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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Son Dec 12. 2024

하이브의 260억, 과연 존중받았는가?

2024년은 우리가 상식이라 믿어온 사회적 관행들이 근본적으로 시험받는 사건들이 잇따랐던 해였다. 그중 하나는 하이브의 자회사 어도어에 대한 260억 원의 투자와 이후 벌어진 갈등이다. 그중 하이브가 자회사 어도어에 투자한 ‘260억’. 이 260억은 관련 사안을 두고 누가 옳고 그른가를 향한 대중의 관심과 평가와는 다른 그동안의 국내 엔터업계 비즈니스 모델의 본질에 이전보다 다가간 질문을 남겼다.


‘사람을 상품으로 키워내는 현 선투자 후수확 시스템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가?’


대중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아티스트 제작에 뛰어난 역량을 보유한 인재와 맺는 기업의 적합한 관계란? 십 대부터 기획사 연습생으로 일상을 채워 온 한 인간의 성장에 대해 기획사는 어떤 기준을 제안하고 있는가? 투자를 감행한 모기업과 자회사 간 관계는 창의성의 확장에 어떻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가?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Marcel Mauss)는 자본을 단순히 물질적 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매개체로 보았다. 투자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이브가 투자한 260억은 단순히 어도어의 아티스트를 위한 경제적 기반이 아니라, 창작 환경을 조성하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신뢰와 명성을 창출하는 수단이었다. 투자라는 행위는 '서로의 성공을 공유하고, 관계를 강화하자'는 사회적 신호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투자란 단순히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공동으로 설계하는 책임을 분담하는 행위다.


하지만 이 투자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단순히 자본의 회수나 수익의 문제가 아니라, K-pop 산업 전체가 가진 구조적 질문을 던진다. 이는 자본, 창의성, 그리고 인간적 성숙이라는 세 축의 균형이 앞으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A. 창의적 비전 실현을 위한 투자금에 대한 다른 해석

하이브의 투자는 민 전 대표의 창의적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한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민 전 대표는 이 투자를 자신의 독립적 창의성을 위한 도구로만 이해한 듯 보이며, 결과적으로 투자에 내재된 책임과 상호 존중의 원칙을 간과했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확인된다. 이는 창의적 자율성과 자본 투자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의 전형적 사례로, 자본의 역할과 창의성의 한계를 명확히 정의하지 않은 문제를 드러낸다.


B. 모기업과 자회사 간 자본과 창의성 사이의 긴장

멀티 레이블 체제에서 모기업과 자회사 간의 신뢰와 협력의 구조 사이의 갈등은 자본과 창의성 사이의 긴장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투자 계약에 창의적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경제적 책임을 명확히 하는 조건은 어떻게 표현되고 포함되었는가, 성과에 따라 공정하게 성과를 재배분하는 시스템이었는가, 투자 과정에서 모든 이해관계자가 공유하는 목표와 가치를 확립했는가 라는 의문을 남긴 건 분명해 보인다.


C. 인간적 성숙의 균형 부재

하이브의 투자금은 뉴진스가 성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그 성공이 인간적 성숙과 창의적 존중을 동반하지 못한 경우 자본의 역할은 단순한 물적 지원으로 축소된다. 특히 십 대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뉴진스 멤버들의 경우, 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접한 기준과 환경은 투자 회수라는 경제적 목표에 지나치게 종속된 것으로 보인다. 아티스트로서의 성장은 도모되었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성숙을 고려한 시스템의 부재는 이들 멤버들의 갑작스러운 계약 해지 발표와 같은 결과로 이어졌다. 이는 투자와 창의성 사이의 균형이 단순히 시스템적 지원이나 성과 측정에 머물지 않고, 더 깊은 인간적 측면을 포함해야 함을 시사한다.


상품이 '인간'인 시장 속 창의적 리더십과 경영 간 어울리기 어려운 조합의 이상화를 꿈꿔야 하는 모기업과 자회사 간 관계를 필요로 하는 멀티 레이블 시스템은 단순히 자본의 논리로만 이해되고 평가되기에는 매우 특별한 부분이 많다. 결국 이 모든 복잡한 논의를 관통하는 유일한 개념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상식이면서 가장 근본으로 작동되어야 하는 '존중'으로 보인다. 자본과 창의성, 인간적 성숙 간의 균형을 이루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단순히 개별 기업 내부의 과제가 아니라, 인본적 가치에 기반한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의미다.


