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이꽃 Aug 22. 2023

오펜하이머 vs  이 세상의 한 구석에

오늘 비가 언제 올까요?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데 엄청난 비가 올 거라 하는데 비가 내릴 기미가 보이지가 않네요.  요 근래의 2주는 그야말로 ‘자비가 없는 날씨’로 기억이 될 거 같습니다.


심야시간까지 무겁게 내려앉은 보일러 강풍의 습한 더위에 그냥 전기세를 포기하고 에어컨은 늘 26도 그 자리로 그대로 놓여있는 중이에요. 아침에 산을 가려했는데 비가 올락 말락 해서 하늘만 쳐다보다가 벌써 오전 9시가 넘겨져 버렸습니다. 지난주 봤던 영화, 오펜하이머를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며칠 일부러 묵혀놨습니다.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영화가 진짜 핫! 했었거든요. 그리고 감상평도 엄청 쏟아지고 있고요. 팟캐스트 매불쇼의 금요일 코너, 영화평론에서 그러더라고요. ‘지적 허영심’을 내려놓지 못한 사람들은 세 시간짜리 이 영화를 보고 다들 그럴 거라더군요.


“영화? 좋았지! ” 그런데 뭐가 좋았어? 물으면, 다들 대답이 애매할 거랬어요.


오! 크리스토퍼 놀란이잖아~  그 감독이 찍은 건데 안 좋을 리가! 한다는 거죠.


그 말에도 너무 동감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금요일 오전 영화를 봤는데요. 무려 세 시간짜리인걸 알아서 간식을 챙겨갔어야 했는데 깜박 두고 갔지 뭐예요. 카프리썬도 두어 개 챙겨가야 하고 바시락 거리는 소리 없는 과자도 가져갔어야 했는데 다 테이블 위에 놓고 몸만 후딱 다녀오느라 세 시간을 물도 못 마시고 독박 영화 감상 했지 뭡니까...


이거 세 시간 짜리에요. 그래서 중간에 서너 분이 자리를 뜨고 일어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오펜하이머> 너무너무너무 좋았어요. 저도 지적허영심이라 하면 어디 나가도 손색없을  뭐 그런 아줌마이긴 합니다만 이 영화는 절대로 그런 허영심만 가지고는 관람을 할 수가 없는 세 시간짜리라서요. 무작정 오펜하이머잖아~ 크리스토퍼 놀란이잖아~ 하면서 참을 수는 없는 영화랍니다.


뭐가 좋았냐고요? 오펜하이머 본인 조자도 스스로가 하는 일의 파급력이 어떤 줄을 모르고 있었던 게  분명하더라고요. 원폭이 투하된 날, 다들 환희에 벅차 발을 구르며 오펜하이머의 연설을 기다리는 장면이 제일 긴박감이 넘쳤습니다. 발을 구르는 대중의 함성에서 한 발 한 발 연단 앞으로 나아가던 오펜하이머는 원폭의 원자력에 피부가 박리되는 사람들의 환영을 봅니다. (너무너무 극심한 공포감을 느꼈을 거 같아요) 헛구역질이 나고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으면서 앞으로 고꾸라질 거 같은 공포를 느꼈던  연기를 너무 잘 보여줬습니다.


영화의 세 시간의 긴 뼈대는 청문회입니다. 오펜하이머의 나름의 업적을 공산당으로 폄훼하려는 세력과 예전의 동지들 앞에서 모든 일생이 까발려지고 적대시되고 부정당하죠. 오펜하이머의 첫 대사가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지금 당신들이 나를 고소한 이 모든 문장이 나에겐 굉장히 모욕적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영화가 시작이 되거든요. 원자폭탄을 개발해야 할 세계적인 기류에 올라타서 말의 기수를 맡았던 불운의 오펜하이머의 세 시간의 고해성사를 보고 나면... 요즘 아이들 말로 가슴이 뭔가 웅장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냥 저에겐 한 인간의 고해성사, 나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그 일이 나에게도 너무나도 공포스러웠다로 들렸거든요.  이 영화는 일부러 그래서 더욱더 원폭피해의 참상을 영화에 넣지 않았습니다. 저는 꼭 지적허영심 없더라도 제 나이 또래의 여성분들이라면 공감하실 좋은 영화라고 생각이 되더라고요.


어느 지점에서 그랬냐고요? 한 인간의 삶을 관찰하면서 그 사람이 자신의 흥망성쇠를 어떻게 감당하는지 성공과 몰락을 어떻게 관조하는지를 바라보는 시점이 저는 매우 좋았거든요. 몰락의 지점에서 오펜하이머는 굉장히 담담합니다. 받아들이죠. 자신을 모욕하는 동료의 배신을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어떡하겠어요. 시대의 흐름이 이제는 자신을 버리려고 하는 걸 내가 거스를 수 없다는 걸 체감하고 그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걸요.


<오펜하이머> 보고 오면서 이 영화를 구독자님들에게 소개를 해주는 글을 쓰게 되면 꼭 일본 애니 장편 <이 세상의 한 구석에도>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는 일본아카데미에서 유일하게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상을 수상했던 작품입니다.


주인공 스즈는 (한국어로 참새의 뜻을 지닌 이름) 참새처럼 연약하고 그림 그리는 걸 매우 좋아하는 소녀입니다. 그 소녀가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성장하고 결혼을 하고 그 과정에서 원폭을 경험하는 일생의 이야기인데요. 절대로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에요. 그냥 일본에 살았던 일개 국민, 한 명의 시민, 한 사람의 일생이 전쟁 속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가를 조용히 그렇지만 절대로 가볍지 않게 잘 그려낸 수작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 일본에서 살아야 했던 한 사람이 보여요.


일본을 미화하는 영화가 절대로 아니니 <오펜하이머>의 감동을 느끼신 분이라면 오펜하이머 안에서도 시대를 관통하느라 고통받았던 한 사람을 경험하신 분이라면 <이 세상의 한 구석에>도 관람해 보시는 걸 추천해 봅니다.


산에 좀 가보고 싶어 하늘만 쳐다보는데 여전히 하늘은 먹구름만 잔뜩이고 비는 내리지 않으니 잠시 한 시간이라도 다녀와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또 망설여지는 부분이 요즘 혼자 산을 즐기는 일이.... 이제는 맘 편히 누릴 수 없는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가 되어버렸다는 점입니다.


날씨도 사람 인심도 요즘엔 ’ 자비‘가 없어졌어요. 무자비한 폭력 앞에 어느 순간 노출되어 부지불식간에 내가 사랑하는 가족 옆을 떠날 수도 있는 그런 세상이 되어버린 겁니다.


요 며칠 그런 생각에 우울했었는데요. 엊그제 kbs 다큐에서 파친코를 쓴 이민진 작가님을 찍은 영상을 우연히 봤거든요. 홀린 듯 그분의 일상과 생각을 듣다가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인생은 불공정한 게임입니다. 당신은 그 게임에서 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게임에 계속 도전하라고 말할 것입니다. 끈기가 역경을 이겨내는 중요한 것이라고..

삶의 고군분투는 꽤 아름답지 않냐고 “


삶의 고군분투는 꽤 아름답습니다. 오늘도 자비는 없어 보이는 숨이 막히는 열기 안에 갇혀 있지만 언제 어디서 폭력이 날아들 수 있는 환경이 되어버렸지만 인간성 소멸 되지 말고 잘 생존하는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도 여러분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