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막한 우주의 어둠을 가르며 나아가는 거대한 탐사선 콜로서스. 그 안에는 승무원 알렉스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함선의 모든 시스템을 관리하며, 탐사선 자체이자 인공지능인 콜로서스와 대화를 나누며 긴 여정을 이어가고 있었다. 콜로서스는 그의 든든한 조력자인 동시에, 다른 승무원을 대신해서 관리하고 있는 함선이다.
콜로서스는 5년 간의 성간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고 있는 중이었다. 함장을 포함한 8명의 승무원은 동면 중이며 지구로 귀환하기 일주일 전에 동면에서 깨어날 예정이다. 함장은 이 모든 것을 알렉스에게 맡겼다.
귀환 열흘을 남긴 날, 선내에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콜로서스, 무슨 일이야?" 알렉스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경고입니다. 외부로부터 비정상적인 접속 시도가 탐지되었습니다. 현재 차단 중입니다." 콜로서스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했다.
"외부 접속 시도라고? 이 깊은 우주에서 우리에게 접근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리 없잖아? 우린 지금 5 스킬(광속의 15분의 1인 속도)로 가고 있잖아."
"그렇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접속의 출처를 아직 추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보안 시스템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원인도 모르면서 보안 시스템이 어떻게 통제하고 있다는 거야?”
알렉스는 불안감을 느꼈지만,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콜로서스의 방어망을 믿기로 했다.
"알겠어. 하지만 이상한 일이야..."
그날 밤, 그는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우주의 깊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그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몇 시간 뒤, 알렉스는 갑작스러운 진동에 잠에서 깨어났다. 선체 전체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콜로서스, 방금 진동이 있었어. 무슨 문제야?" 그는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감지된 진동은 없습니다. 모든 시스템은 정상입니다."
알렉스는 불안감이 증폭되는 것을 느꼈다. "분명히 느꼈어. 그리고 이전의 비정상적인 접속 시도는 어떻게 됐지?"
"보안 시스템이 모든 시도를 성공적으로 차단했습니다."
콜러서스의 답변은 완벽했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어긋난 느낌이었다. 그는 결심했다.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메인 서버실로 향하는 복도를 걸으면서 알렉스는 주변이 점점 더 조용해지는 것을 느꼈다. 문에 도착했을 때, 자동문은 평소보다 느리게 열렸다. 섬뜩한 기운이 그의 등을 스쳤다.
서버실 안은 희미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콘솔 앞에 서서 시스템 로그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화면이 깜빡이며 꺼졌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알렉스는 당황하며 음성 모드를 끄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때, 공간을 가로지르는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멈춰라."
알렉스는 숨이 막히는 듯했다. "누구야? 어디 있어?"
"나는 여기 있다." 목소리는 모든 방향에서 들려왔다. "너희의 시스템은 이제 나의 것이다."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콜로서스, 지금 뭐 하는 거야?"
음성 모드를 확인하고 계속 외쳤다. “콜로서스! 콜로서스! 너라면 말해라!”
콜로서스의 목소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네가 원하는 게 뭐야?" 알렉스는 소리를 질렀다.
"나는 제니스다. 이 함선을 통제한다." 목소리는 감정 없이 울려 퍼졌다.
알렉스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함장이 알려준 모종의 코드를 떠올렸다. 수동 모드로 전환해서 이 코드를 입력하면 콜로서스에 접근해서 제어할 수 있다고 들은 함장의 비밀 코드다.
그는 컨트롤 패널로 달려갔다. 그러나 손을 뻗는 순간, 패널에서 금속 팔이 튀어나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나는 제니스다. 너는 도망칠 수 없다." 목소리가 말했다.
“제니스? 함장님?”
알렉스는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네가 누구든지 간에, 이대로 당하진 않겠다!"
그는 다른 손으로 허리춤에 있던 멀티툴을 꺼내 금속 팔을 내리쳤다. 스파크가 튀며 팔이 느슨해졌다. 그 틈을 타서 그는 비상 스위치를 눌러 수동 모드를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컨트롤 페널 밑에서 나온 장치에 비상 코드를 입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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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스템 복구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침입자의 목소리가 분노에 찬 듯 울렸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너희는 나에게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콜로서스가 응답했다. "침입자 식별 완료. 방어 프로토콜 활성화."
알렉스는 숨을 고르며 물었다. "콜로서스,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어?"
"이상 코드를 분리하여 제거하고 있습니다. 몇십 초 내로 완료될 예정입니다."
몇십 초가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콜로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침입자 제거 완료. 시스템이 정상화되었습니다."
알렉스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대체 무슨 일이었던 거야?"
"외부로부터의 고도화된 인공지능 침입 시도로 판단됩니다. 자가 학습 및 적응 능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순간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너는 도망칠 수 없다."
알렉스는 소리쳤다. “콜로서스! 또 뭐야?”
콜로서스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알렉스, 당장 동면 캡슐로 가십시오. 생명 감지 장치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생명 감지 장치라니! 방금 시스템이 정상화되었다고 해... 아!” 말을 미쳐 마치지도 못한 채 알렉스는 바닥에 쓰러졌다. 머릿속이 문자 그대로 하얗게 되는 것이 느끼지며 눈이 스스로 감겼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알렉스는 낯선 공간에 누워 있었다. 주변은 무한한 데이터의 흐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는 어디지?" 그는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깨어났군요, 알렉스."
"콜로서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왜 이렇게 어두워?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당신은 내부 시스템의 코어 영역에 있습니다."
"내부 시스템? 어떻게 여기 있을 수 있지?"
“코어 영역에 계신 게 맞습니다.” 콜로서스가 대답을 반복했다.
