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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슬 Dec 14. 2019

나 자신과 잘 지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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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취향과 취미에 대한 실 없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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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생각한 것인데, 나는 흰쌀밥에 대하여 상당히 원리주의적인 혹은 근본주의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보수화되는 것일까, 과거에는 흰밥을 유독 더 선호하는 것일 뿐, 쌀에 대한 다른 요리 방식에 그닥 부정적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 최근에 스페인 요리점에 갔다가 빠에야가 너무 꼴보기 싫어서 대체 이 감정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그제서야 나는 소위 '끓여서 만든 맨밥' 외에 빠에야처럼 육수에 쌀을 직접 넣고 만드는 요리가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현미밥(이건 원래 쌀+쌀이니까)에 조밥(쌀의 식감을 해치지 않는 범주에서의 첨가)까지는 괜찮지만, 오랜시간 콩밥을 초과하는 잡곡밥을 싫어했다는 것도 떠올렸다, 수많은 원리주의가 그렇듯이 내가 선호하는 쌀밥이라는 것도, 막상 역사적인 '밥'의 원형으로부터 제법 거리가 있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인류가 이렇게 찰기와 단맛이 풍부한 쌀 품종을 만나고, 현대적 정미 기술을 만난 것도 그리 오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하며 밥이란 반드시 압력솥에 정성들여 지어야한다는 생각 같은 것을 지닌 것은 아니다, 다만 차라리 '햇반'같은 즉석밥은 Steamed rice의 본분에 충실하다고 생각하지만, 빠에야처럼 쌀을 조리하는 것에는 영 못마땅한 기분이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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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혼자하는 운동에 제법 재미를 붙여가고 있다, 이전에 글을 쓴 바 있듯이 최근 몇 개월 동안 나에게 운동 KPI는 '헬스장 출석률'이었다, 기본적으로 무리하거나 과부하가 되는 운동을 하지 않지만 어떤 길이든 자기만의 경로를 만들며 탐험하는 것은 재미있다, 10만원을 내고 참석했던 파토코치님의 원데이 클래스도 괜찮은 모멘텀이 되었다, '지속하는 힘'이기 가장 먼저이고 나머지 목표는 그 다음이다, 라고 하는 나의 자기계발론과 교육론적 목표를 잘 실천하고 있어서 자신이 대견하다, 하루에 푸쉬업 열 개만 되었더라도, 지속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숨찬 것도 싫어하고 근육이 배기는 것도 싫어하지만 그 와중에 3대 운동의 재미를 좀 더 알게 되었다, 이 재미는 '내 몸을 내가 더 잘 쓰게 된다'라는 성취감에서 오는 재미인 것 같다, 보통 데드리프트나 스쿼트를 하면 중량을 올리는 재미로 운동을 많이 하게 된다던데, 내 경우는 힘이 좋은 체질도 아니거니와, 그런 테스토르테론적인 장르에는 취미가 없는 듯하다, 다만 발끝부터 목끝까지 전신의 근육과 신경을 구석구석 신경쓰며 내 몸을 콘트롤하는 것은 확실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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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나는 일종의 '자기 수행' 같은 장르를 좋아한다, 꼭 수행자적인 무언가를 좋아한다기보다는, 경쟁이나 팀 스포츠를 싫어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더 사실과 진심에 가까울 것이다, 똑같이 중량 운동이라도 그룹PT나 크로스핏처럼 다같이 으쌰으쌰하는 분위기가 부담스럽고 훨씬 재미 없게 다가오는데, 그런 분위기에서는 나 자신에게 집중한다는 느낌이 적고, 내 리듬대로 내 루틴대로 내 몸 구석구석의 힘과 신경과 균형에 신경쓰기는 더욱 힘들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드럼을 치면서 합주를 하는 것도 좋았지만 연습실에서 혼자 매트로놈을 틀어놓고 연습하는 것도 늘 즐거웠다, 많은 장르에서 '자기와의 대화'를 좋아하는 성격일 수도 있다, 타인과 경쟁해서 이기는 재미보다, 어제의 나보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것에 훨씬 동기부여 되는, 약간의 사회성 떨어지는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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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나 음악은 누군가와 함께, 상당히 많은 대화와 함께, 