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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dom akin to feral May 02. 2024

노력이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차례

아침 8시가 되었고 나는 잠에서 깼다.

비몽사몽 했던 몇 분이 흐르고 퍼뜩 생각이 나버렸다.

점수가 발표되는 날이구나.

생각이 들자마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팔에 소름이 돋아 추웠다.

나쁜 예감이 계속 들었지만, 아직 점수를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토닥였다.


그동안의 시간들을 반추해 봤다.

2월 시험 이후 4월 시험까지 매일 책상 앞에서 울었고, 길어지는 수험생활이 힘들어도 계속했다.

공부 안 하는 시간이 불안해서 그 시간조차 없애려고 대부분의 시간에 뭐라도 붙잡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놀았다가는 나중에 후회할까 봐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2달간 나의 모의고사 점수는 조금씩 계속 올랐다.

힘들어도 꾸준히 하니까 정말 점수가 오른다며 기뻐했다.


그래서 그런가?

점수를 확인하고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공부를 아예 안 했던 때인 2년 전에나 나올법한 점수가 나왔다.

두 눈을 의심했다.

2년간의 공부의 결과가 initial diagnostic test (cold PT)랑 같아도 되는 거 맞아?


매일매일 열심히 했던 것의 대가가 이런 것이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한국인의 열정 신화가 나를 배신했다.

차라리 놀았던 적이라도 있으면 그때 놀아서 그런 거라고 후회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스스로를 만족시킬 만큼 열심히 했기 때문에 결과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면 대체 2개월 전에 치른 그 시험의 결과는 뭐였던 거지?

꾸준한 공부로 상승했던 점수가 연속된 2달의 빡공 후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런 사례가 지구상에 있기나 하는 건가?


역시 시험에서 프록터 이슈가 있었을 때 바로 클레임을 걸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없고 힘들었던 나는 바보 등신같이 부당한 일을 당했어도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게 제일 중요한 건데 제일 중요한걸 안 했다.

프록터가 시험을 망쳐놨을 그때, 나는 바닥난 체력으로 시험을 지속하지 말았어야 했다.

결과가 안 좋아서 모든 것에 원망을 해 본다. 그래도 바뀌는 게 없을 텐데.


레딧에 들어가 보니 나 같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이번 시험은 정말 이상했던 걸까?

몇몇 사람들은 audit을 신청해본다고 한다. 근데 그것도 $150이다. 그리고 결과가 뒤바뀌긴 어렵다고 한다.

정말로 시험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괜한 기대를 해보지만 아마도 가능성은 낮다.


나는 시험을 준비하면서

스스로에게 나 자신을 믿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 시험으로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주고 싶었다.

지금껏 스스로에게 항상 부족하다 느꼈기에 그 큰 결핍을 채워주고 싶었다.


내가 원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시험은 끝이 나버렸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래도 입시가 끝난 건 아니니까 낙담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난번 받아둔 점수가 있으니 그걸 쓰면 된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도 세상엔 많다는 걸 또 한 번 받아들이면 된다.

노력한 만큼 항상 결과가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큰 과정 안에서 하나의 사건이 성과를 내지 못했더라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나중에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떻게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해온 모든 것들의 실패가 아니다. 

지금까지 로스쿨 입시를 위해서 내가 해 온 다양한 시도들이 존재하고, 앞으로 해야 할 여러 가지 단계가 남아 있다. 지금까지의 시도들 중에서는 성취를 준 것들도 있고, 실망을 가져다준 것들도 있다. 이번 시험은 단지 그 여러 가지들 중에서 한 가지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니 나는 이 경험을 갖게 된 사람으로서, 그 경험에서 얻은 교훈들을 가지고 또 나아가야 한다. 스스로를 잘 위로해 주고, 상처를 성숙하게 아물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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