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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영 Nov 13. 2021

즐거운 나의 집

내 쉴 곳은 작은 내 집뿐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친구와 놀다가 막차 시간을 슬쩍 넘겼다. 나는 택시 타고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친구가 여기 택시 안 잡힐 거라며 걱정했다. 대로에서 이십여 분을 서 있으면서 카카오에게 일방적인 거절만을 당하며 점점 희망 회로가 꺼져갔고, 우리는 택시가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을 확신으로 바꾸게 되었다. 일단 강을 건너기로 하고 우리는 강북으로 넘어가는 아무 버스를 탔고, 친구는 집에서 그나마 가장 가까운 정거장에 내려 삼십 분을 걸어갔다. 나도 그러려다 객기를 부려 중간에 내려서 다시 택시를 잡으려 했다. 내리고 나니 택시 아저씨는 또 절대 미끼를 물어주지 않고, 정신은 아득해지고, 설상가상 내가 탄 버스가 막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씽씽이를 타고 가볼까 심각하게 고민하다 미친 사람 같을 듯하여, 심야버스를 타기 위해 24시간여는 패스트푸드점에 앉아서 삼십여 분을 기다렸다. 밖에서 방황하며 고민하던 시간은 해봤자 10여 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진심으로 집에 가고 싶었다. 그때 내가 얼마나 집을 그리워하고, 나에게 집이 얼마나 소중하고, 이 입동이 지난 길바닥이 얼마나 차가운지 나는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택시를 탔다면 20분 안에 도착했을 거리를 2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렇게 집의 중요함을 우리는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다가, 자기가 집 나와서 고생할 때에야 집에 너무 가고 싶다며 징징거린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렸을 때는 무조건 집 나가서 밖에서 노는 게 최고였는데, 고등학생 때의 기숙사 생활과 대학 이후의 독립으로 인해 이제는 부모님 집은 그야말로 <즐거운 나의 집> 같은 곳이 되었다. 막상 뒤적여보면 별거 없는데, 마치 어렸을 때 잠깐 살았던 에덴동산의 느낌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지금 사는 집도 평소에는 나와 사이좋게 지내는 편이다. 하지만 친구 집들이를 다녀온 후 집이 좀 더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지가 언제인데, 혼자 길바닥에 서 있으니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라는 멜로디가 절로 나온다. 


집은 왜 그렇게 소중할까? 인간에게 꼭 필요한 의식주 중에 하나라는 기본적인 대답에서 좀 오버해서 생각해보면, 집은 인간다운 삶의 마지노선이다. 물론 못 먹으면 사람이 죽으니 먹는 게 제일 중요하기는 하겠지만, 여기서는 "인간다운 삶"에 포인트를 두고 싶다. 돈이 없어서 옷도 못 사고 맨날 라면만 먹어도 제 몸 누일 집은 있어야 한다. 비록 본인 명의가 아니고, 남들에게 더없이 누추해도 말이다. 왜냐하면 집은 자기 삶을 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물건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책장 속에 꽂혀있는 책들과 아끼는 옷들과 새로 장만한 주방 도구들이 떠오른다. 그 책들을 통해 취향을 표현하고, 꺼내서 다시 읽으면서 기쁨을 느낀다. 아끼는 옷을 꺼내 입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몇 가지 도구를 사용해서 더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일반적인 인간적인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만약 집이 없다면 나는 삶의 상당 부분을 헐값에 처분한 채 몇 장의 사진과 돈 몇 푼, 몇 벌의 옷만을 지니고 돌아다녀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역의 역사에서부터 지하철 입구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에 보았던 집 없는 분들의 고단함이 떠올라 숙연해진다. 


지금도 집의 곳곳에 있는 물건들과 이 공간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것들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끼고 있다. 이번에는 차디찬 길바닥에서가 아니라 따뜻한 집 안에서 말이다. 우리 집에 처음 놀러 오는 친구들은 다 집이 딱 너희 집 같다고 한다. 그러니 집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어느 정도 대변하는 듯하다. 아무리 친한 이라도 남의 집에서 자는 것은 늘 불편하다. 즐거운 곳에서 특별히 오라고 하지도 않지만, 어쨌든 내 쉴 곳은 작은 내 집뿐이다.





Photo by Lea Böh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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