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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w Oct 17. 2021

집을 구매하는 한 가지 방법

 그야말로 부동산 공화국이다.

 이전까지 나는 부동산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전세로 살고 있는 집에서 큰 불편함을 못 느꼈을 뿐더러, 집주인도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집을 옮길 필요가 없었다. (사실상 집 상태나 재계약에 대해 신경조차 쓰지 않으셨고, 그것은 가장 위대한 친절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주차문제로 이웃 주민과 작은 마찰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전셋집의 환경을 돌아보았다. 간접적으로는 그 마찰의 원인이 집 주변 환경에 있는 것 같았다. 이곳은 20년이 넘은 아파트인데, 오래전에 만들어져서인지 한 가구당 주차가능 대수가 0.5대 미만이다. 한 가구당 한 대의 차도 댈 수 없는 것이다.

평소에는 그냥
 ‘이중주차가 많구나. 오후 9시가 넘으면 주차 자리가 거의 없어지니 빨리 집에 들어가야겠다 !’
 라고만 생각하고 무심하게 지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니 이것은 삶의 큰 불편이자 이번 주차 갈등의 핵심 원인이었다. 이후, 전셋집에서 살면서 겪었던 몇 가지 불편들이 함께 떠올랐고, 집을 옮기는 일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가 살고 싶은 집은 어떤 모습인가?
집을 사야하나? 다른 전셋집을 구해야 하나?
지금 경기 상황에 집을 사도 괜찮은 것인가?
집을 산다면 어떤 조건을 고려해야 하나?
부동산을 어디에서 어떻게 알아봐야하고, 자금 조달은 문제 없나?


 한꺼번에 많은 것을 고민해야 했다. 집을 구하는게 정말 큰 일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어디서부터 고민해야 하는지 고민의 순서 자체도 혼란스러웠다. 삶의 모습, 자금 문제, 직장 문제 등이 뭉텅이로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지인 한 분이 조언을 해주었는데, 좋은 출발점이 되었다.


“앞으로의 삶에서 추구할 가치를 먼저 정립해보세요. 그리고 그 가치에 맞는 집을 생각해보세요.”
“보통 집을 구매하면 빚을 져야하고 그 빚에 삶이 묶입니다. 따라서 최대한 후회하지 않는 구매를 해야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후회하지 않는 삶이 선행되어야 해요. 결과적으로는 삶에서 중요시 여기는 가치가 명확해야 후회하지 않을 수 있구요.”


 그래, 구구 절절 맞는 말이다. 앞으로 몇 년간 살게 될 집을 사는(Buy) 것이라면, 일단 그 기간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지(live)에 대해 먼저 생각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래야 후회를 최소화 할 수 있을테니까. 이 과정에서 금전적인 문제는 나중으로 미루고 자유롭게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우리가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가치를 구현해줄 집은 어떤 환경이어야 하는가?


중요가치 정립 및 이를 구현할 집의 환경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다.


직장 근접 : 좋든 싫든 향후 몇 년간은 직장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집과 직장이 가까워야 한다. 출퇴근은 대중교통으로 최대 1시간(편도) 이내

자연 근접 : 멀지 않은 곳에 산책을 하거나 쉴 수 있는 자연이 있어야 한다. (공원, 하천, 산 등)

복잡하지 않음 : 건물로 둘러싸여 있지 않아야 한다. 골목으로 너무 많이 들어가면 안 된다. 유동인구가 너무 많은 지점이나 핫 플레이스까지 거리가 가까우면 교통이 편하겠지만, 그럴수록 주변은 복잡해진다. 따라서 어느정도는 거리가 떨어져 있어야 하겠다. 가구당 주차대수도 1대 이상이어야 한다.

비교적 새집 : 입주년차가 5년 이하이면 좋겠다.

주변 유해 환경 없음 : 모텔, 유흥가, 하수처리장, 가축 사육 농가 등이 없었으면 좋겠다.

