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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Sep 21. 2022

전주, 오늘도 묘한 밤 두 번째 이야기

디테일을 담은 공간 리뷰

정성이 담긴 공간은 머무는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다녀온 지 5개월 가까이 지났음에도 햇살이 좋은 날이면 언제고 떠오른다. 올해 5월, 전주영화제 방문을 위해 머물렀던 그 곳은 영화제에서 본 어떤 영화보다 큰 감동을 선사했다. 숙박 이튿 날 이른 아침에 일어나 툇마루에 앉아 햇살과 산산한 바람 속에 오간 대화가 그 여행의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시간이 지나도 가끔씩 떠오르는 그리움을 담아 그 때의 기억을 뒤늦게 글이라는 형태로 남긴다.


한옥의 아늑함과 현대 건축물의 편의를 함께 품은 곳


한옥마을 가운데에 위치하지만 널찍한 여윳공간을 자랑하는 이 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처마 아래의 한지 무드등, 가운데 통로 벽면에 걸린 격자 무늬 장식장, 나무로 된 전축 형태의 블루투스 스피커까지 한옥의 아늑함을 자아내기 위해 작은 디테일까지 신경 쓴 부분이 보인다. 그런 디테일들을 하나씩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한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만든 이의 숙고(熟考)가 담긴 디테일이 가득한 인테리어


보통의 독채 한옥이 방 개수보다 적게 화장실을 설치하는 편인데 비해 이 곳은 4개인 방보다 더 많은 6개의 화장실이  있다. 방 마다 한 개씩 딸려 있고 미디어룸에 1개, 스타일러와 헤어드라이어가 설치된 드레스룸에 제일 큰 메인 화장실이 딸려있다. 한옥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묵어야 한다는 생각을 기분 좋게 뒤집은 세밀한 배려가 담긴 배치다.


아늑한 침실과 단란한 미디어룸


관광보다는 휴양에 적합한 숙소다. 만일 1박 여행으로 이 곳에 머무르게 된다면 차는 가까운 공영주차장에 주차해 놓고 숙소에서 온전한 하루를 보내기를 권한다. 아담한 정자에 앉아 커피 한 잔해도 되고, 툇마루에 앉아 담벼락 너머 한옥마을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면면을 구경해도 된다. 한가한 시간이 지루해질 즈음에는 미디어룸에 도란도란 앉아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도 괜찮다. 한옥마을을 거니는 발자국 소리만으로 부족하다면 통로 한가운데에 설치된 블루투스 스피커로 서로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해보는 것도 괜찮다.



 오늘도 묘한 밤이라는 이름처럼 이 곳의 시간은 밤이 정수다. 특히 4-5월, 9-10월의 봄과 가을 무렵이 최적이다. 툇마루에 앉아 가맥집에서 사온 황태구이와 맥주를 곁들이며 날씨 좋은 날 처마 위에 뜬 달의 모양을 안주 삼아 평소에 하기 힘든 낯간지러운 얘기를 하나씩 털어내다 보면 깊어가는 밤처럼 나누는 대화에 깊이가 더해진다.


 만일 숙소에서 보내는 시간에 답답함을 느낀다면 가벼운 옷차림으로 한옥마을 잠시 걷다 오는 것도 괜찮다. 관광객들로 번잡한 낮의 시간과 사람들이 빠져나가 한산하지만 가로등이 환하게 길을 밝혀주는 아늑한 밤의 시간 중 어느 걸 선택할 지는 온전히 본인의 몫이다.




 일상이 바빠 일 년에 한 번 겨우 모이는 동창들끼리 언제나 모이는 강남역 이자카야의 편의성도 좋지만 하루를 온전히 내어주고 달빛 아래 서로의 삶을 느긋하게 관조하는 여유를 향유하고 싶을 때 올 수 있는 공간이다. 혹은 각자의 일상에 매몰되어 서로를 돌보지 못 했던 가족끼리 처마 아래에 앉아 엄마, 아빠, 아들, 딸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서로를 마주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할 게다.


 호스트의 소개를 빌려 나와 너뿐만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남길 수 있는 이 공간은 머무는 이들이게 설레면서도 묘한 하루를 선사한다.


 

※ 사진은 직접 찍은 것과 오늘도 묘한밤 두 번째 이야기 홈페이지(https://myohanbam.modoo.at/)에서 퍼온 걸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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