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희 Sep 10. 2023

230910

내 먹거리를 챙기는 삶

230910 내 먹거리를 챙기는 삶


일요일 오전에 느지막이(그래봤자 아홉 시) 일어나 엄마가 싸준 김밥 먹었다. 어제저녁엔 엄마가 끓여준 꽃게탕 먹었다. 김밥도 꽃게탕도 너무너무 맛있었다. 행복해지는 맛이다. 대가리가 까진다는 가을볕은 따깝지만 습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들이치는 선선함에 여름은 서서히 자리를 내어 놓고 있다. 배가 터질 것처럼 배부르게 아침을 먹고 아빠와 성당에 다녀왔다.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시편 95장 7-8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마태오 18장 18-19절)“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는 문장이 스타카토로 꽂히고 이어지는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아리랑의 멜로디로 들린다.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이 새롭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말이 내 마음이 그러면 상대방의 마음도 그렇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어지는 내용에선 ‘간절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잘 살아야 한다, 잘 살아야 한다 이야기하지만 정작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제각각 다른 우리네 모습처럼 잘 사는 방향도 모습도 다를 것이다. 내가 잘 사는 삶은 책임지는 삶, 자립하는 삶이 아닐까 싶다.


배가 너무 불러 점심은 생략하고 오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서둘러 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샤인머스캣도 사고 그냥 포도도 샀다. 과소비인 줄 알지만 과일은 정말 참아지지 않는다. 눈이 돈다는 표현이 맞다. 내가 유럽에 다시 가고 싶은 큰 이유 중 하나도 과일 때문이다. 그때 먹었던 납작 복숭아와 체리의 맛을 잊지 못한다. 체리는 그나마 맛이 비슷하지만 가격 경쟁이 되질 않고 납작 복숭아는 가격 경쟁은 물론 맛 경쟁도 안 된다.


과일만 사서 나오려다 혹시 몰라 야채 코너를 돌다가 치커리도 사고 양배추도 샀다. 둘 다 내가 참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러다 표고버섯이 눈에 띄었다. 매일 중국산만 있더니 오늘은 어쩐 일로 국내산이 있어 냉큼 한 봉지 들었다. 중국산보다 크기가 형편없이 작지만 분명 맛은 더 좋을 것이다. 집에 오자마자 버섯을 제외한 것들을 냉장고에 몰아넣었다. 버섯도 넣으려다 양이 많아 간단히 씻어 꼭지를 따서 가진런히 놓고 있자니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내 손길에 정성이 깃드니 내 마음엔 평화가 깃든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일, 굳이 하지 않아도 좋은 일, 어쩌면 별 거 아닐 수 있는 일에 정성을 들이며 살아가고 싶다. 눈에 불 켜지 말고 소리를 높이지도 말고 이마에 내 천 자를 그리지 말고 과잉보다는 조금 부족하고 조금 서운하게.

매거진의 이전글 23081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