환금성 : 집을 산다고 해도 거기에서 영원히 살것은 아니다. 따라서 나중에 팔거나 세를 놓을때 실거주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 직장이 밀집된 지구 (서울에서는 여의도, 강남, 종로)와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가까워야 한다. 소형 평수가 덜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길 수 있지만, 스스로에게는 크게 중요치 않은 가치를 정리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브랜드 아파트 프리미엄 : 건물이 잘 지어졌다고 한다면 브랜드 아파트 여부는 중요치 않다. 오히려 프리미엄으로 비용만 많이 든다. (물론 환금성을 고려한다면 브랜드 아파트가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자금사정에는 그런 것 따질 여유가…)


 이렇게 정리해 놓으니, 이제는 틀이 잡힌다. 지역 범위도 대략적으로 답이 나온다. 위의 가치들을 고려해 지역 범위를 정하고, 그 안에서 나오는 매물을 살펴본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가장 큰 장애물인 ‘자금사정’과 마주해야 한다. 만약 빚을 내야한다면, 대략 몇 년 안에 갚을 수 있을지 추정해본다.


매물 후보군에서 구현되는 가치의 종류와 정도, 그리고 필요 자금


 가치끼리 서로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자연이 가까운 것을 선호하는데 직장도 가깝길 원한다. 직장에 가까우려면 주로 역세권에 있어야한다. 역세권에 있으면 대체로는 복잡한 곳에 집이 위치한다. 한편, 역세권이면 실수요자가 많아 나중에 나가게 될 때 집이 잘 팔리지만, 반대급부로 집을 살때는 비싼 값을 주어야 한다.
즉, (자연 근접, 비복잡도, 자금 조건) vs (직장 근접, 환금성) 이러한 구도의 알력싸움이 있다. 이를 직관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각 항목마다 10점 만점으로 점수를 부여해 보았다.



 점수를 부여하여 합산하면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 물론 점수 자체에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 없지만, 그럼 우리가 살 집을 고르는데 아무 주관없이 100% 객관적일 수가 있나? 객관적으로 평가 해보려 최선을 다할 뿐이다.

 자금상황은 빚을 다 갚을 수 있는 햇수로 따졌다. 한 없이 큰 빚을 내면 한 없이 좋은 집을 살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삶의 많은 부분이 빚에 묶이게 된다. 집 하나 사자고 아까운 인생의 시간들을 내다버릴 수는 없다. 그래서 자금 사정은 7점 이상, 즉 5년 이내에 빚을 상환할 수 있는 조건에 맞아야 한다고 못 박았다.

위와 같이 가치 항목에 대한 점수를 부여하고 합산했더니, (가)동 A아파트가 가장 적합했다. 이렇게 대상이 정해지면 이제 남은 것은 디테일이다. 원래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했던가… 가장 혼란스러운 단계가 남았다.



대상의 디테일 정보 살피기


 대상이 정해졌으면(여기서는 우리가 정한 (가)동 A 아파트가 대상이다), 그 대상의 실제 매물들을 비교해 보아야 한다. 네이버 부동산, 부동산 114, 한경부동산 등 여러 부동산 포털에 실제 매물들과 가격이 올라온다.

매물을 올려놓은 공인중개사를 최대한 돌아다니며 직접 가서 집의 내부, 외부, 주변 환경을 살펴보면 많은 도움이 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집주인이 똑같은 매물을 여러 부동산에 올려놓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모르고 서로 다른 부동산을 통해 집주인에게 계속 연락이 가게 되면 집값이 더 올라갈 수 있다. 매수자는 많은 정보를 얻겠다고 여러 공인중개사를 돌아다니지만, 정작 매물은 다 똑같은 거라 집주인이 본인 집에 대한 수요가 많은 줄 알고 집값을 올릴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제 막 분양하는 새 아파트 분양권의 경우는 연락이 계속 오면 집주인은 권리금(프리미엄)을 계속 높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괜찮은 매물이라고 생각되면 마음속으로 찜을 해두고 믿음이 가는 한 공인중개사를 정해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

 우리도 웹상의 지도로만 보지 않고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해 보았다. 또한 입주자 카페에서 실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기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실제 매물을 볼때 고려해야할 세부 기준들을 추렸다. 이 기준들로 매물의 장, 단점을 파악하면 좋은 매물이 어떤 것인지 대략 정해진다.


