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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슬 Jul 18. 2019

쿠팡의 로켓 배송이 '진짜로' 교란시키고 있는 시장

쿠팡은 시간 침투에 성공한 것이 아닐까



무척 오랜만에 'IT와 인간욕망 연구소' 매거진에 글을 씁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사이에도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통찰의 소재들을 고객을 위한 컨설팅이나 강연 등에 모두 소진하다보니 이렇게 공개된 글을 올릴 일이 적었습니다.


오늘은 쿠팡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엄청난 적자 기업으로 알려진 쿠팡, 어쩐지 유통과 제조업 양쪽 모두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처음에는 그루폰과 같은 소셜 커머스에서 시작해서, 한 때에는 오픈 마켓이었다가, 점차 직접 물건을 매입하여 공급하는 로켓배송으로 더욱이 매출 규모와 시장 점유율을 늘려왔습니다.


쿠팡이 '공공의 적'이라는 얘기는 제가 그냥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아래와 같은 기사가 공공연하게 노출되곤 했으니까요.

https://www.paxnetnews.com/articles/17614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저는 쿠팡이 이겨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9년 7월에 이르러서야 저도 비로소 여기에 생각이 도달했네요.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는 쿠팡이 '시간'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시간을 잡았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첫 째는, 엄청난 물류 투자를 통해 자체 배송 시스템을 갖추면서 배송 시간의 확실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 째는 앞서 언급한 첫 째의 요인으로 인해, 쿠팡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루 24시간의 루틴 중 일부에 확실히 침투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쇼핑뿐 아니라, 콘텐츠, 게임, 영상 등 모든 IT 플랫폼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시간'을 두고 경쟁합니다. 소위 '엔드 유저(End User)', 즉 B2C 서비스의 최종적 사용자들은 그 취향, 소비력, 경험 등에 무수한 계층이 있습니다만, 그에 관계 없이 현대 사회에 모두가 공통적으로 극히 한정되게 갖고 있는 자원을 갖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시간입니다. 하루 24시간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니까요.



2019년에 다시 읽어도 재미있는 '시간의 역사' 입니다



쿠팡이 정말로 '앱'으로서 그런 전략에 집중한 것인지, 그냥 어쩌다보니 잘 되었는데 제가 그럴싸한 해석을 붙이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쿠팡은 2018년 이후 '쇼핑 앱'이 아니라 그냥 '앱'으로 경쟁해도 웬만한 컨텐츠 서비스를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이용 시간 확보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쿠팡은 셀러들을 위한 자체 블로그에 이런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https://sellers.coupang.com/?p=6066


"최근 모바일인덱스, 브랜드평판 리포트, 와이즈앱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쿠팡 앱은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 1위로 나타났습니다. 쿠팡은 일간 사용자, 월간 사용자, 주간 사용자, 일 평균 사용시간 등 다양한 지표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습니다. (중략)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을 수 있는 양대 앱스토어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 2018년 결산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가장 인기가 높았던 20개 앱 중에서 쇼핑 앱으로서는 유일하게 쿠팡이 선정되었습니다."


여기서 인용한 '자료'는 아래 기사입니다. (동아일보보다 'IT동아'가 사이트 광고가 훨씬 적어서 'IT동아' 버전으로 링크를 드립니다) https://it.donga.com/28584/


저는 위의 통계가 집계된 작년보다, 현재 쿠팡 모바일 앱의 '사용자당 일 사용 시간'이 더 늘어났으리라 짐작합니다. 쿠팡 앱에 엄청 재미있는 UX가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쿠팡이라는 서비스 자체가 로켓배송을 통해 오프라인과 연계한 '시간의 확실성'이라는 요소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죠.


로켓배송의 본질은 '빠른 배송'일 수도 있고 '무료 배송'일 수도 있고 '최저가 아이템'일 수도 있지만, 저는 '확실하게 내일 온다'라는 점이 가장 강력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티몬과 위메프와 같은 온라인 유통 업체들은, '최저가'나 '무료 배송'에서 쿠팡을 잡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19050842811


사실 저도 고객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비교해보면 '최저가'는 위메프가 좀 더 잘하는 것도 같습니다. 주요 품목이 아주 약간이라도 더 싼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최저가나 무료 배송으로 승부하는 것이 유통의 문법이라면, 시간의 확실성으로 승부하는 것이 라이프스타일 서비스 혹은 모바일앱의 문법이 아닐까 합니다. 가격이 싸기 때문에 구매가 일어난다는 것은 언제든 다른 곳에서 더 싼 가격을 만날 수 있다면 구매 플랫폼을 옮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서비스가, 일상에 침투해서 한 루틴을 차지하면 그 습관을 바꾸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아주 쉽게 말씀드리자면, '전날 밤에 자기 전에 주문하면, 확실하게 내일 온다'라는 것은 직장인 사용자들의 '퇴근길'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이를테면 제가 오늘 밤 10시쯤 '늘 마시던 과일주스가 다 떨어졌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저에게는 크게 세 가지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제가 실제로 즐겨먹는 유기농 오렌지 주스입니다)


1) 내일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서 산다

2) 쿠팡 로켓배송으로 주문한다

3) 다른 플랫폼에서 주문하고 2일 후에 받는다


예전에는 1) 퇴근길에 마트에서 사거나, 3) 좀 더 싸게 사고 문 앞까지 가져다주되 배송 시간을 기다리거나 이렇게 2가지 선택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2) 쿠팡이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긴 것이죠.


