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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영 Jan 07. 2024

어느 소설의 끝맺음에 대한 상상

작가는 주인공을 죽이고 소설을 마치기로 한다. 


오래전 어느 해의 삼월쯤부터 내가 만들어낸 어떤 여자의 인생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가장 불행한 삶들을 짜깁기해놓은 것 마냥 기구하기 짝이 없었다. 토지를 읽던 어느 잔잔한 밤, 나는 그 여자에 대해 떠올렸다. 그녀는 굉장히 나약해 보이고 실제로 불행한 상황에 처해있지만 누구보다도 강력하여 끈질기게 살아가는 여자, 아니 한 명의 인간이었다. 그녀가 태어나던 그 순간에 다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면서도, 그 인생에 대해 어느 정도 유추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딘가 울적한 마음을 지울 수는 없었다. 


나는 마음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삶에 주기적인 불행을 집어넣어 줘야만 했다. 주기적이라는 것은 시간적으로 유사한 공백을 가지고 있음이 아니라, 마치 파동을 그리는 그래프처럼 주기적으로 하강을 향해가도록 만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글을 시작한 이유이자, 그녀가 태어난 이유였기 때문이다. 순간순간의 운명에 맞서 싸워 때로는 이기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그 거대한 물결에 휩쓸리고 마는 한 명의 인간. 그녀도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 버린 수많은 인간들 중 하나일 뿐...


나는 태어나기를 내 진솔한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기 참 힘든 사람이기에, 그녀의 삶에 나의 삶을 투영한다던가 하는 일은 하지 못하였다. 나의 상상이거나 아니면 바람결에 들려온 이야기였을까. 그런데 나는 무슨 이유인지 점차 그녀를 마치 나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의 힘든 삶은 내 피조물의 괴로움일 뿐 아니라 모니터에서 손가락을 타고 넘어 내 일상까지 침투해 왔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괴로움은 가상의 인물일지라도 누군가의 삶을 짓밟는 행위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괴로움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고 점차 나의 삶 역시 그녀의 불행 앞에 잠식되어 갔다. 내가 더 이상 이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다만 일부라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더 이상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고 싶지 않다. 또한, 그것을 궤도에 돌려놓는다고 해도 다시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다. 나와 그녀에게 남아있는 탈출구는 하나뿐이다. 이만 여기서 한 줄기 빛을 따라 도망치는 수밖에. 




사진: UnsplashEugene Chystiak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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