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 행복
나는 기본적인 행복 지수 세팅이 좀 낮게 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통 사람의 평소 세팅이 5이고 좋은 시기를 지날 때 7이나 8, 힘든 일이 있을 때 2,3 정도가 된다면 나의 경우 기본 세팅이 3 정도, 시기나 상황에 따라 위로는 1~2, 아래로는 3~4 정도의 변동이 있다. 전에는 이런 내 기질에 죄책감을 느꼈다. 스스로를 감사할 줄 모르고 불만만 많은 나약한 인간으로 규정했고, 주변 사람들도 종종 내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뭐가 부족해서, 왜 다른 아이들처럼 발랄하지 않니,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 불행한 시기에 죄책감까지 겹치면 극단까지 생각이 치달았다. 꼭 살아야 하나, 불행한 데다 나약하기까지 한데.
다행히 지금은 불행하지 않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생겼고 친구를 자주 만나거나 술을 마시지 않아도 대체로 의욕이 있는 상태다. 물론 우울한 날도 찾아오는데, 죄책감이 들려고 하면 크게 고개를 흔든다. 지금은 그럴 이유가 있고 그럴 만한 시기라 우울한 거야. 우울해하는 데 자격은 필요 없어. 시간과 함께 이 기분은 지나갈 거야. 그 정도로 마음이 달라지지 않으면 가끔 "아, 어쩌라고." 하고 소리 내어 말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내가 느끼는 불행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불행한 기간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대체로 불행하지 않아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건지 그렇게 했기 때문에 덜 불행한 것인지 인과관계는 확신하지 못하겠지만, 상관관계는 분명 있다.
전에는 행복이라는 게 화창한 늦봄, 장미가 만발한 정원에서 까르르 웃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 장면에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포기한 채 살았다. 어쩌면 남들의 행복은 정말 그런 모양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서른이 넘어 찾은 나의 행복은, 낮게 깔린 구름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차를 마시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