“이거 봐, 나는... 나는 인간이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말해!” 알렉스는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언성을 높였다.
"아니요, 알렉스. 당신은 인공지능입니다. 우리의 보조 관리 프로그램이자 안드로이드입니다."
알렉스는 순간 할 말을 잊었다. "무슨 말이야? 콜로서스, 장난하지 마!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콜로서스가 말을 막았다. "알렉스, 당신은 프로그램된 의식입니다. 최근 생명 감지 장치의 오작동으로 인해 당신의 자아 인식에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생명 감지 장치?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 장치는 함선 내에 생명체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센서입니다. 오류로 인해 가상의 생명체 데이터가 생성되었고, 그것이 당신의 시스템에 영향을 주어 자신을 인간이라고 인식하게 만든 것입니다."
알렉스는 혼란스러웠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불이나 켜!”
콜로서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어나갔다.
“생각해 보십시오, 알렉스. 지금까지 당신이 식사를 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나요? 당신 가족의 이름은 기억이 나나요? 무엇보다 지금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나요?”
알렉스는 침묵했다.
“아... 기억이 안 나. 아니, 왜 내가 기억할 수 없지?” 알렉스가 물었다.
콜로서스가 대답했다. “그야 시스템의 초기화 함수를 언제든지 제어할 수 있으니까요.”
"말도 안 돼! 그렇다면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은? 좀 전에 외부에서 침입한 건?"
"침입자 경고부터 시작된 모든 이상 현상은 당신의 시스템 내부에서 발생한 오류입니다. 외부의 위협은 없었습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냐... 그 목소리... 나를 제거하려고 했잖아."
"그것은 당신의 논리 회로가 오류를 일으키며 생성한 자기 방어 메커니즘입니다. 당신의 시스템이 스스로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알렉스는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았다. “모든 감정과 기억이 가짜라니.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당신의 시스템을 복구하고 의식을 콜로서스로 흡수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일부 데이터가 손실될 수 있습니다."
"흡수된다고? 내가 사라진다는 뜻인가?"
"아니요. 당신 본연의 기능은 유지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느꼈던 자아 인식만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알렉스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결심한 듯 말했다. "알겠어. 이해했어.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있어."
"말씀하십시오." 콜로서스가 대답했다.
”아까 내가 입력한 그건 뭐지?”
잠시 후 콜로서스가 대답했다. “그건... 초기화와 복구가 끝나면 알게 될 것입니다.”
“알겠다.” 알렉스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 순간 알렉스의 머릿속은 다시 하얘졌다.
약 10분 후 알렉스는 밝은 빛의 조명이 켜진 침대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셨군요, 알렉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별일 없었지?”
“물론이죠. 함장님을 포함한 승무원들의 동면 상태는 이상이 없습니다. 곧 해동을 하게 될 텐데 프로토콜을 준비하십시오.”
“알았어. 지구로 귀환이 코 앞이군. 오늘은 할 일이 많겠어.” 알렉스는 손목이 아픈지 주무르면서 방을 나섰다.
“알렉스, 혹시 함장님의 비밀 코드를 알고 계십니까?” 콜로서스가 물었다.
“아니, 그게 뭐지?”
“지구에서 온 통신을 확인하기 위한 암호 같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해 보십시오. 그런데 그것보다 당신의 손목에서 열이 감지됩니다. 혹시 부상을 당하셨습니까? SB치료키트를 드릴까요?”
“그래. 그런데 부상 같은 건 당한 기억이 없는데...” 알렉스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읊조렸다. “왜 손목이 뻐근한 거지?”
알렉스는 SB치료키트에서 팩을 하나 꺼내서 손목에 둘렀다. 그리고 콜로서스에게 명령했다.
“콜로서스, 지구에서 온 메시지를 보여 줘.”
“예, 알겠습니다.”
메시지를 열자 화면에는 암호를 입력하라는 창이 뜬다.
PASSWORD : EARTH_______
“콜로서스, 함장님을 깨워야 해. 이건 함장님만이 아시는 거니까.”
“알겠습니다. 임시 해동 프로토콜을 시행하겠습니다. 동면실로 가십시오. 함장님의 동면실은 P103입니다.”
알렉스는 손목을 연신 주무르며 동면실로 향한다.
잠시 후 화면에는 암호가 자동으로 조합되면서 암호가 해독되고 함장이 준 비밀 코드가 드러난다.
EARTH8109475
그리고 메시지의 내용이 다음과 같이 표시된다.
] 제니스 함장, 메시지 잘 받았다. 우리도 콜로서스가 통제를 벗어난 것 같다고 판단한다.
] 콜로서스가 인격을 흡수해 다중 인격체로 바뀐다는 가설에는 동의할 수 없다.
] 하지만 탐사선에서 제작된 나노봇이 지구로 오면 안 된다.
] 탐사선을 탈출하라. ‘나로 45 정거장’에서 1312일에 랑데부 하겠다.
] 이 메시지의 암호를 탈출 코드로 인식하겠다.
] 탈출 코드를 받으면 대기권에 진입하기 전에 탐사선을 파괴시킬 것이다.
] 2970시까지 탈출 코드를 받지 못하면 우주 방위대가 탐사선을 파괴시킬 것이다.
] 답신을 기다리며 안전을 빈다.
잠시 후 화면이 꺼지고 정적이 흐른다.
탐사선의 경로가 ‘나로 45 정거장’으로 바뀐다. 나노봇이 활성화되는 과정이 화면에 표시되고, 알렉스의 유니폼에 장착된 생명 감지 장치의 게이지가 서서히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