층수 :

저층 장점(역으로 바꾸면 고층 단점) : 가격이 저렴, 아이들이 뛰어도 됨, 비상시 빠른 탈출이 가능.

저층 단점(역으로 바꾸면 고층 장점) : 겨울 배수구 동결로 인한 역류 가능성, 주변 소음, 담배 냄새, 햇볕이 다른 건물에 가리는 문제, 뷰가 좋지 않음, 프라이버시 문제, 수요자 비선호

남향 여부 : 햇볕이 오래 지속, 계절별 태양의 고도 변화에 따라 여름엔 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 수요자들이 더 선호함

단열재 여부 및 온도차 고려 : 발코니에 단열재와 이중창을 사용하지 않으면, 확장형 아파트의 경우 결로현상이 생길 수 있음 (페인트 벗겨짐, 곰팡이 생길 가능성)

지하주차장 환풍시설 여부 : 지하주차장 인데 환풍시설이 안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함.

걸어다닐때 소음 발생 여부 : 방의 모든 구석구석을 걸어다녔을때 장판 등의 잘못된 시공으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지는 않는지 확인해야 함.

건설사의 부실시공 가능성 : 부실시공 케이스 검색을 통한 건설사 Rule Out, 특별히 대량으로 공급을 하는 건설사에서 부실시공 케이스 많았다.

건설 형태 : 필로티 구조 여부 - 지진에 취약함

공간 활용도 및 내부구조 : 최근에 지어진 건물일수록 공간 활용도가 좋은 편

주변 편의시설 접근성 + 알파 : 마트, 슈퍼, 카페, 체육시설, 도서관, 문화시설


 세부 기준들을 고려하다보면, 이들 중에도 서로 충돌하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예를들면, 나는 화재나 지진 등의 극단적인 비상사태를 두려워하여 층 수가 너무 높지 않았으면 했는데, 아내는 햇볕과 전망을 더 중요시여겨 고층을 선호했다. 충돌이 발생하면 어느 것을 더 우선시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는 나는 비상사태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기로 했다.

 또한 같은 아파트라도 세부 기준들이 하나씩 좋을 것으로 채워질 때마다 가격이 올라간다. 남향은 동향 혹은 서향보다 비싸고, 고층이 저층보다 비싸다. 세부 기준들을 고려하면서도 자금상황을 의식하게 된다. 심지어 세부 기준들 때문에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자금 상한을 훌쩍 넘어 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어느정도는 포기하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참고로, 부동산 포털의 매물들을 보다보면 혹 하는 매물들이 보인다. 예를들면, 남향이 동향보다 1000만원 비싼 것이 보통인데 남향이고 1000만원이 싸게 쓰여져 있는… 이런 매물들은 진짜라기 보다는 낚시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공인중개사에 수 십번 전화하다보면 세상에 거짓말 치는 사기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공인중개사 본인들도 매수자들과 전화 연결이 일단 되어야 얘기할 기회가 생기니 그런 거겠지만, 매수자 입장에서는 허탈감을 느끼게 되고 오히려 불신만 생긴다. 이런 행태는 좀 고쳤으면 하는 바이다.


