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이 쓴 지리산에 대한 시를 읽어보고 있었습니다. 맨 마지막 구절에 행여 견딜만하면 다시 오지 마시라… 하는 이 구절을 읽고 웃게 됩니다. 내가 지리산엘 올랐던 이유, 이 구절에 숨어 있어서이기도 합니다. 사정을 알 리 없는 세간 사람들에게 친정이 없어진 이유를 구구절절 알리는 것도 이젠 지겹고 괜찮다 하며 시간을 지나고는 있지만 명절이면 어쩔 수 없이 고향이 그리워지는 게 사람 마음이라 에라 모르겠다, 산이나 오르다 보면 온갖 시름 잊겠지 싶어 갔던 길이었으니까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열네 시간 완주를 해 놓고 보니 이건 봉사가 뒷걸음질하다 문고리 잡은 격이 맞지 뭡니까. 어제 남편과 등산화를 새로 구입해왔습니다. 내가 신고 다니던 트레킹화로는 지리산을 절대로 등반할 수가 없었더라고요. 심지어 장비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고 도시락도 형편없이 준비를 했던 거였으니 하나님이 도우신 게 맞습니다.
김칫거리 준비해두고 과채수가 식기를 기다리며 공상을 하는데 내가 지리산에 다녀오길 참 잘했다 싶더군요. 왜냐면, 평소라면 굉장히 노엽고 모욕적인 일이었음에도 그 일이 뭐 대수인가 싶은 거예요. 옛날이라면 지리산을 경험하기 이전이라면 저는 오늘 또 종일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한 많은 나를 위로해 달라며 절절 울어댔을 겁니다. 그리고 분해했을 거랍니다. 그런데 마음에 이상하게 노여움도 화도 울음도 차지 않는 것이 다 지리산 덕분입니다.
일요일을 무박으로 지리산을 다녀오기 전 들른 시댁에서 시어머님이 웬일로 정말 이게 무슨 일이냐 싶게 저한테 모싯잎 송편을 주시더라고요. 마음에 경계심은 있었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나에게 이런 자비함을 베풀만한 분이 아니란 걸 지난 20년의 누적된 경험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그 경계심을 조금 허물고 조금은 좋아했습니다.
모싯잎 송편을 좋아하거든요. 김제평야의 냄새가 나서 좋아합니다. 그리고 김제 친정을 다녀올 때면 제가 들리는 떡가게에서 꼭 모싯잎 송편을 사 들고 왔었습니다. 명절에 다시는 친정에 찾지 못하게 된 후 첫 추석엔 기특하게도 딸이 모싯잎송편을 사 들고 귀가했었습니다.
“엄마 이거 좋아하잖아”
재수학원 앞에 유명한 떡집이 있는데 거기에서 모싯잎 송편을 파는 걸 보고 좋아서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거라며 사들고 들어온 딸에게 매우 고마워했던 작년 추석이었습니다. 올해는 모싯잎 송편 사는 걸 깜박했는데 마침 어머님이 주시니 내심 놀랍기도 하고 이젠 어머님과 이런 정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온 건가 싶었습니다. 지리산의 무박 열네 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집에 가면 모싯잎 송편을 쪄 먹어야지 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겐 추석을 마무리하는 음식이었고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친정에 대한 애도의 음식이기도 했으니까요.
열네 시간의 쉼 없는 종주로 팔다리가 내 몸의 부속처럼 느껴지지 않던 월요일의 아침에 눈을 뜨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찜기에 물을 앉히고 송편을 꺼내는 일이었습니다 비닐랩을 조심스레 뜯었는데 곰팡이가 울긋불긋 하얗게 피어있었습니다.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송편을 쓰레기통에 조용히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냥 아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조용히 아침상을 차렸습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지 식구들과 밥을 먹는데 소리 없이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좀 울었습니다. 밥상 앞에서요. 영문을 모르는 남편이 왜 나고 묻길래 행주로 눈물을 훔쳐내며 제가 토해 낸 말은 이렇습니다.
“어머님이 주신 송편에 곰팡이가 폈어. 김제에서 오면서 추석이면 사 막던 송편, 그게 너무 먹고 싶어. 미안해. 밥 먹는데 울어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솔직히 안 괜찮았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지리산을 걸으며 식구들을 생각했습니다. 할머니가 건강하기를, 아빠가 몸이 좀 좋아지셨기를, 동생들이 잘 살고 있기를… 나를 빼놓고 그들이 나누었던 보험료와 재산을 불려 내가 배 아파도 좋으니 제발 잘 살고 있기를 걸음마다 기도했습니다. 덕분인지 그리움이 잦아들더라고요. 지리산의 풍광이 그리고 나중엔 오랜 행군에 기력이 다해서 더 이상 소모할 감정이 없었습니다. 극한의 고통을 경험하니 극한의 감정이 상쇄되었습니다. 그랬는데 별 거 아닌 모싯잎 송편으로 월요일 아침에 좀 울게 되었네요.
남편이 굉장히 미안해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니 너를 미워해서 그런 게 아니니 오해 말라며 연신 미안해했습니다. 그래서 다 못 울었고 화내지 못했는데 오늘 식구들 다 나가고 혼자서 일을 하면서 상한 송편을 건넨 정 없고 경우 없는 어른에 대한 분노보다는 내가 걸었던 지리산의 풍경이 끝도 없이 펼쳐지더라고요. 참 좋았습니다. 내 마음이 분노와 원망에 사로잡히지 않아서 나를 구박받는 며느리의 입장, 사랑받지 못하고 배려받지 못하는 피해자로 규정하지 않고 못난 행동을 탓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지리산이 나를 억울하게 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게 해 준거 같습니다. 물론 더 큰 감사는 그런 지리산을 경험하게 해 준 하나님께 드립니다. 어느 시인이 얘기했던 거처럼 또 세상일에 ‘견딜만하지 못하게 되면’ 지리산에 또 찾아가렵니다.
지리산에 갈 일이 없었으면 좋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