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은 무엇이었습니까?
“어릴 때 장래희망은 무엇이었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단 한 가지의 장래희망을 얘기하고, 또 그 한 가지의 희망 직업이 현재 본인이 종사하고 있는 것일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어릴 때부터 항상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장래희망을 쓰는 칸에는 항상 선생님을 썼고, 부모님도 선생님이 되기를 바랐고, 그리하여 지금은 어느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나에게 이것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나는 장래희망이 수시로 바뀌는 아이였을 뿐 아니라, 성인이 되어했던 일들이 장래희망과는 거리가 한참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현실과 타협한다고 하기 보다는, 일을 통해 다른 일상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것에 만족하는 삶이라는 식으로 포장해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의 일은 나의 일상을 유지시키고, 일 년에 몇 번의 여행을 가능하게 해 주며, 사고 싶은 물건을 마음껏 사게 해 주며, 저녁이나 주말에 돈이 드는 취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직업은 참 좋고, 고마운 것이다. 비록 내가 꿈꿔왔던 일이 아니라고 해도.
어렸을 때부터 곧은 심지와 뚜렷한 목표의식에 따르는 노력으로 덕업이 일치되어 일 자체에 행복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많은 이들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어릴 적 원했고 그렇게 될 것이라 믿었던 꿈에 비해 현실이 그에 못 미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릴 적 꿈이 회사원인 경우는 거의 없지만(요즘 공무원인 경우는 많다고 하지만), 사실 많은 성인들은 회사원이 되었다. 그것도 유의미한 가치 창출이 아닐 수도 있는, 불쉿 잡(*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책)에 해당하는 일을 하는 이들도 매우 많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리스트를 만들어 봤을 때 그중에 정말 꼭 필요하고, 새로운 무언가(돈)를 만들어내는 그런 일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 자체는 불쉿 잡이 아니더라도 면밀히 분석해보면 사실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끌어안고 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일을 다 쳐내면 사실 사람들이 회사에서 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의 어릴 때 장래희망은 무엇이었냐 하고 물으신다면,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 초등학생 때는 정말 매년 꿈이 바뀌었다. 조금 사람다워졌을 때부터는 외교관이나 파일럿이 되고 싶었지만, 실제로 그것을 위해서 많은 것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입시 교육이 흘러가는 대로 몸을 실었고, 나 자신을 점수화했을 때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대학을 갔고, 그렇게 회사원이 되었다. 슬픈 결말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니까 10가지 환상이 1가지 현실로 마무리된 것이다. 소설에서 각기 다른 개성의 10명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죽고, 어디서 지나가던 뜨내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왕관을 쓴 것만 같은 기분이다. 대학까지도 뭔가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그때부터는 머리가 너무 커버려서, 사람들의 시선과 부모님의 기대(이제부터는 대단한 것은 되지 않더라도, 본인 밥벌이는 해 먹고살기를 바라는), 친구들의 안정적인 삶에 다다르는 속도와 그리고 나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어디라도 자리를 잡아야 했고, 그 자리가 자신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나는 대단한 과외를 받고 학원을 다니고 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입시 위주의 교육의 희생양이라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그렇다고 나는 피해자고 저들은 나쁜 사람들이야 그런 게 아니라, 당장 눈앞의 것을 보고 달리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한 느낌이다. 학교 생활 자체에 대한 반감은 없다. 나는 충분히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냈고, 대학에서도 전공과목에서는 큰 의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부전공이나 교양 수업을 통해 왜 대학이 진리의 수호자인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다만, 내 다양한 꿈들을 어렸을 때부터 좀 더 구체화하는 작업을 해왔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그렇다고 수학이 필요 없는 직업이니 얘는 수학 수업을 안 들어도 된다는 식이 아니라, 기본 수업은 다 듣되 아이의 꿈을 탐구하고, 적성을 찾아가는 그런 시간들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이 잘 찾아가는 친구들도 있었을 테니, 이것은 내 잘못도 있다. 하지만 나 같은 아이들이 더 많다고 가정한다면, 지금도 그 아이들은 자신의 꿈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찾아줄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젊음을 바치고 있다.
꿈의 말로 (末路 1. 사람의 일생 가운데에서 마지막 무렵. 2. 망하여 가는 마지막 무렵의 모습.)
이것은 꿈의 말로에 대한 자신의 슬픈 이야기이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던 자신감 넘치는 꼬맹이는 어디 가고, 나만 남았는지. 그래도 자기 계발을 위해서 계속 다양한 일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는 있다. 누구든 안 그러겠는가? 하지만 지금 내게 주어진 길이 내가 정말 원하는 길인가? 그것은 참 고민이 된다. 많은 이들이 ‘일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무리이다. 일은 현실이다.라고 하지만, 사실 잘하고 좋아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가치가 있고, 그것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는 것이 꼭 유니콘 같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지금부터라도 뭔가 변화가 생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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