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만 만나던 ‘겨울 금강’을 만났다
241119 오늘 아침에도 ‘겨울 금강’을 만났다.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걸어서 강언덕까지 갔다 왔다. 도종환 시인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그의 시를 좋아하고, 더 정확히는 그의 시집 중에서 『부드러운 직선』을 좋아한다. 그의 다른 시집은 읽어보지 않았고, 가장 유명한 <접시꽃 당신>이나 <흔들리며 피는 꽃>보다 『부드러운 직선』 에 나오는 시들이 좋다.
학창 시절엔 나도 시를 참 좋아하고, 잘 외우곤 했는데, 이젠 시 한 편 외는 일이 어렵게 여겨진다. 그래도 다행은 좋아하고 즐기기까지가 쉽지 않지 한번 좋아하고 즐기기 시작하면 한결같은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내가 꽤 오래전부터 실천하고 생활화하고 싶었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프로젝트가 순항 중이라 참 기분이 좋다. 또 매일은 아니어도 일주일에 3회 이상은 아침 운동까지 실천 중이라 더더 좋다.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 다녀왔다. 날이 추워 마음을 먹었다, 내려놓았다를 반복하다 ‘에이 따뜻하게 입고 가면 되지‘하고 몸을 일으키니 그다음은 순탄했다. 산책하며 이런저런 생각하는데 오늘은 문득 도종환의 <겨울 금강> 시가 떠올랐다. 물론 그가 마주했던 금강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물줄기의 금강이라 그랬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 보니 역시 좋다. 그리고 내가 왜 이 시를, 이 시집을 좋아하는지가 훤하다. 요즘 종종 하는 생각 중 하나는 ‘결국에 삶은 좋아하는 걸 좋은 또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아닐까’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그렇다. 나의 지향이다.
다음은 도종환의 <겨울 금강> 전문이다.
오늘도 걸어서 강언덕까지 갔다 왔다 / 들에 이미 와 기다리고 있던 바람에 금세 귀가 얼었고 / 산을 끼고 도는 길마다 빙판이었다 / 어느새 십년 세월이 흘렀다 이 길에 나선 지 / 몇은 죽고 떠난 사람도 여럿 되었다 / 많은 이들과 헤어졌고 더 많은 이들을 새로 만났다 / 그래도 늘 같은 소리로 우리 가는 길 옆에 있어주던 강물이 / 오늘도 작은 시냇물까지 다 데리고 나와 동행해 주었고 /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 억새들이 모여 주었다
한때는 내 입에서 쏟아지고 있는 말들이 / 내일이라도 금방 현실이 되어 우뚝 설 것 같았고 / 넘치는 열정으로 해도 달도 다 내 가슴에 / 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다시 못 만날지 모르는 / 그런 뜨거움으로 밤을 새우는 이들 많아서 / 별이 빛났다 크나큰 몇 번의 실패로 / 많은 이들이 떠나고 이제는 옆에 섰던 이들마저 / 먼발치로 물러나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으면서 / 내 손을 놓고 쏜살같이 앞질러가며 / 우리가 세상을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 / 보란 듯이 몸 바꾸는 이들도 보면서 / 그래도 나는 이 길을 걷는다
이루지 못했으나 잘못 살지는 않았다 / 어쩌면 갈라진 이 땅 더러운 시대에 태어난 내가 / 갈 수밖에 없는 가지 않고는 달리 길이 아니던 / 나는 그런 길을 걸어온 것뿐이었다 / 그 더운 가슴이 식고 박수소리 또한 작아져 / 몇은 풀이 죽었지만 애당초 박수소리 때문에 / 몸 던진 길이 아니었다 / 떠나던 이가 던진 말처럼 / 유연해져야 한다고 나도 그 충고를 받아들이지만 / 떠날 수는 없다
눈물이 떠난다는 생각을 얼핏 떠올렸을 때 / 얼마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 애착이나 억울함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 부정하고 부정해도 끝내 부정할 수 없는 / 우리의 마음 하나 아주 여리고 / 아주 작던 그래서 많이도 고통스러웠던 / 지금까지 나를 끌고 온 그런 것 하나를 / 역시 버릴 수 없어서 아팠다
오늘도 걸어서 강언덕까지 갔다 왔다 / 어린 금강 줄기 백년도 한 순간이던 강물 / 처음 이 길에 나설 때 우리의 언약을 알아듣던 그 강물 / 유장해야 한다고 오래오래 깊이깊이 / 가야 한다고 내가 흔들릴 때마다 / 내 몸의 잘디 잔 실핏줄 하나에까지 흘러와 / 그물처럼 나를 휘감던 강물 /
그곳에 다시 눈발이 치고 눈보라가 마른 다리를 때렸다 /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것은 없으나 / 어떤 하찮은 것도 쉬이 이루어지진 않으리니 / 나는 멈추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