적정가격 및 유리한 구매시점 추정


 집을 판단하는 큰 기준과 세부 기준들을 세웠고, 여러번 직접 가서 눈으로 보기도 했다. 또한 부동산 포털에 올라오는 매물을 지켜보다가 괜찮을 매물이 나올 때마다 공인중개사에 전화하는 과정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약간은 지치는 것 같다. 이때를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스스로가 지치기 시작하면 좋은 가격에 부동산을 살 확률이 적어진다. 매수자가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면 그냥 빨리 사서 고민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이렇게 되면 비싼 가격을 치르게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우리 부부도 길고 지루한 과정을 지났고, 서로를 잘 다독여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다. 그럼에도 물론 실수가 있었지만…

 모든 투자가 그렇듯 좋은 가격에 좋은 물건을 사는 것은 예술의 영역이다. 부동산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가격을 추정하는 몇 가지 방안을 생각해 보았다.

 먼저는, 국토교통부에서 제공하는 부동산 실거래가 데이터를 찾아보는 것이다. 과거 몇 년간 부동산 경기가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 상황에 반응하여 관심있는 대상의 실거래가 추이는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본다. 이 과정을 통해 앞으로의 부동산 경기에 대해 매물이 대략적으로 어떻게 반응할지, 적절한 가격대가 어디일지도 추정해볼 수 있다. 내 지인의 경우는 윗집과 아랫집에 문을 두드려서 집을 구매할때 어느정도 가격대에 샀는지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둘째로는, 매도자의 입장에서 불리할 타이밍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우리의 상황을 설명해보자면, 분양권을 구매할 계획이었고 입주지정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보통 분양받는 사람들은 초기 계약금(통상 분양 금액의 10%)을 내고, 중도금(분양 금액의 약 60%)은 대출을 받는다. 그런데 입주지정일이 되면 대출받은 중도금을 갚아야 한다. 만약 갚지 않으면 연 8~10%의 이자로 하루하루 연체이자가 계산된다. 만약 완전히 분양권 전매 거래만을 목적으로 분양권을 샀던 주인이라면, 중도금을 내기 전에 반드시 팔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최근 정부의 부동산 규제의 일환으로 4월에 아파트 공시지가 상승이 예고되어 있었다.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기 때문에 다주택자는 세금 상승에 대한 위험부담이 더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팔 계획인 분양권 주인들은 부동산 거래심리가 더 악화되기 전에 파는 것이 유리했다. 시간은 매수자인 우리의 편이었다. 입주지정일 직전까지 잘 기다린다면 권리금(프리미엄)이 떨어질 것은 분명해 보였고 실제로 그 예상은 잘 맞았다. (그럼에도 중간에 완벽히 기다리지 못하고 실수를 하여 약간의 손해를 보았다.)

 이외에도 좋은 매수가격 타이밍을 설정하는 여러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왕도는 없어 보인다 부동산거래 경험을 쌓고, 강한 멘탈을 기를 수밖에… (사실 강한 멘탈은 강한 자금력에서 나오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정리하며


 살아갈 집을 정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결혼과 비슷한 과정이다. 남편과 아내의 삶의 가치가 서로 맞아야 행복한 부부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처럼 거주자와 집의 케미가 맞아야 행복한 거주생활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인의 조언을 시작점으로 받아들여 삶에서 중요한 가치부터 정했고, 그에 맞는 집을 찾으려 노력했다. 집을 평가하는 큰 가치 기준들을 먼저 설정했고, 이후에 매물에 대한 세부적인 평가 기준을 정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가 더 중요시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가치의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대상을 정한 후 가장 좋은 구매 타이밍이 언제일지도 고민해보았다.

 집을 구하기까지 이처럼 진지한 숙고와 인내의 과정이 필요했다. 과정이 복잡하고 신경쓸 것이 많아 힘들었지만, 후회할 여지가 거의 안 남아서 만족스럽다. 빚을 지게 되었지만, 마음과 몸이 힘들때 쉼을 제공해 줄 집을 얻었다. 이 집은 앞으로 우리와 미래의 우리 자녀의 성장에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 솟고 복이 흘러넘치는 터전이 되길 기대해 본다.


Reference


Photo by Stephan Bechert on Unsplash
Photo by Hans-Peter Gaust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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