그런데 저는 1)의 경우처럼 마트에서 직접 산다고 해도, 아침에 일찍 나가서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해야 하기에, 최소 퇴근길인 다음날 저녁에 오렌지 주스를 획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1)과 2)는 저의 체감 시간에서 물건 획득 시간이 동일합니다.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사람들은 시간적으로 나에게 가깝게 일어나는 일, 그리고 확실하게 일어나는 일을- 같은 조건이라면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어차피 '주스가 떨어졌네'라고 자각한 것은 마트도 곧 문을 닫는 밤 10시입니다. 편의점에서는 그런 유기농 주스는 아예 팔지 않거나 혹은 무척 비싸죠. 당장 급한 것이 아니라면 좀 더 싼 플랫폼에서 사는 3)의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기존에 1)의 '퇴근길 마트' 제공하던 경험은, 물건의 종류, 품질, 가격, '얻게 되는 시간'에서 2) 쿠팡 로켓배송에 의해 완벽히 같은 조건으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문 앞까지 가져다준다는 점이나 가격 면에서 더 합리적으로 좋은 조건일 수 있습니다.


즉, 당신이 남들과 같은 평범한 직업인이고, 어느 평일 저녁 밤 10시-12시 사이에 '무언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에, 그 시간에 만큼은 쿠팡을 이용하는 것이 거의 대체제가 없는 종류의 경험이 됩니다. 로켓배송은 전날 저녁 6시도 아니고, 밤 10시도 아니고, 자정 12시 전에 주문하기만 하면 다음날 확실히 가져다주니까요.                  


한국 직장인의 평균적 하루 삶. 이미지 출처:

http://m.biz.khan.co.kr/view.html?artid=201503242302295&code=920100&med_id=khan


요즘 가뜩이나 주 52시간제 시행하고 나서, 아예 저녁에 하나의 취미 생활을 갖거나, 자기계발 수업에 참여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퇴근길 마트'라는 경험은 점점 밀려나는 듯합니다. 물론 퇴근길 마트에서 시식 먹는 재미는 대체되진 않겠지만요 :)


이런 생각을 해보면, 이마트나 롯데마트, 홈플러스 같은 유통 체인이 쿠팡을 견제하는 것이 당연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최근 오프라인 마트들의 매출 감소 얘기가 들려오는데, 물론 그 매출 감소에는 좀 더 복합적인 요인이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큰 틀에서는 쿠팡 외에도 다른 수많은 이커머스의 영향도 있겠죠. 특히 버티컬 마켓(육류 전용 쇼핑몰, 아기용품 전용 쇼핑몰 등)을 공략하는 중소 이커머스들도 장기적으로 마트의 위협일 수 밖에 없습니다.



결론입니다.

약간 시선 끌기를 위한 제목이었지만, 쿠팡이 '진짜로' 교란시키고 있는 시장은 일차적으로는 물론 오프라인 마트 구매 영역을 말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깊게 들여다보자면, 저는 모바일앱으로서 특정 시간 영역을 점유했다는 것에 더 주목해보려 합니다.




'출퇴근길에 대중 교통에서 20분 이내로 보는 앱 혹은 콘텐츠', '주말 데이트 일정을 짜며 목요일이나 금요일 즈음에는 확인하는 정보', '자기 전에 즐기는 게임 한 판' 이렇게 하나의 서비스가 시간의 루틴 안에 들어가느냐 마느냐는 그 서비스의 생명력에 무척 중요합니다. 특히 '모바일 앱'이라면 더더욱 중요합니다.


그런데 위의 ’한국 직장인의 평균적 하루 삶’ 시간표에서 보시다시피, 원래 자기 전 1-2시간 정도의 시간대는 TV를 보거나 개인이 원하는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대였습니다. 이 때에 게임을 하는 인구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대에 '쿠팡'이 강력한 모바일 앱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입니다.


콘텐츠 플랫폼이나 게임이, 대뜸 등장한 쿠팡 모바일앱과 경쟁해야 하게 된 것이죠. 그 소중한 '밤 시간대' 리그에서 말입니다. 내일 배송될 물건을 고르는 경험은 웬만해선 즐거운 일입니다. 그 효용과 재미, 양쪽 모두에서 웬만한 다른 서비스가 쿠팡을 이기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위에 보여진 통계에서 다른 모든 앱 포함해서도 순위 20위 안에 든 것이겠죠.



유튜브나 아마존 같은 거대 플랫폼들은, 단지 플랫폼 내에 사용자의 체류시간을 늘리는 UX와 넛지 요소를 상당히 갖고 있습니다. 대단히 1인당 매출 요소가 증가하지 않더라도, 한정된 24시간을 자기네 서비스에 소모하게 만들면 경쟁자들 대비 점유 우위가 생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죠.


쿠팡만이 다른 쇼핑과 다르게 '루틴화 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확실성' 면에서 '모바일 앱'으로서 다른 경쟁자들은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물론 그 기반에는 로켓배송이 있고, 거기에는 '갈아 넣는다고' 문제 제기도 되었던 배달원들의 노동과, 막대한 적자 투자가 있었지만요.


그래도 일상의 특정 시간에 확실히 침투한다는 것은 IT서비스 전체의 관점에서도 무척 강력한 것이기 때문에, 아마 길었던 유통 치킨 게임에서 쿠팡의 승리가 슬슬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해봅니다.



+(쿠팡 로켓와우)

로켓와우는 심지어 '아침 주문, 저녁 도착'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후는 또 어떻게 전개될지 저도 궁금해지고 기대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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