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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쉬플랏 Sep 07. 2021

과일이 맛있다면 여름은 두렵지 않아

오늘의 단어: 과일

더블린에 있었던 2014년 여름. 바닷가 언덕으로 하이킹을 갔던 날, 이탈리아 친구가 손이 까매지도록 따준 야생 블랙베리를 나도 입이 까매지도록 받아먹었다. 언덕에서 아무렇게나 자란 과일을 따 먹는 건 부모님 세대에나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씻지도 않고 입 안 가득 밀어 넣은 블랙베리가 그렇게 새콤달콤할 줄이야. 그 시기를 생각하면 눈앞에 그려지듯 떠오르는, 가장 그리운 장면 중 하나다.


지난주에는 이르게 출시된 백도 말랑이와 초당 옥수수를 주문했다(옥수수는 과일이 아니지만 초당 옥수수는 달콤하니까...). 지지난주에는 경주 사는 친구가 추천한 체리를 네 팩 올려다 언니네와 나눠 먹었고, 자두랑 살구도 먹고 싶지만 어쩐지 신맛 강한 과일은 점점 못 먹겠다. 과일 주스 가게에서 조각내어 파는 수박은 점심 후 디저트로 동료들과 몇 번 사다 먹었다. 아침 운동을 하러 옥상에 올라갈 때마다 만나는 화단의 블루베리는 하루가 다르게 짙은 파랑으로 여문다. 맞다, 나는 과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과일 덕후고 덥고 습한 여름도 맛난 과일만 있다면 견딜 만한 사람이다. 겨울엔 해산물, 여름엔 역시 과일 아니겠는가. 비가 많이 내린 요 몇 해는 과일이 전부 비싸고 싱거워서 아쉬웠지만 말이다.


돈을 얼마나 벌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먹고 싶은 과일을 돈 생각 안 하고 양껏 사 먹을 만큼"이라 대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나름대로 소박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돈을 벌며 미래를 설계해 보니 결코 만만한 목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목표를 약간 수정했다. 한국에서 나는 제철 과일을 (양껏은 아니더라도) 골고루 맛볼 수 있을 만큼은 벌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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