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오늘 중학교에 입학했다.
나 요즘 예민하다.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아들, 이안은 12개월이 되었을 때부터 이탈리아 어린이집을 다녔다. 어린이집 2년, 유치원 3년, 초등학교 5년을 같은 학교에서 다녔으니 11살 이안의 생애 10년을 한 교육기관에서 보낸 것이다. 어린이입 시절의 아토피, 유치원 시절의 한국말과 인종차별, 초등학교 시절의 이탈리아어 어휘까지 매 시절마다 굵직한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함께 통과했다.
두 밤을 자고 나면 이안은 중학교에 입학한다.
이안만 10년을 한 교육기관에서 보낸 것이 아니다. 나 역시 육아의 무대가 한 곳이었다. 익숙한 환경, 익숙한 학부모, 익숙한 선생님들을 떠나 시작되는 새로운 챕터가 부담스럽다. 누군가에겐 내가 추진과 도전에 특화되어 보이겠지만 어쩌면 나는 유독 낯섦과 불안에 취약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빨리 벗어나게 해 줄 해결점을 찾기 위해 무던히 애쓰는 사람이 아닐까? 여하튼, 안 그래도 예민한데 중학교에서 도착한 메일을 열어보고 불안은 극에 달했다. 안내 공문 중에 무려 A4용지 11장짜리도 있었다.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영원하길 바라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 나다. 답답한 마음에 아이들과 함께 한 잔 하러 집을 나섰다.
단골 바에서 각자 좋아하는 음료를 시키고 마주 앉았다.
"이안, 중학교 가는 거 기분이 어때?"
"설레,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잖아."
"중학교 가면 공부가 더 어려워지는 어쩌려고?"
"나 중학교부터 모범생이 된다고 했잖아. 나 공부 많이 할 거야."
"엄마가 요 며칠 예민한 거 느꼈어?"
"당연하지, 그걸 못 느끼면 사람이 아니지. 나 때문에? 내가 중학교 가는 것 때문에?"
"엄마는 조금 무서워. 엄마가 잘 못하면 어쩌지?"
"내가 잘하면 되지."
"학교에서 공문이 왔는데... 말이 다 어려워."
"초등학교랑 좀 달라?"
"그냥 새 학교 가는 게 좀 무서워."
엄마, 나도 무서워.
그런데 안 무섭다고 생각하면 되지.
무서움을 설렘으로 바꾸는 거야.
"중학생 이안이 엄마 잘할 수 있을까?"
"그렇게 잘할 것 같지 않은데..... 나랑 다른 엄마들이 도와주면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함 밤을 자고 나면 이안은 중학교에 입학을 한다.
오늘은 내일 입학을 앞두고 학교에서 디지털기기 사용에 대한 설명을 위한 학부모 모임이 있다. 간단하게 저녁을 차려주고 집을 나서는데 이안이 나를 불렀다.
엄마!
못 알아듣겠으면 손을 들고
못 알아 들었으니까,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이야기해.
그래도 못 알아듣겠으면 녹음을 해.
집에 돌아와서 나랑 함께 들어보자.
학교로 향하는 내내 웃음이 났다. 이안이 나에게 한 말과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안의 초등학교 입학식날, 내가 이안에게 해주었던 말이다.
이안, 모르면 물어봐.
무조건 물어봐야 해.
네가 물어보지 않으면 네가 모른단 걸 아무도 몰라.
그리고 모르는 것이 당연한 거야. 알지?
모르면 물어봐.
무조건 물어봐야 해.
https://brunch.co.kr/@mamaian/185
학부모 모임에서 열심히 듣고, 마지막엔 손을 들고 질문도 했다.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고 알아듣고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을 했다. 이탈리아 학부모들 사이에서 큰 소리로 질문하던 나 자신 쫌 멋있었다. 마치고 몇몇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만 헤매는 것이 아니다. 다들 처음 접하는 시스템에 어리둥절이다. 내가 이방인 엄마라서 허둥댄다고 생각했을 때는 어깨가 한없이 바닥으로 내려가더니 이건 어느 엄마나 겪는 일이다 싶으니 어깨가 제자리를 찾았다. 이 얼마나 깃털처럼 가벼운 어깨인가? 엄마들 대화 중에 끼어들어 의견을 보태기까지 했더니 나의 어깨가 하늘로 치솟아 날아올랐다.
오늘 이안이 중학교에 입학을 한다.
이안의 새로운 시작이다. 이탈리아 중학생들도 죄다 검은 옷을 입어서 이안과 함께 까만 티셔츠, 까만 바지, 까만 양말을 샀었다. 하지만 어제 이안은 좋아하는 초록색 바지에 수없이 반복해 보았던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주인광 마일즈 모랄레스 티셔츠를 입기로 했다. 이른 아침 이안과 buz를 나눠 끼고 애니메이션에서 우리 둘이 가장 좋아하는 Post Malone의 Sunflower를 들어며 걸었다.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 극 중에 마일즈가 피터 파커에게 묻는다.
"스파이더 맨이 되는 건 언제 알아요?"
알 수 없어.
그게 전부야.
자신을 믿고 뛰어.
입학식이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선배들이 무대에 나와 연주를 시작하고 Cold Play의 Adventure of a Lifetime의 기타 리프가 흘렀다. 역시 인생은 모험이다. 교장 선생님이 말했다.
"오늘 여기 앉아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깨달으셨을 겁니다. 아이들이 너무나 많이 자랐다는 것을요. 어제까지 우린 이들을 bambini(어린이들)이라고 불렀지만 오늘부터 우린 이들을 ragazzi(청소년들)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을요."
중학교가 시작되자 선생님을 부르는 명칭도 바뀌었다. Maestra(선생님) 이 아니라 Professoressa(교수님)이다. 이탈리아는 초등학교까지 아이가 혼자 다닐 수 없다. 한국인 엄마로 참 이해하기가 힘들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휴대폰을 가질 공식적인 이유가 없으니 현시대엔 아주 큰 장점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등하굣길에서의 아이와의 대화가 참 즐거웠기에, 또한 그 시절이 너무나 짧다는 것을 알기에 돌이며 보면 무척 귀하고 소중한 시간들을 지켜준 셈이다. 이안은 이제 휴대폰이 생겼고 혼자 등하교를 시작할 것이다. 어제까지 애기얘기하던 아이들이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하루아침에 분위기가 달렸다. 나의 중학교 시절도 이렇게까지 생의 대 전환점이었나? 돌이켜본다.
다음 날, 이안은 생애 첫 홀로 등교를 위해 집을 나섰다.
하교도 혼자 하겠다고 데리러 오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다. 학교에 잘 도착했다는 이안의 연락을 받자마자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고 이내 쌍무지개가 떴다.
[입학식 잘했냐? 부모라 말고, 좋은 든든한 파트너라 생각하면 좋겠다.]
손자의 중학교 입학을 축하하는 외할아버지의 문자에는 우리가 파트너라 쓰여있다.
모험을 할 수 있는지 언제 아냐고?
알 수 없다.
파트너를 믿고 뛰어들자.
이안이 중학생이 되었다.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