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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현 May 20. 2020

캄캄한 방을 비추는 사람들 #1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로서 했던 일에 대해

천 명이 동시에 게임 '슈퍼마리오'를 플레이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정말로 천명이 동시에 플레이한 것 같진 않고,
각자 플레이를 하나의 시간 흐름으로 합성한 영상인 모양이었다.


이런 느낌이었는데, 그 영상을 찾을 수 없어서 '마리오 로열' 스크린숏으로 대신함


마라톤의 첫 스타트처럼 영상이 시작되면, 천명의 마리오는 프라이팬에 올려진 옥수수 튀겨지듯 화면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그냥 전진하면 지루하니까 다들 점프하면서 움직이는 모양이다) 슈퍼마리오라는 게임은 비교적 단순한 게임이니까, 큰 무리로 이동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게임 시작 직후부터 마리오는 점이 아닌 선으로 나뉘며 이루며 이동했다. 좌/우/점프라는 커맨드밖에 없는데 일부러 저러나 싶을 정도로 저마다 플레이 방식은 놀랄 만큼 고유했다. 시작과 동시에 뛰쳐나가기도 하고, 앞 뒤로 키를 움직여 확인을 해보고 출발을 하기도 한다. 뛰어넘어야 하는 장애물 앞에서 망설이기도 하고, 그대로 지나치기도 한다.


나는 영상을 한참 넋 놓고 봤다. 그 사이 1등 마리오는 공략을 외운 사람처럼 점프 몇 번으로 함정을 넘고 보스를 처치한 후 공주를 만난 후 화면에서 사라졌다. 보통 영상에서는 그 일등을 조명할 텐데 편집이 잘못된 것인지 별로 거기엔 관심이 없는지 영상은 한참 더 그대로 이어졌다. 일등이 지나가고 나면 곧이어 한두 번의 실수를 거친 플레이어들이 공주를 만나고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그렇게 2등과 3등, 그리고 그다음 순으로 차례차례 화면에서 사라진 이후에는 선과 같았던 '마리오'의 꼬리도 대부분 결승점에 도달한다. 선은 옅어졌다가, 점선이 되었다가 곧이어 사라진다. 그리고 얼마간 결승점으로 들어오는 마리오는 보이지 않게 된다.


인상적으로 봤던 부분은 그다음부터였다. 영상은 그곳에서도 끝내지 않고, 아직 결승점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을 찾아 나선다. 뒤로 이동하면서 역시나 고난도 장애물에서 여전히 점프하는 중 무리의 마리오, 그리고 '왜 저기서?' 싶은 곳에서 홀로 고군분투 중인 마리오, 첫 번째 장애물에서부터 고전하는 마리오, 결승점으로 이동하고 싶기나 한 걸까 싶은 마리오도 있었다. 영상은 추락하고, 미끄러지는 마리오 장면을 두 번 정도 보여준 후에 끝이 났지만, 마리오는 그 이후로도 끝없이 헤멜 예정이었지만 영상은 곧 캄캄한 어둠과 함께 종료되었다. 말하자면 당시의 내 업무였던 커뮤니케이션 매니저의 일은 정확히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회사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라는 게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왠지 괜찮을 것 같다고 느꼈는데, 그건 당시 내가 '글과 관련된 일이되 글만 쓰는 일이 아닌 일'이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글은 커뮤니케이션 도구이고 그렇다면 괜찮겠는데? 하는 사고의 흐름으로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버린 것이었다. 잘 모르는 것과 처음인 것이 많았고, 단기 근무를 제외하면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었고, 내 첫 커리어가 그렇게 시작된 셈이었다.


영상의 말미에 잠깐 나오는 '의도대로 결승점에 도달하지 못한 마리오'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당시 내가 마주해야 했던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미숙하고 어쩌면 창의적인 방법으로 결승점에 도달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과 나는 거의 매일 만나고 대화하고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나는 그들에게 짝사랑에 가까운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글(문자, 이메일, 안내문)과 목소리(대면, 전화), 때로는 손짓과 표정까지 활용해서 어떤 장애물에서 멈춰있는지 확인하고 해결법이나 대안을 찾아주려 노력했다.


사실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게임이 아니므로 사실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편이, 그래서 어느 누구라도 정해진 경로에서 이탈하지 않고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는 편이 좋았겠지만, 현실 세계의 장애물은 의도 없이 스스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불가피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고객을 직접 만나고, 상황을 확인하는 일은 많지 않아서,
대부분 그들의 말과 글로 더듬더듬 상황과 해결법을 찾아야 했다.
매번 처음에는 캄캄한 방에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요즘에는 서비스가 고도화되어서 어디서 어떻게 왜 정체되고 이탈되는지에 관한 좀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불과 몇 년 전이지만) Latte는 기본적인 정보 외에 도움이 되는 정보는 거의 없어서 없었기 때문에 더 심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은 캄캄한 방에 불을 하나씩 켜 나가는 것부터 했다. 섣불리 짐작하지 않고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파악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서비스에 어느새 애착이 생겨서, 서비스의 오류나 부족함보다 고객의 실수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자주 들고 또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도 전적으로 고객의 말을 듣고 확인해보는 과정이기도 했다.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건 언제나 그다음이었다. 다행히 당시 내 사수와 다른 팀원은 고객과 30분도, 1시간도 넘게 통화하는 나를 재촉하지 않았는데, 아주 나중에 그건 무척 드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통은 평균 진료 시간 몇 분 하는 ㅇㅇ병원과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이 빠른 해결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고 한다.) 


빠른 이해와 해결은 그 나름대로, 오랜 시간과 노력으로 해결한 것은 또 그 나름대로 뿌듯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대체로 수고로운 일이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는 한, 그 기술의 불완전이 존재하는 한, 지속될 수고 이기도하다. 그리고 얼마 전 어느 콜센터에는 코로나 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콜센터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기사가 다뤄졌지만 그중에서도 각자 도시락을 싸와서 함께 나눠 먹는 직원 문화를 다룬 기사에 유독 큰 비난과 혐오가 터져 나왔다. 사실, 문제의 경중을 따지자면 도시락을 함께 나눠먹는 일부 직원의 1시간도 채 되지 않을 점심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외의 8시간 이상의 근무시간과 '닭장'으로 묘사되는 근무 여건이 더 문제였을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이런 고객센터(콜센터) 상담원에 대한 혐오는 대부분 알겠지만 이번이 처음이 아닐 뿐 아니라 반복된 문제였단 사실이다.


P.S_할 말이 남은 것 같아 #2 에서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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