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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쉬플랏 Sep 08. 2021

계획자의 여행법

오늘의 단어: 여행

여행 전날이면 열에 아홉 밤을 지새운다. 공항버스를 놓치진 않을까, 환전한 거 찾고 제시간에 탑승할 수 있을까, 면세품은 잘 왔겠지? 비행기에서 못 잘 것 같은데 너무 힘들면 어떡하지... 즐겁자고 가는 여행인데 왜 이렇게 걱정할 일은 많은지. 지갑이나 여권, 티켓을 분실할까 봐 가방을 열두 번도 더 여닫는 건 기본이다. 


그래서일까, 여행 그 자체보다 좋은 건 여행을 계획하는 날들이다. 표는 가장 쌀 때 미리 끊어놓고 그 동네는 뭐가 맛있는지, 들러볼 미술관은 있는지 덜 알려진 포토 스폿은 어딘지 찾아보는 시간. 눈이 빠지도록 비용과 시설, 위치가 모두 합격점 이상인 숙소를 찾는 고생 혹은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몇 번의 여행 끝에 깨달은 건 아무리 일정을 널널하게 짜도 계획한 일을 전부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꼭 가고 싶던 식당에 못 가거나 기차 시간이 꼬여 일정이 어긋나면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건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닌데. 그런 실망감을 몇 번 이겨낸 뒤에는 다행히 조금 더 편하게 마음먹는 방법을 터득했다. "지금 이걸 못 먹고 못 본다고 죽지 않는다." "아쉬움을 남겨 두면 나중에 또 오게 될지도 모른다." "계속 짜증 내면 친구의 기분까지 망친다." 하고 계속해서 되뇌는 것이다.


피서객이 줄어드는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제주도에 들러볼 생각이다. 이탈리아 풍의 정원이 있는 식당에 서핑보다 평화로운 패들 보드 타기, 나무 한 그루가 멋지게 서 있다는 적당한 높이의 오름까지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일도 벌써 많지만 최대한 천천히, 여유롭게 움직이자고 다짐한다. 제주는 생각보다 넓어 갈 데가 많은 동시에 그야말로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으니, 여유로운 여행을 연습하기엔 최적의 장소일 것이다.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여행 계획보다 여행 그 자체가 더 즐거운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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