. 언니처럼 우아하고 근사한 곳. 비가 내리를 로마의 어느 골목길에서 둘이 만났다.



식사를 마치고,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민주가 혜경언니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언니, 언니는 저에게 인복이고 인덕이에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인복은 내가 무언가를 할 때, 잘한다고 칭찬하고 북돋아 주는 사람이 있는 거래요. 인덕은 내가 무언가를 했을 때, 그 재능을 하고 한 단계 위로 끌어올려주는 사람이 있는 거래요. 언니는 저에게 언제나 '잘한다'라고 해요. 그 말이 제가 정말 할 수 있다고 믿게 했어요. 제가 어떤 문제에 가로막혀 절대 헤쳐나갈 수 없다고 생각할 때 항상 말해줘요. '거의 다 했네요, 그것만 하면 이제 끝난 거잖아요.' 그 말 덕분에 전 제가 겪은 문제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언니가 아니었음 지난 4년의 과정들을 절대 통과하지 못했을 거예요. 고마워요. 그래서 진짜 멋진 곳에서 밥을 사고 싶었어요."


"민주 씨... 그 말.... 난 그냥 한 말인데, 너무 무책임한 말 아니었나요? 민주 씨, 알베르토와 로마에서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 봤어요. 그 기억에 민주 씨가 있었어요. 아침에 카페에 가면 약속하지 않아도 민주 씨가 있고, 일상의 안부를 묻는 시간들이 우리가 진짜 여기에 받아들여진 기분이었어요. 진짜 로마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코로나 동안 오늘 하루 무사한 것이 너무 중요했잖아요. 그런데 4년이 지나고 보니 정말 매일을 무사히만 보냈어요. 그런데 민주 씨를 봐요. 4년 동안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난 민주 씨를 보며 생각해요. 모두의 24시간이 똑같이 흐르는 것이 아니구나. 누군가의 24시간은 다르게 흐르는구나. 내가 무사히만 하루를 보내는 동안 민주 씨는 계속 성장하고 있었구나. 민주 씨가 4년 동안 이룬 일들을 봐요. 그리고 그 일들을 중 가장 멋진 건, 이안과 이도를 정말 잘 키운 거예요. 저 스페인 문화원에 수업을 등록해 두었어요. 마드리드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수업이 시작해요. 나도 새롭게 24시간을 살아보려고요."


매일 두 아이의 준비물을 깜박하고 간식도 못 챙겨 보내는 날이 허다한 민주는 그날 아침도 딸의 교복치마를 빨지 않아 체육복을 입혀 보냈다. 이봐, 맞잖아. 혜경언니는 민주의 인복이고 인덕이다. 민주도 모르는 재능을 찾아내어 다 잘한단다.


며칠 뒤, 혜경과 민주는 여느 아침과 같이 카페에서 만났다. 달라진 것은 하나뿐이었다. 내일 아침부터는 만날 수 없다는 것. 몇 시간 뒤 혜경과 알베르토는 비행기에 오를 것이다.


민주는 혜경언니를 꼭 안았다.

혜경이 민주의 등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민주는 끝내 참지 못하고 언니의 품에 안겨 울었다.

혜경이 속삭였다.


난 알아요.
민주 씨는 다 해낼 거야.


민주가 무엇을 해날 수 있을지, 언니가 말하는 다 해낼 거라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언니가 그리 말했으니 민주는 다 해낼 것이다.


혜경언니는 로마를 떠났다. 그녀가 마드리드에 도착할 시간이 되자 저도 모르게 민주는 시계를 확인했지만, 따로 연락은 하지 않았다. 둘은 자주 안부를 묻던 사이가 아니었다. 그냥 아침에 가면, 그냥 만났다.



민주는 오늘도 카페로 향한다. 매일 앉던 그 자리에 앉아서 오늘 할 일을 한다. 혜경언니와 알베르토가 항상 앉던 자리는 낯선 이가 앉아 있다. 잠시 그 자리를 응시하다 민주는 자신의 일로 돌아갔다. 일을 마치고 휴대폰을 보자 언니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짧은 문장.


여기 와서 첫날 갔던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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