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매이 Mar 23. 2021

27살 지방러, 서울에 가기로 결심하다

모든 유행과 정보, 일자리가 모여있는 곳, 서울. 지역 국립대 언론정보학과 학생에게 ‘상경’은 취업을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숙제처럼 남아있었다. 하지만 서울의 터무니없는 집값(월세)과 물가는 도시괴담처럼 남아 우리의 욕망을 시험에 들게 만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가기로 결심했던 26살의 겨울, 세 가지 사건이 있었다.


1. 컨셉진 에디터 스쿨

 제주도 독립서점에 가서 ‘컨셉진’이라는 잡지를 만났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작고 귀여운 잡지인데 잡지 안의 인터뷰, 사진, 기사는 더 사랑스러웠다. ‘당신의 일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집니다 ‘라는 잡지의 메시지가 내 맘에 꼭 들었다. 컨셉진을 구매한 그 날, 제주도 숙소에서 이 잡지를 만든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졌다. 인터넷으로 잡지를 검색해보니 컨셉진의 편집장님이 직접 강의하는 에디터 스쿨이 있었다. 마침 입사하자마자 조직 홍보를 맡아 SNS 영상도 제작하고, 홍보 책자 기획도 하면서 ’ 내가 이렇게 하고 있는 게 맞나?‘라는 의문이 들었던 참이었다. 당장 등록했다.

 에디터 스쿨 주말반을 신청하고 그해 겨울, 안내 메일이 왔다.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000동 00번지’ 서울이다. 나는 꼼짝없이 토요일 새벽에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엔 서울에 갔다. 여기가 지옥철로 유명한 2호선이구나. 여기가 합치면 정이 되는 합정역이구나. 애매한 기차 시간 때문인지 항상 내가 일등으로 도착했다. 편집장님은 세 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강의도 하시고, 수강생들의 과제를 한 명씩 꼼꼼하게 피드백해주셨다.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내 진심이 담긴 글을 쓴 것 같다. 또, 내가 좋아하는 잡지를 만드는 사람이 이렇게 내 글을 진지하게 평가해주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오랜만에 배움의 설렘을 느꼈다. 서울에는 진짜 재밌는 게 많구나. 나는 서울에 살고 싶어 졌다.  


2. 내 생애 첫 뮤지컬 ‘스위니 토드’

 출장이 있어 서울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동료 직원들과 다 같이 뮤지컬을 보러 가기로 했다. 삼성역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잠실역에 있는 ‘샤롯데시어터’라는 곳에 갔다. 사실 나에게는 ‘잠실역=롯데월드’라는 인식이 있어서 잠실역 근처만 가도 놀이공원에 도착한 듯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샤롯데시어터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주황빛 조명, 로즈골드색 대리석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바글바글한 사람들. 그중에는 앳된 학생들도 보였다. 나는 26살이 되어서야 처음 뮤지컬을 보러 오는데, 이 학생들은 벌써부터 이 비싼 뮤지컬을 본단 말이야? 뭔지 모를 부러움과 박탈감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막이 열리고, 강렬한 무대 효과와 음악이 내 정신을 쥐고 흔드는 듯했다. 스토리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생경한 느낌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커튼콜이 끝나자마자 관중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배우들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나도 덩달아 일어나서 손을 머리 위로 들어 힘차게 박수를 보냈다. 짜릿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비싼 값을 지불하고 뮤지컬을 보는구나. 나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대도시의 문화 인프라 좀 느껴봐야겠다. 박수를 치느라 얼얼해진 손바닥의 그 느낌과 함께, 서울에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3. 계약직으로부터의 도피

 나는 2018년 여름학기에 졸업하자마자 대학의 사회공헌센터에서 기간제 계약직으로 일했다. 처음에는 3개월 인턴이었다가, SNS 홍보 활성화 등 나름의 공로를 인정받고(?) 계약기간을 연장한 케이스였다. 하지만 계약직으로 일을 계속해도, 정규직 혹은 무기계약직으로의 계층 이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나는 정부사업예산으로 월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 사업이 끝나면 나에게 배당된 인건비는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사업 계약직’ 직원들은 예산 회기가 바뀌는 매년 2월마다 재계약을 해야 했다. 재계약 시즌이 될 때마다 느끼는 왠지 모를 초조함이 날 옥죄였다. 상급자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지 않기 위해 사회생활 미소를 장착하고 그들을 대해야 했다. 그 시즌이 되면 공무원들은 마치 내 일자리의 생과 사를 쥐고 있는 사람처럼 기세 등등했다. 내 월급 국가가 주는데, 내가 왜 이렇게 눈치 봐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잠깐 들었지만 그때의 계약직들은 다들 몸을 사리는 분위기였다. 막내인 나는 그냥 따라야 할 뿐이었다.  

 26살 겨울, 재계약 시즌이 찾아오기 전에 나는 먼저 선수를 쳐버렸다.

 “저 2월까지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울에서 공부하려고요.”

 나의 젊음과 성장을 앞세운 퇴직사유였지만 솔직히 난 도망치고 싶었다. 나를 옥죄는 불안정한 계약직이라는 현실로부터.

작가의 이전글 난 도대체 뭐가 되고 싶은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