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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영 Mar 30. 2016

향수병

무기력한 하루 하루를 보내다가 내가 한심해져서 쓰는 글

갑자기 찾아온 향수병은 좀처럼 떠나지를 않는다. 아침에 무기력하게 눈을 뜨면 속이 허해서 곧바로 부엌으로 간다. 파스타 면도 있고 빵에 발라먹을 쨈도 있지만 좀처럼 손이 가질 않고 빨간 봉지 라면만 찾는다. 최대한 맵고 뜨겁게 끓여서 얼마 남지 않은 김치쪼가리를 올려 먹는다. 원래도 매운 거를 잘 못 먹는 나는 씁씁 뜨거운 입김을 뱉으며 먹는다. 그러다 가끔 눈물 콧물도 찔끔 나는데 눈물이 나면 괜히 아부지 하고 잉 소리를 내게 된다. 항상 그리움의 시작은 아빠다.


생각보다 추웠던 포르투갈에서 감기에 걸리고 스페인까지 계속 콜록콜록하고 다녔다. 감기약을 잔뜩 챙겨 갔는데 맥주를 포기할 수가 없어 이것이 약주다 생각하고 약을 포기했다. 그래서 그런지 참 오래 앓았다.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귀여운 영국 소녀는 내가 계속 기침을 하니까 얼른 집에 돌아 가서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어야겠네라고 했다. 그 때 처음 기숙사에 돌아가도 혼자라는 것을 인식했는데 아마 이 때부터 향수병이 온 것 같다.


그래도 여행 중에는 괜찮았다.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 꼬부랑 말로 웃고 떠들고 신기하고 예쁜 곳들을 찾아 다니고 나면 피곤해 밤에 그냥 곯아 떨어졌다. 그러다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돌아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 순간 그렇게 외로울 수가 없었다. 시차도 계산하지 않고 여기저기 카톡을 보내고 페이스북을 들락날락 하고 그래도 나는 혼자라는 사실만 내 옆에 있는 거 같았다.


그 뒤로 며칠 동안을 배가 부른데도 속이 허해서 자꾸만 먹게 되고, 괜히 불러낸 친구와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나누며 크게 소리내 웃고, 집에 돌아와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 놓고는 뭐가 웃긴 건지 생각하다 그냥 끈다. 그리고 자고 또 다시 일어나자마자 부엌에 간다.


그러다가 오늘은 향수병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고향은 도시다. 그리워 할 꽃송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이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는 곳이니 그 곳이 그리울 수 있다. 말하자면 나는 장소가 아닌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문명의 눈 부신 산물 덕분에 언제든 이야기할 수 있고 얼굴을 볼 수도 있다. 그래도 실제로 볼 수 없고 닿을 수 없으니 나는 그 사람들이 그립다. 나의 향수병이 이런 감각의 결핍으로부터 오는가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본다.


말에는 힘이 있어서 외롭다고 말하는 순간 진짜 외로워지고, 보고싶다고 쓰는 순간 정말 코끝이 찡해진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말들을 항상 참아 왔는데, 속으로 되뇌이다보니 또 그게 말처럼 커져 버렸다. 그래서 지금 쓰는 글은 나를 위한 글이다. 까만 하늘에 별이 총총 떠 있어도, 햇빛이 강물을 반짝반짝 비추어도 휴 한숨이 터져 나와서 이 글을 쓴다.


사실 나는 사람이 북적북적한 서울에서도 외로웠다. 제일 친한 친구들이랑 왁자지껄 떠드는 중에도, 집에 돌아오는 나를 엄마 아빠가 반갑게 맞아줄 때에도 나는 외로웠다. 그런데 이렇게 모처럼 혼자가 되니 핑계가 생겼다. 한국이 그립고, 가족이 그립다고.


나는 누구나 인정하는 감성적인 사람인데 때로는 내 감정에 스스로 취해 그 감정이 일상을 압도할 때가 있다. 제일 심한 것은 짝사랑을 할 때이다. 나는 설레이고 마음 졸이는 그 기분을 놓칠 수가 없어서 고백도 하지 못한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도 그냥 밀어내고 만다. 돌아보면 나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 감정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고백도 못하는 짝사랑처럼. 혼자 누워 있다가 '보고싶다' 소리 내서 말하면 눈물이 핑 도는 그 기분이 찌릿찌릿해서 나는 거기에 향수병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계속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 내일은 부디 힘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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