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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만 Oct 29. 2023

누가 자식 키우는 걸 농사에 비유했지?

프로필을 바꿔야 한다. 2017년에 처음 시작했을 때니까 프로필 내용이 지금과 다르다. 그대로 두기엔 거짓말 같아서 볼 때마다 거슬린다. 내 글을 보러 와주신 분들께 오해를 사는 일이니까. 선인장 가시에 박힌 것처럼 자꾸 신경 쓰인다. 그래도 못 바꾸는 이유는 선뜻 내키지가 않아서다. 못 바꾸는 게 아니라 안 바꾸고 있다. 아직 안 바꾸고 3달째 머뭇거리고 있다. 이유는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서. 모르는 이유는 미련이 남았다. 그때 그 시절, 우리 아기들이 나와 눈 마주치고 서로 자기가 엄마 글 쓰는데 그림 그려준다며 투닥거렸던 그 모습이 아른거려서다. 프로필을 지금에 맞게 바꾸면 그때 애들과의 추억이 잊힐 것 같다.


나: 얘들아, 엄마 글 쓰려고 해. 이젠 나도 좋아하는 거 해보려고

아들: 그래? 엄마 책 쓰는 거야?

나: 아니 '브런치'라는 곳에 합격? 했어. 일단 거기에 쓰려고

아들, 딸: 와~~~  엄마 축하해!!

딸: 엄마 혹시 그림 필요해? 그려줄까?

아들: 나도 그려줄게 나도!

나: 웅 넘넘 좋지! 고마웡~~


6년 전 프로필:

4명이 같이 삽니다. 초등 2명, 40대 두 명. 우리 가족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림은 아이 '둘'이 그립니다.



4명이 같이 사는 건 맞다. 그것만으로도 스스로 기특하다. 이혼하지 않고 잘 버텼고, 모두 살아있다. 그런데 늙었다. 나도 남편도. 남편은 벌써 50세. 나도 50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들은 청소년이다. 중2와 고1. 한참 호르몬분비가 왕성한 격동의 시기라고 해야 하나. 앞머리엔 그루프를 말고,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바르며 귀엔 피어싱까지 하고 있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독립해서 나갈 때를 위해 나와 이별을 준비하는 시기일까, 그래서 정을 떼야하는?

아이들의 변해가는 모습 하나하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준비를 나름 해왔으니까. 열심히 빼기명상을 하며 돌아보고, 어떤 마음이 있는지 메모장에 적었다. 적은 메모장을 보며 매일 최소한 20분씩은 마음을 버렸고, 마음 그릇을 넓혔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자라든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밥 먹으라는 말에 짜증 내는 아들을 보면 난 아직 멀었구나 싶다.


6년 전 프로필을 쓸 때만 해도 이런 청소년이 될 줄 몰랐다. 엄마에게 연주를 해주겠다며 기타를 한 줄 한 줄 튕기고 있었던 아들 때문에 속이 상하고 한숨 쉬게 될 줄은 예상 못했다.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가도록 신경 써서 이유식해 먹이고, 한살림 식재료로 성의껏 해서 먹였지만 지금은 컵라면을 주식처럼 먹는다.

뽀로로 칫솔을 사주며 이 닦는 습관을 잘 들여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청소년이 되어갈수록 이 습관마저 사라져 가는 모양이다. 하루에 한 번이나 닦으려나.

레고며 공룡인형, 토마스기차를 가지고 놀면 같이 즐겁게 정리했던 아들이었다. 정리하는 습관도 잘 장착했다 싶었지만 고1 아들의 방은 쓰레기장이다. 언제 먹은 치킨인지 닭뼈가 말라서 구석에 있고, 젖은 수건과 벗어놓은 속옷이며 양말은 항상 방바닥에 있다.

책 보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도서관에 출근하다시피 다니고 자기 전에 책 읽어주고 나도 책을 들고 다녔다. 다 소용없는 짓이다. 이젠 책 대신 스마트폰을 쥐고 있다. 



애쓰고 노력한 부모 입장에서 지금의 결과(?)를 보면 모든 게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나. 누가 자식 키우는 것을 농사에 비유했을까? 차라리 농사가 더 명징해 보인다. 날씨라는 변수에 따라 노력한 만큼 수확이 안될 때도 있지만, 자식보다는 노력 대비 얻는 결과가 눈에 보인다. 최소한 예상할 수는 있다.


토마토 모종을 사 와서 베란다에 심었더니 쭉쭉 자라서 방울토마토가 열렸다. 자식을 키우는 게 농사가 맞다면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음식을 해주었을 때, 자신의 건강을 생각해서 채소든 나물이든 생선까지도 골고루 먹는 사람이 되는 게 맞다. 자식 키우는 일은 농사가 아니다. 1000원을 넣으면 1000원짜리 생수가 나오는 자판기가 아닌 건 알지만, 알면서도 기대했던 걸까? 아니면 노력한 만큼 응당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올 거라고 믿었던 오만함일까?


자식은 결과물이 아니다. 나의 내면과 연결되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었다.

자식은 1000원을 넣으면 1000원짜리 생수가 나오는 자판기도 아니었고. 도 내가 바라는대로 되지 않듯이, 자식도 마찬가지라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게 아이를 키우는 일 같다.

아들이 나간 방에 들어가 과자 봉지를 치우며 한숨 쉬는 나는 무슨 마음이었고, 밥 먹으라고 하는 말에 '알았다고!' 짜증 내는 아들 때문에 왜 슬퍼졌는지 돌아보고, 옷장 구석에 숨겨놓은 맥주캔을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모른 척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나에겐 지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 자기 내면을 이보다 더 확실하게 들여다보고 지독하게 후벼팔 수 있는 일도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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