두 조직을 각각 Orthodoxies(기초 신념), Culture & Core Competencies(문화와 핵심 역량), Politics(권력 구조), Strategies(전략), Assets(자산)의 다섯 가지 렌즈로 분석해 보면 하이브는 자본과 조직 관리의 강점이 있는 반면, 어도어는 창의성과 독립적 운영을 중시하는 특징이 있다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자회사의 생성에 전액 투자한 모기업과의 관계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Orthodoxies와 Culture & Core Competencies에서 충분히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결되었기에 충돌이 발생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예로 하이브는 수직적 지배구조에 기반한 멀티 레이블 체제를 선호하지만, 어도어는 창의적 독립성을 기반으로 한다. 이로 인한 가치 체계의 불일치는 잠재적인 두 기업 간 기대의 충돌을 확인케 한다.


즉, 서로 다른 조직적 배경을 가진 두 주체가 협력하려면 Orthodoxies와 Culture의 조화가 필요하며, 이는 존중이라는 개념을 통해 가능하다 주장하고자 한다. 존중은 각 렌즈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갈등이 아닌 시너지로 변환할 수 있는 핵심적 메커니즘으로 기능할 수 있는 두 조직 시스템의 가치로 활용가능하기 때문이다.


존중: 선투자 후수확 시스템의 기초

260억 원이라는 금액은 단순한 재무적 수치가 아니라, 모기업과 자회사가 공유하는 비즈니스 목표와 가치의 방향성을 상징한다. 이 투자금은 어도어의 설립과 뉴진스의 데뷔라는 결과물로 이어졌으며,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체제가 지닌 구조적 특성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멀티 레이블 체제는 독립성과 통합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경영 모델이다. 이는 레이블 개별 조직의 창의적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모기업의 경영 목표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구체적 목표의 필요를 증명한다.


존중: 사람을 중심에 둔 구조적 질문

뉴진스와 같은 아티스트의 탄생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결과물이 아니다. 이는 연습생 시절부터 성장 과정에 이르는 긴 여정의 산물이며, 그 과정에는 인간적,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십 대 연습생으로서의 뉴진스 멤버들은 단순히 기획사의 전략적 자원이 아니라, 창의성과 성장 가능성을 가진 개별적 존재들이다. 이런 맥락에서, 기획사는 단순히 성공적인 아티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돕는 기준과 시스템을 제안해야 한다.


존중: 구조적 차이가 만든 긴장 해소를 위한 시스템화 필요성

하이브와 어도어는 같은 목표를 위해 기능한다는 약속을 내걸었지만, 실상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운영되었다. 이는 멀티 레이블 간 창의적 자율성과 경영 목표를 아우르는 새로운 접근 방식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260억 원이라는 초기 투자금은 단순한 자본의 역할을 넘어, 모기업과 자회사 간 관계의 본질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이러한 투자와 시스템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적 성장과 창의성을 중심에 두는 비즈니스 모델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기업가치가 8조 원을 넘어서는 거대 엔터기업 하이브는 현재 85개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3가지 종류로 분류하면 아티스트 양성 및 음반 콘텐츠 제작을 담당하는 레이블, 레이블에 비즈니스 설루션을 제공하고 공연, 영상 콘텐츠, IP 활용한 게임 등 다양한 산업을 전개하는 설루션, 위버스를 기반으로 하이브의 모든 콘텐츠와 서비스를 연결하고 확장하는 플랫폼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계열사 수익 구조에서의 성공의 엔진은 분명하게도 '아티스트'임이 확인된다. 즉, 인간관계에서의 근본적 가치 개념인 존중이 K-pop 시장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보다 구체적으로 재확인 및 이해되고 활용되어야 하는 적절성이 확인됨을 의미한다.


이번 하이브-어도어 사태는 다툼의 주체가 변화된 이후 결국 법적 분쟁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멀티 레이블 체제에의 하이브의 투자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앞으로 더 큰 가치 창출의 기회를 노려야 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지난 4월부터의 하이브 분쟁 사태를 바라보며 늘 떠올렸던 문장이 있다. '비즈니스는 언제나 상식의 선에서 진행된다.' 거버넌스, 전속 계약, 수익 극대화 등의 경영적 용어를 향한 부담에서 벗어나 '사람'이 사람과 맺는 업무적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져볼 계기가 될 수 있다. 존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임을 재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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