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가면 밤이 오겠지만 마음은 부서지는구나 BY 월터 랭글리
[그림이 마음에게] '아침이 가면 밤이 오겠지만 마음은 부서지는구나' by 월터 랭글리
베란다 문을 여니 밤새 밀려와 쌓여있던 파도소리가 쏟아져 들어온다. 밤에 도착한 탓에 호텔 베란다에서 보았던 바다는 가로등 불빛이 만든 동그라미만 한 크기였는데, 태양아래 바다는 내 시야를 가득 매웠다.
무작정 강릉행을 결심하며 손에 잡히는 데로 넣어온 책, 책장을 휘리릭 넘기다 발견한 형광펜 밑줄.
'치유란 젖은 기억 꺼내 말리기' 언제 그어놓았던 것일까?
어젯밤, 작은 스탠드 불빛 아래 젖은 기억들을 꺼내 놓고선 추스를 엄두가 나지 않아 풀 먹인 린넨 시트 침대에서 뒤척이다 새벽녘에나 잠이 들었나 보다. 서너 시간 잤을까? 동쪽을 향한 객실에 햇살이 선물처럼 내리고 그새 몸과 마음이 잘 마른 빨래같이 바삭거렸다.
'조금 젖은 기억은 빨리 말려주는 게 좋지. 안 그러면 말리는데 오래 걸리거든...'
무턱대고 강릉으로 온 이유는 M을 만나기 위해서다. 첫 번째 배낭여행의 동반자였던, 20대 중반 대부분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 오래도록 연락이 끊긴 채 지냈지만 우연히 닿은 연락으로 30여 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만나게 되었고, 딱 그때와 같은 모습으로 내앞에 M이 앉아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조개구이집에서 주먹만 한 대합을 구우며 M은 나의 일 이야기, 남편과 아들의 이야기를 물었다. 수다와 서먹한 침묵이 번갈아 이어지다 마침내 M이 꺼낸 이야기는 남편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경찰이었던 M의 남편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꽤 오래전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둘 사이엔 쌍둥이 딸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하나는 아빠를 하나는 엄마를 꼭 빼닮았다고 하며 웃었다.
M의 남편은 사고를 당하고 열흘간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는데 뇌를 많이 다친 상태라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했고, 깨어난다고 해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의사들이 말했다고 했다. M은 의사와 가족들이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M은 어쩌다가 교회의 합주 봉사단에서 플루트를 불게 되었는데, 한 번도 불어보지 않았던 악기였지만 배운다는 마음으로 활동을 시작했노라고, 겨우 플루트의 소리를 소리답게 낼 수 있게 되었을 때 남편이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고 했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남편을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두 번, 그것도 딱 30분씩이었다. 병원에 하루 종일 있으며 남편 옆에 있는 한 시간을 제외하곤 보호자 대기실에서 열흘을 지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단다. 기도도 할 줄 몰랐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손에 들려있던 플루트를 불었다고 했다.
방음 시설이 되어 있지 않은 보호자 대기실. 그곳을 가득 메운 풋내기 연주자의 플루트 소리가 꽤나 시끄러웠을 텐데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꼬박 열흘 동안 플루트를 불다 문득 이제는 남편을 놓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열흘도 기적이라고 의사들이 말했다. 그날 밤 M의 꿈속에서 어떤 남자가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길을 떠났다고 했다. 다음날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M은 쌍둥이 딸과 함께 세상에 남았다.
남편이 떠난 후 M의 플루트 소리를 들은 합주 봉사단원들은 위로 반 염려 반으로 득음했냐고 물었는데 플루트의 소리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청아해졌기 때문이다. "애들 아빠가 떠나면서 자기 자리에 아름다운 플루트 소리를 남겨놓았어" M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후 M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연주 봉사를 시작했다. 봉사는 3년간 이어졌고 많은 환자들이 M의 연주에 위안을 받았다고 고마워한단다.
타닥타닥 조개껍데기가 튀어 오르고, 어느새 맥주 3병을 나눠 마시며 나눈 M의 이야기엔 슬픔도, 분노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조개를 구우며 젖은 기억들을 꺼내 그 숯불에 말렸다. 침묵이 조금 어색해질 즈음 "인생은 드라마 같아! 그렇지?" 피식하고 웃으며 M이 말했다. M의 상처가 이제는 어느 정도 아물었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했지만, 한편으론 그 당시엔 얼마나 큰 절망이 그녀를 덮쳤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 한켠이 쓰려왔다. 월터 랭글리의 그림을 볼 때처럼.
영국의 뉴린이라는 작은 어촌마을에 머무르며 풍경으로서의 바다가 아닌 삶의 애환이 담긴 바닷가 마을, 가난한 어촌 노동자의 힘겨운 삶을 주로 화폭에 담은 월터 랭글리. 그의 작품 "아침이 가면 밤이 오겠지만 마음은 부서지는구나(Never Morning Wore to Evening but Some Heart Did Break)"는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의 모습이 담겨있다.
평범한 어느 날 아침, 만선으로 돌아오마 인사를 하고 바다로 나간 남편,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돌아오지 못한 남편을 향한 원망과 슬픔이 그녀를 잠식하고 있다. 남편을 집어삼킨 성난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한 모습으로 석양을 반사하고 그녀의 등을 어루만지는 노부의 힘없는 다독임만이 그녀의 무너져 내림을 애써 부여잡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을 떠나보냈을 노부는 끝나지 않는 슬픔과 그리움으로 깊은 주름을 문신처럼 얼굴에 새겼고 이젠 어떤 슬픔도 눈물이 되어 흘러나오지 않는 지경에 이른 듯하다.
나이가 들며 죽음이라는 이름의 이별 경험이 늘어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무거운 마음으로 장례식장을 가는길에는 웨딩촬영을 하러가는 신혼부부의 모습이 보이고, 손주를 보았다는 지인의 소식이 들려오고, 축하 파티의 참석을 요청하는 문자들이 날라온다. 가까운 지인의 예상치 못한 죽음은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을 주지만 변함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서운함을 잠시 느끼다 어느새 나는 다시 그 세상으로 들어가 히죽거리며 살기를 반복한다.
얼마전 아버지를 여읜 친구는 조문을 와준 친구들에게 문자로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그리고 덧붙여 이렇게도 말했다. 이번 아버지 장례를 치루며 느낀것은 나보다 앞서 부모님의 여의고 슬퍼했던 친구들을 진심으로 위로해주지 못했던 자신이 부끄럽고, 자신에게 닥친 아버지의 죽음앞에 자신의 상처가 제일 큰 듯 통곡했던 자신이 한심하다고.
타인의 슬픔은 내가 경험한 딱 그 만큼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도 이해의 차원이지 공감의 차원은 아니다. 그러니 나의 슬픔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우리는 이별의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죽음학의 대가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이 하나의 학교라면, 상실과 이별은 주요 과목입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가슴에 난 구멍입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이끌어내고, 그들이 주는 사랑을 담아둘 수 있는 구멍이기도 합니다."
상실과 이별로 생긴 가슴의 구멍이 결국은 다른 사랑을 이끌어 내고 담아둘 공간이란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으며 이런 모든 것과 작별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M의 가슴에 생긴 커다란 구멍은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슬픔과 그리움, 눈물과 비통함으로 가득했던 그 구멍에 체념과 실망이 얼마간 머물렀을 것이고, 시간이 쌓이는 만큼 다짐과 노력, 희망과 사랑이 더해졌으리라. 그리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용기도 생겼으리라.
이제 M은 용감하다. 구멍난 가슴을 가졌던 사람이 갖게되는 용기는 그 어떤 훈장보다 빛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