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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Dec 04. 2023

지연아, 나는 너에게 미안한 게 이젠 없어...

지연아, 너는 내가 동생들 중에서 제일 좋아했던 사람이야... 그리고 내심 의지도 많이 했었다. 나랑은 정반대의 성격으로 호탕하고 허점도 있지만 늘 즐겁고 유쾌해서 너랑 너의 집에서 뒤풀이를 하는 시간이 많이 기다려졌었어.


친정을 떠올리면 백세에 가까운 할머니가 그 굽은 허리를 한 채로 집안을 부산히 돌아다니며 움직이는 정경과 함께 너랑 맥주캔을 따면서 우리의 어린 시절을 되새김질하며 울고 웃던 그 시간이 더 많이 생각이 나.


3년 전에 막내가 나를 검찰에 고소하고 아빠의 교통사고로 발생한 형사합의금을 달라면서 부당이익의 청구의 건으로 민사고소를 하였을 때 말이야. 난 그때 그런 일련의 일들보다 네가 재혼한 넓은 집에 가서 네가 나에게 했던 그 술주정과 욕지거리가 더 다리에 힘이 풀리고 오래도록 억울했단다. 네가 그런 말을 하였지.


“자매 간에 삐쳤다가도 서운하다가도 또 웃으면서 지낼 수 있어야 하는 게 형제간이라고. 뭣이 그렇게 맨날 삐쳐서 전화를 차단하고 그래 샀냐고”

그 말에 내가 화답한 말도 네가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기억해줬으면 해서 이 말을 굳이 여기에 적어본다. (어쩌면 너에게 닿지 않을 편지이기도 할 테지만 말이야)


내가 한 말을 오래도록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어.


“지연아, 나는 너에게 후회가 남지 않아. 그리고 네가 나에게 상처를 꽤 많이 줬단다. 나는 이제 너의 상처에 대응할 기력이 남아있지 않다고”


나는  네가 3년 전에 그 좋은 집에서 살게 된 걸 축하해 주러 간 나에게 술에 취해서 했던 말이 친정식구가 모조리 한편이 되어 나를 검찰에 고소하고 민사로 고소한 일보다 더 오래 아팠다. 언니 너처럼 잘 살았으면 나는 너 같이 인색하게 굴지 않았을 거라는 말. 너의 집에 빨간딱지가 붙었을 때 냉장고도 세탁기도 모두 가져가서 당장 생활이 안될 때 내가 보내준... 내가 쓰던 헌 냉장고가 너무 상처가 되고 자존심이 상하더라는 너의 술주정이 어찌나 오래도록 충격이고 화가 나던지 너는 모를 거다.


내가 왜 후회가 안 남냐면 말이야. 나는 네가 그렇게 나를 높게 생각해 주는 거처럼 잘 살지도 부유하지도 않았지만 매일매일 하루의 노동에 치여 생계를 남편과 함께 책임지며 살아가려 애쓰는 와중에 나의 살갛에 붙은 비늘을 한 점 한 점 떼어 그물을 만드는 심정으로 너에게 그런 지원을 하였던 거여서... 그래서 후회가 남지 않아.


맨날 지가 쓰던 헌 것만 준다고 나에게 술주정을 하였던 너는 그다음 날 나에게 무슨 말로 내 심장에 단도를 깊숙이 꽂아 넣었는지도 모른 채로 또 헤헤거리며 웃었지만 난 더 이상 너를 보고 웃을 수가 없었어. 그게 오래도록 너와 지난 3년간 전화를 차단하였다가 풀었다가 차단하였다가 풀었다를 반복하였던 원인이란다.


정말 오래도록 생각했었어. 내가 너에게 인색하게 굴고 너를 업수이 여겼는지를 말이야. 네가 그랬잖니. 내가 너를 업수이 여기고 천하게 여겨서 쓰던 냉장고를 내려보내고 쓰던 중고차를 보내주고 나는 백만 원짜리 식탁을 쓰면서 너에게는 40만 원짜리 식탁을 사주고 큰돈을 턱 줘서 너의 살림을 편히 해주지 못하고 간신히 십만 원 , 이십만 원을 보태며 생색을 내었는지를 말이야.


그랬던 적이 없다. 나는 너를 업수이 여긴 적도 없고 너를 가벼이 여긴 적도 없고 너를 하찮게 생각한 적도 없었어. 너를 항상 가슴 아파했고 네가 혼자가 된 몸으로 딸 둘을 키우는 일이 너무너무 애잔하고 가엾어서 매일 기도를 하며 울었고 너를 내 피붙이로 여겼던 지난 세월의 나의 눈물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네가 나에게 엊그제도 악다구니를 하며 하였던 말이 기분은 나쁘지만 툭 털어버렸어.


“언니 너 그렇게 살지 마!”라고 했던 말 있잖니.


나는 너에게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잘못 살지 않았고 너에게 잘못하지 않았단다. 오늘 오전에 주문받은 음식을 하면서 네가 전남편에게 처음으로 무지막지하게 폭행을 당하고 병원에 입원하였던 일이 생각이 났어. 심장이 부들거려서 어떻게 단숨에 김제로 내려갔는지가 기억이 안 나. 내려가면서는 너를 때린 너의 전남편을 곤죽이 되게 패고 싶었었는데 그 형편없는 남자에게 내가 그런 부탁을 했었다.


“엄마 없이 큰 불쌍한 아이예요. 내 동생 때리지 말아요. 제부. 부탁할게요. 불쌍한 우리 동생 때리지 말고 아껴줘요. 나 가슴이 너무 아파요. 제발 부탁할게요”


그랬었단다. 내가 너랑 몇 살 차이는 안 나지만 너에게 든든한 친정엄마이고 싶어서 여태 노력하며 살았으나 이젠 그 짐을 내려놓아버렸어. 너는 이미 잘 살게 되었고 나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고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나에게 받은 게 나의 연민과 사랑이 아니고 업수히여김과 천대의 감정이었다니 그 점이 너무 억울하고 가슴이 아프지만 그 서운함도 이젠 놓아버렸단다.


다 부질없더라고. 내가 아무리 설명하려 애써봐야 너에게 나는 그런 언니였던 걸 어쩌겠니. 나는 새 냉장고를 쓰면서 너에겐 헌 냉장고를 보내는 그런 인색한 언니로 남아버린 게 아쉽지만 그것 역시 내가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지연아. 이제 그런 원망 섞인 저주와 나에게 상처를 어떻게든 주려 애쓰는 말을 하려거든 전화를 하지 말아 주렴. 나는 앞일만 바라보며 살고 싶어. 너와 동생들과 힘겹고 슬펐고 축축했던 과거에 나를 다시 끌어들이려 하지 말아 줘. 부탁할게.


그런데 말이야. 네가 한참 시간이 지나 내가 진정으로 그립거든, 나에게 원망의 말, 저주의 말을 쏟아붓지 않아도 될 거 같으면 그때는 전화해서 언니라고 불러주려무나. 너와 할머니와의 추억을 편히 담담히 얘기하는 날이 나도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는 너의 기대에는 부족한 친정언니였을지 모르지만 미안하지만 말이야. 나는 진짜 너에게 후회가 없어. 겨울의 동토를 이겨내고 봄에 피어나는 튤립처럼 너도 겨울의 언땅을 견디고 활짝 피어나는 봄날이 왔으니... 새 가정에서 부디 술 도 줄이고 잘 살아주길 바란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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