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에서 '장애학의 도전'을 읽으며 생각한다. 손상 만으로 장애는 정의되지 않는다지. 손상-차별/억압으로 인해 장애가 된다지. 그러면 adhd도 장애라고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손상'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는 뇌 미발달 이슈라고 하니까 요건에 부합하겠지.
'차별/억압'이 있는가?
사람들은 뭐 툭하면 "야, 너 adhd냐?"라며 서로를 놀리기 일쑤지만 이것만 가지고 차별/억압이라고 표현하긴 어렵겠지. 그렇지만 아직도 이런 표현을 쓰는 누군가가 계시다면 부디 앞으로는 듣는 adhd도 생각하셔서 자제하시기를!
하지만 이것 외에도 사회가 adhd에게 가하는 차별과 억압은 어마어마하다.
예를 들어 학교가 학생들에게 40분 동안 자리에 앉아서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것이 집중시간이 짧은 adhd 학생에게는 억압이 될 수 있다.
좀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성인 adhd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주요 증상이 다 다르기 때문에 똑같지 않지만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성인'의 기준 - 깨끗한 옷을 입고, 주변 정리를 잘하고, 질문은 적당히 하고, 시키는 일을 잘하고, 시간약속을 잘 지키고, 비밀을 잘 지키고, TPO에 맞게 적절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 은 성인 adhd에게 억압이 될 수 있다.
직장에서 상식 외 행동을 하거나, 돌발행동을 할 수 있다. 사회생활이 원활하지 못할 수 있다. 영업비밀이나 동료의 비밀을 잘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 업무상 중요한 행사를 까맣게 잊고 해맑게 웃고 있을 수도 있고, 중요한 회계업무를 처리할 때 하나만 써야 할 '0'을 두 개 쓰거나 아예 쓰지 않을 수도 있다. 뒷일은 생각하지 못하고 뛰어난 아이디어를 마구 입으로 나불거려서 팀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일을 크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회의 때마다 질문이 너무 많아서 회의시간이 30분 이상 길어지는데 본인은 그것도 모르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서 주변 adhd를 보면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커리어가 중단되고, 사회경제적으로 빈곤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
심지어 성인 adhd 인구의 절반 정도가 다른 정신과질환을 동반하고 있다고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렇게 고생하는데 어찌 이리 가벼운 취급을 받는 걸까?
고통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아서인가? 해석되지 않은 고통이기 때문일까? 혹시 '사고 친' 당사자라고는 믿을 수 없이 해맑게 웃던 모습 때문에 adhd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자책하거나 반성하지 않는 양심이 없는 인간이라고, 이런 대우를 받아도 싼 인간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adhd의 특성 중 중요한 특성이 곱씹기이다. 좋았던 기억 말고 미묘하거나 어색했던 기억을 곱씹는다. '그때 그러지 말걸!'이라고 알이다. 하지만 adhd의 뼈 아픈 자책과 반성은 타인에게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아마 같은 실수를 무한히 반복하기 때문이겠지. 애처롭다.
정신과 환자 중에 약을 가장 잘 챙겨 먹는 환자군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바로 adhd이다. 약이 있으면 인생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약이라는 기회조차 오남용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건강보험으로 받을 수 있는 용량은 아주 적은 용량으로 정해져 있어서 제대로 된 의학의 도움을 받기는 어렵다.
다른 정신과 질환 중에 어떤 질환은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데 adhd는 현재까지 나을 수가 없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도대체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브런치에서 내 글을 읽던 어느 성인 adhd 여성이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함'이라고 우리의 일상을 위로해 주었다. 같은 adhd가 해주는 얘기라 그런지 큰 위로가 되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adhd 없는 나도 충분히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하루하루를 살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싼 병원비와 약값이 힘들다. 그래서 억울하다. 남들은 겪지 않고 있을 실수와 감정과 생각을 겪으며 혹시나 이런 내가 티 나지 않을까 숨기며 살아가기가 힘들고 지친다.
안 숨겨도 된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나 같아도 시간약속 못 지키는 사람에게 일 맡기기 어려울 것 같아. 시간 약속도 떠오르는 게 너무 많지만 적을 수가 없다. 그럼 또 누군가 내 모습을 알게 될 테니까. 숨기는 거 없이 다 열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나 보다. 나 같아도 이런 사람에겐 일 맡기기 고민될 것 같다는 지점들, 그런 모습은 여전히 숨기고 싶다.
평생 이렇게 3주마다 병원에 가야 한다니 아무렇지 않게 병원을 다니다가도 가끔은 이걸 평생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진다.
요즘처럼 어디 다른 병원이라도 병행하게 되면 거의 깨어있는 매 시간마다 약을 먹어야 한다. 이게 맞니..?
약을 안 먹으면 일상이 돌아가질 않고.
약을 먹으면 약값이 많이 나오고.
힘들다 힘들어 진짜.
가끔 약으로 인해 건강을 잃게 된 사람들에 대한 기사나 다큐가 뜨면 무서워서 볼 수가 없다. 나는 앞으로 약을 달고 살아가야 하는데 약조차 부작용이 있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해?
결론 : 아마 나도 장애인인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모두가 장애인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덧.
나는 오랜 시간 가만히 앉아 있을 수없다. 그래서 긴 시간 수업을 들을 때면 항상 맨 앞줄 복도 쪽 자리에 앉는다. 맨 앞자리가 아니면 주의력이 분산되어 집중을 할 수 없기 때문이고 복도 쪽에 앉는 것은 수업 중간에 필시 밖으로 한 번 나갔다 오기 때문이다.
인권위에서 강의들을 일이 있어서 신청서를 낼 일이 있었는데 휠체어 이용 등 뭔가가 필요하면 적으라고 안내가 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이 칸에 나도 적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됐다.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몰라서 적지 못했지만 다음엔 적을 수 있을까? 적어도 될까? 누가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웃기고 황당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