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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Sep 24. 2022

1. 일이 이어지는 한은 괜찮다.

마이아 에켈뢰브는 스웨덴의 청소 노동자이자 다섯아이의 엄마, 작가 그리고 언제나 세상에 대해 공부하고 읽고 쓰는 사람이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저녁, 가족들과 함께 먹을 풍족한 식사를 앞에 두고도 마이아는 세상의 모든 굶주리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가난한 삶, 일을 필요로한 삶에 대해 깊은 이해와 공감은 그의 글 안에 그대로 묻어 나온다.



“가난한 사람은 매일 일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다.”



‘일과 삶’은 마이아의 책-이자 일상을 적어 내려간 일기-을 지탱하는 두 개의 축이다. 마이아 에켈뢰브의 책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에서는 ‘일을 구하지 못’해서 안타깝고 초조해 하며, ‘일을 할 수 있어’다행이라는 말들이 내내 반복된다.



마이아와 그녀의 다섯 아이들의 일상에는 노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노동자 계급의 고단한 얼굴이 보인다. 대표적인 선진국이자 복지국가인 스웨덴의 60년 전 풍경이라고 하기엔 마이아의 삶과 2022년 한국에서의 나의 삶은 그다지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일과 삶의 그 지리멸렬함 속에서도 그녀는 계속해서 쓴다. 그리고 쓰는 순간 그녀의 삶은 고귀해진다. 그리고 마이아는 ‘일이 이어지는 한은 괜찮다’고 말한다.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일을 하기 싫었다가, 어떤 일이든 구하고 싶다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다가 이제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다. 나에게 일이란 필요하지만 피하고 싶은 딜레마, 언제나 깊이 생각할수록 복잡해지는 감정이다.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도 물러날 수도 없는 자본주의 안에서 일은 곧 돈이고 사회적 지위이자 위치다. 사람들은 상대의 위치를 파악할 때,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묻는다. 지금의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지점에 와있다.



벌이가 변변치 않거나, 맡은 일이 대단하지 않을 때 내 대답은 한없이 길어졌다. 사회에서 자기 몫을 성실히 수행하는 구성원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일이 무엇인지도 한마디로 설명될 만큼 명료해야만 한다. ‘문화예술업계’라는 예쁜 이름의 세상으로 뛰어든 나는 대부분의 시간 근로소득자로 일했다. 쾌적한 근무조건, 연봉, 4대 보험, 연차와 유급휴가, 복지혜택과는 먼 세계였지만 말이다. 처음 꿈꾸고 가닿고 싶었던 곳이 결국 어떤 ‘세상’이 아닌 ‘자리’였음을 그마저도 소수에게만 허락되었으며 주기적으로 교체되는 ‘자리’였다. 결국 허상을 쫓았다는 생각에 ‘문화예술업계’에서 근로소득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가족들의 배려로 먹고살기 위한 ‘노동’을 이어가지 않고도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한동안 글쓰기를 배우고, 요가를 하며 한가로운 일상을 보냈다. 굴곡 없이 이어졌던 몇 해간의 일상은 평안했지만 이상하게도 죽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서 사회에서 나의 몫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자괴감도 들었다. 살아가려면 나는 다시 일이 필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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