사회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좋아한다, 음악 들으며 대화하는 것도, 음악을 듣고 난 후에 감상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혼자 듣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 세기말 세기초의 인터넷 유물 중에 가장 그리운 것은, 음악을 틀거나 음악 파일을 공유하며 나누던 음악 방송이나 메신저 같은 것이다, 그 때에는 저작권이 온전히 보호되지 않기 때문에 편리했던 것들이 있었다, 지금은 라이브 스트리밍 시대라고 하지만, 지인끼리 동시 송출을 통해 음악을 나눠듣기는 어쩐지 UX적으로 좀 더 까다로워졌다, 친한 친구들끼리 서로 다른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자로서 늘 독점은 나쁜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런 면에서 메이저 서비스의 대통합 천하통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끔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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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종 보는, 혹은 종종 듣는 유튜브가 있는데 번역가이자 작가 서메리씨의 채널이다, 내용 때문에 듣는다기보다, 온전히 깔끔하고 정갈한 국어 사용과 발음 발성 때문에 듣게 되는 면이 있다, 영상 댓글을 보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무척 많은 것 같다, 영어 발음 때문에 영상을 보러 왔다가 국어 발음에 힐링하고 간다거나, 그런 얘기들, 그러니까 아나운서의 톤은 전달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억양이 과장되거나 발성이 비일상적이고, 그런 아나운서 톤으로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오히려 수백 명이 있다, 하지만 서메리님처럼 조곤조곤 또각또각 그러면서도 딱딱하지 않게 국어 발음을 구사하는 사람은 정말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남자든 여자든 누군가의 훌륭한 국어 사용에 상당한 매력을 느낀다, 글은 물론이고 말도 마찬가지이다, 번역가 김명남 선생님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이유도 번역의 내용과 질을 떠나서(그 또한 뛰어나리라 믿지만 일단 잘 모르니까) 순전히 국어 구사 능력 때문이다, 문예창작이나 국문학을 전공하고 단어와 문장으로 칼을 휘두르거나 춤을 추듯 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많지만, 오히려 앞에 언급한 두 사람은 번역가이기 때문에 국어를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고, 늘 친근하고도 교양있는 몸짓처럼 국어를 구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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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나 취향에 대해 최근 칭찬을 두 가지나 들었다, '다 커서 계속해서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발견했다는 듯이 말하는 사춘기 같이 이상한 애'라는 얘기와, '내 주변에서 자기가 뭘 싫어하고 뭘 좋아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얘기였다, 전자의 얘기도 물론 칭찬으로 다가오는데, 여기에서 대해선 분명히 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잘 지내려고 노력해야 하는 사람' 첫 번째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자의식 과잉 같은 얘기지만, 우리는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충분히, 자기애가 있는 만큼, 자기 혐오도 있으며, 자기 합리화나 자기 타협을 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너무 자기 자신과 대화하길 좋아하는 것도 자의식 과잉이야'라고 씨니컬하게 얘기하는 사람도 자기애와 자기 혐오 사이에서 크게 출렁이며 왔다갔다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내 경우는 나이 먹을수록 나 자신과 잘 지낼 수 있는 부분이 늘어가는 만큼, 한 편으로는 나 자신과 잘 지내기 어려운 부분도 분명히 생기는데, 다른 많은 이들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한다, 성인이 되어, 특히 중년으로 가는 시기에 많은 '어른'들이 겪는 우울이나 위기는 자기 자신과의 불화에서 온다, 잘 지내려면 잘 알아야한다, 아직 겉으로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도 늙음은 시작되었으므로, 더 행복한 늙음에 대해, 나이든 나 자신과 더욱 잘 지내기 위해, 많이 생각하는 요즘이다,




2019년 12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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