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중학교 1학년때 처음 만났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어린이티를 막 벗은 그때 모습으로 말입니다. 아직도 처음 그 친구를 만났을 때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합니다. 담임 선생님이 그 친구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으러 가던 참이었는데, 창틀에 햇살을 받으면서 귀엽게 웃고 있는 그 친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친한 친구사이가 되었고 중학교에 이어서 또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 친구는 건설회사에 입사를 했고 입사를 하자마자 아프리카 지역 현장에 발령을 받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프리카 현장 파견 근무가 얼마나 힘든지 감조차 잘 오지 않았던 20대 후반의 나이에. 우리는 그때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해서 의욕과 자신감으로만 차 넘쳤던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경험도 없었고 해외에 대한 정보도 없었습니다. 큰 조직에서 하라고 하는 일에 열심일 뿐일 때였습니다.
서로 연락도 못하고 지내고 있던 어느날, 그 친구가 갑자기 의식 불명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프리카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풍토병에 걸렸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건강했던 친구였기에 더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가 근무했던 대기업 건설회사에서 어떻게 조치를 취했는지 자세하게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것보다 저는 다시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다는 소식에, 평생을 병원에서 누워 지내야 한다는 소식에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무기력하기도 했습니다. 친구의 부모님 얼굴도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병원에 20년 가깝게 누워있던 친구가 지난 주말에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쩌면 불편하게 병원에서만 누워있는 것보다는 편한 곳에서 영면을 하는 게 그 친구에게는 더 나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위로를 해보았지만, 아직도 아무것도 믿어지지 않는 비현실 같기만 합니다.
사는게 바쁘다는 핑계로 면회를 가보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더 많이 더 자주 생각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세상의 흔한 말들로 설명이 안 되는 현실이 원망스럽지만, 원망보다는 미안한 마음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