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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네오 Oct 10. 2020

스물셋에 결혼한다던 꼬마와 만났다

우린 그 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요즘 어떻게 지낸대?


중학교 친구를 만났다가 우연히 민주의 이름을 들었다.

잊고 지냈던 순수한 얼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민주에 관한 질문거리를 입 밖으로 쏟아내고 싶었지만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아는 게 너무 없었다.

결국 간단한 안부를 물어수밖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12년. 민주와 다시 만날 '명분'을 찾았다.

(12년 전 이야기, '스물셋에 결혼한다던 꼬마는 지금 어디 있을까'를 링크로 걸어둡니다.)




졸업 이후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지만, 우리는 친구라는 명목 하에 어떻게든 이어져 있었다.

버디 친구부터 시작해 싸이 일촌, 페북 친구, 인스타 팔로워로 연결을 유지해왔다.

쭉 같은 동네에서 자라서 그런지 '함께 아는 친구'가 겹쳤고, 플랫폼이 여러 번 바뀌었어도 민주의 존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연결과 연락 사이에 갭이 있었을 뿐.


중학교 3년 동안의 연락 공백은 생각보다 컸다. 난 집 근처 남중에 배정됐다. 휴대폰이 없었기에 당연히 연락처도 몰랐다. 민주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3년간 남아들에 둘러싸여 나름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초등학교 친구들이 그립진 않았다. 가끔 민주 소식이 궁금한 정도랄까.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으로 진학했다. 방과 후 농구, 야구를 한답시고 몰려다녔던 친구들과는 뿔뿔이 흩어졌다. 서른 명 남짓한 반에서 익숙한 성별은 열 명 정도밖에 안 보였다. 또래 여자 아이와 같이 있는 환경이 낯설었다. 안 그래도 적응할 게 많은 고등학생인데 나는 어쩌다 성별까지 적응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내가 지금까지도 남중, 남고, 여중, 여고와 같은 성별 분리 학교를 싫어하는 이유다.) 나를 둘러싼 환경에 온전히 익숙해지는데 1년 정도가 걸렸다.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건 물론이고(이 점은 민주도 마찬가지였다.) 민주의 존재조차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정신없는 학교 생활을 보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멀어져 있었다. 졸업할 때까지 정말 한 번도 못 봤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아니오'. 보긴 봤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나 쉬는 시간에 복도를 지나다 특유의 낭랑한 웃음소리와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민주는 내게 옆모습을 딱 한 번 보여줬다. 그날 처음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걸 알았다. 반가운 마음에 직접 반 앞을 찾아가.. 진 않았고, 당시 유행하던 싸이 일촌을 신청했다.


네트워크 상에서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만날 일은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만큼 우린 서로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오랜만이라서 반가운 초등학교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12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던 건 우리가 딱 그 정도의 관계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는 여전히 내 소중한 추억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중학교 동창의 입에서 민주의 이름을 들었을 때 깨달았다.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았다.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남겼다.




안녕! 나 기억해?


싸이 일촌을 맺듯 서로의 인스타 팔로워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초연결사회의 장점이랄까. 누군가의 행복한 일상들로 가득한 인스타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현실이 초라해지는 것 같아 앱 이용에 거리를 뒀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북스타그램에 꽂혀 간단한 책 리뷰를 올렸는데 마침 민주의 게시글과 성격이 비슷했다. 몇 번의 좋아요가 오고 가니 용기가 생겼다.


"안녕! 나 기억해?"

    "ㅋㅋㅋㅋㅋ당연하지!"

"얼마 전에 강인이 만났는데 동창회에서 너 봤다고 해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어ㅎㅎ"


우린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연락처를 교환했고, 카톡으로 넘어갔다.

분명 처음에는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는데, 한 번 말문이 트이니 댐 안에 가둬놓았던 물이 뿜어져 나오듯 폭발적이고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초저녁부터 새벽 한 시가 가까워질 때까지 그동안 묵혀놓았던 수많은 시간 중 '일부'를 공유했다. 마치 초등학교 교실에서 한바탕 떠들고 온 것 같았다.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버디버디'에서 '카카오톡'으로 메신저가 바뀌었다는 점만 빼면 이전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민주의 직장은 우리 학교 근처였다. 덕분에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인사치레로 끝나지 않게 됐다. 몇 주 뒤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고, 스물셋에 결혼한다던 꼬마와 만났다. 가을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차가운 입김을 머금은 겨울이 오고 있었다.


휴학 중이라 학교 갈 일은 없었지만, 공모전 핑계를 대고 나왔다.(이후 공모전 작품 완성에 민주의 도움을 받았으니 완전 거짓말은 아니었다.) 몇 년을 다녔던 익숙한 횡단보도 건너편에 민주가 있었다. 오랜만이었음에도 한눈에 알아보는 게 어렵지 않았다. 얼굴은 그대론데 몸만 커져버린 느낌이 이런 거였구나. '짜식 잘 컸네.' 민주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까?


평소 자주 들렸던 파스타 집에 갔다. 살짝 늦은 저녁이라 가게 안은 한산 했다. 조용해서 좋았다. 이것저것 물어볼 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밀려오는 배고픔도 참을 수 없었다. 우린 쉴 새 없이 음식을 흡입했고, 본능에 집중했다. 그래, 원래 식당에선 식사가 메인이니까.


근처 카페에서 아까 못한 얘기를 마저 나눴다. 민주는 근처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잘 어울린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전에도 한 번 들은 것 같다. 그럴 리가 없는데. 초등학교 이후 서로에 관해 얘기한 건 처음인데. '학급 문고'가 머릿속을 스쳤다. 우리에겐 4학년과 5학년 때 만든 학급 문고가 있었다. 거기에 민주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썼었다. 초등학생 때 꿈을 실현시키다니 이 아이 대견하잖아. (이쯤 되니 궁금해진다. 내 꿈은 뭐였을까? 꿈을 쓰긴 한 건가?)


분명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다양한 정보가 오간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편한 친구와 만나면 늘 그렇더라. 실없는 소리만 주고받아도 힐링되고 행복해진다. 12년 만에 만난 민주와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한 건 기우였다. 그것만으로 다행이었다. 다만 이 날은 유독 민주가 피곤해 보였다. 하루 종일 일하고 왔으니 힘들 수밖에.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다음을 기약했다.


집으로 돌아와 '문제의 학급 문고'를 찾기 위해 온 방을 뒤졌다. 책장 아래쪽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문고 두 권을 발견했다.


우린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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