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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매이 Apr 03. 2021

코로나 시대, 백수의 한달 나기

 그렇게 난 재계약 시즌에 맞춰서 회사에 선빵을 날리듯 퇴사를 했다(<27살 지방러, 서울에 가기로 결심하다>편 참고). 퇴사는 체력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무척 지치는 일이었다. 일단 퇴사일에 맞춰서 내가 살던 회사 근처 자취방의 짐을 급하게 빼야 했고, 내 업무 인수인계도 준비해야 했고, 가족 같던(오해하지 마시길. 워딩 그대롭니다.) 사무실 식구들과의 진한 이별도 해야 했다. 일하기는 싫지만 점심시간에 떡볶이는 먹고 싶어 했던 내 첫 직장의 사무실 식구들. 우리는 서로의 건강과 행복, 무사안녕을 빌어주며 '잘 가..'-'가지마!'로 무한 반복되는 질척스러운 이별을 했다.


 퇴사 후 한 달 동안 나는 지방 of 지방인 우리 집(본가)에 가서 백수생활을 즐겼다. 아니, 사실 잘 즐기지 못했다. 내가 퇴사 결심을 하고 대전의 짐을 빼는 동안 어느덧 '코로나'라는 이름의 바이러스가 점점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모은 적금과 퇴직금으로 한 달 남짓한 긴 여행을 가겠다는 나답지 않은 담대한 계획을 세웠지만, 쉽게 잦아들지 않는 코로나로 인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쉬고 싶지만 그냥 쉬기는 싫은 한국인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나는 집에서 제일 가까운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옛 분교와 비슷한 벽돌로 된 학원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매캐한 석유난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그리고 은은하게 풍겨오는 진한 믹스커피 냄새.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 선생님 세 분과 호탕한 웃음소리의 아주머니 선생님 두 분, 총 다섯 분이 이 학원의 강사진이었다. 어떤 운전면허를 따고 싶은지, 언제 시험을 보고 싶은지에 대한 짧은 상담이 끝난 후, 사무실 총무님이 주신 갱지 같은 용지에 검은색 플러스펜으로 내 이름과 핸드폰 번호를 꾹꾹 눌러 적는 것으로 운전학원 등록은 마무리됐다. 셔틀버스 예약은 철끈으로 묶인 종이뭉치(아마 '셔틀버스 운행일지'였을 것이다)에 등원 시간과 이름을 적으면 되는 시스템.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날로그 방식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원래 이런 건가. 모르겠다. 나도 운전학원은 처음이라. 


 운전학원에서 보내는 시간 이외에는 중딩 막냇동생과 27살 인생 처음으로 직접 김밥을 싸 먹기도 하고, '얼초'도 하면서 본능(먹성)과 재미에 충실한 하루를 보냈다. 아빠와 운전 연습을 핑계로 근처 호숫가를 드라이브하기도 하고, 주말 아침에는 엄마와 뒷산에 올라가 등산을 했다. 나의 여행 계획을 망친 코로나는 너무나도 미웠지만, 덕분에 가족들과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나보다 더 연식이 있어 보이는 소나타로 기능 시험을 본 날이었다. T자 주차 공식이 머리와 손끝에서 겉돌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100점으로 합격했다. 어머, 나 알고 보니 운전 천재 아니야? 이건 길치의 대반란이야! 하지만 나의 이런 자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코스를 외우는 데만 너무 집중했던 탓일까. 도로주행 시험에서 턱걸이로 합격하면서 나의 운전 자신감은 땅으로 떨어졌다. 아빠는 꼴찌로 합격해도, 합격한 건 합격한 거라면서 아빠가 운전연수시켜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날 밤, 우리 가족은 나의 운전면허 시험 합격을 축하하는 족발 파티를 했다.


 내가 온갖 오두방정을 떨며 국가자격증 하나를 득할 동안, 코로나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면접을 보러 서울에 올라가는 대신, 집에서 AI 면접을 봤다. 비대면 면접의 시작, 코로나가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아닐까. 나는 면접자로서의 예의와 집순이로서의 편안함, 둘 다 놓치지 않으려 상의는 블라우스, 하의는 수면바지를 입은 이상한 복장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노트북 화면을 통해 한껏 긴장한 채 질문에 대답하는 나의 모습을 보니, 여간 민망하고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NCS를 표방한 듯한 정체불명의 게임도 나를 너무 당황스럽게 했다. 막대기의 길고 짧음을 빠르게 선택하는 이 게임이 나의 어떤 면을 판단하는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일단 최선을 다해 마우스를 두드려본다. 


 어느 날, 카페에서 자소서를 쓰고 있는데 02로 시작하는 전화가 왔다. 원래 지방 사람들은 02로 시작하는 전화는 대개 받지 않는다. 서울에 연고가 없는 나로서는 02로 시작하는 전화는 스팸이나 광고 전화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뭔가 받아야 될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의심을 내려놓지 않은 채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축하드립니다. 육아휴직 대체 계약직 채용에 합격하셨어요~'


나의 두 번째 취직을 알리는 얼떨떨한 전화였다. 그렇게 난 다시 계약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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