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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혜 Aug 19. 2019

처음 떠났던 여행 (2)

 

2018년 5월 - 처음 떠났던 여행 (2)



3. 
어쩌면 그 여행은 처음부터 삐거덕거렸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요상한 느낌이 있었는데 어쨌든 같이 가기로 한 거니까 모른 체 했다. 그냥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시작된 여행 준비. 일정 짜고 숙소 찾고 메일 보내 예약하고 나만 혼자 안달복달 조급했다. 어디 가고 싶어? 가면 뭘 먹고 싶어? 꼭 하고 싶은 건 뭐야?
내 질문에 되돌아오는 네 메아리는, 지금 좀 바빠서. 일단 네가 정해.

3-1. 
그로부터 한참 후 시간이 흐르고 흘러, 결혼 준비를 하던 다른 친구가 '이상해. 결혼은 둘이 하는 건데 왜 혼자 안달 나고 혼자 준비 하는 거 같지?' 하며 앞에서 엉엉 울 때, 난 아직 결혼도 안 해봤는데 이상하게 그 기분 뭔지 알 거 같다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었다. 

3-2. 
돌이켜보면 우린 서로 참 좋은 사람들인데, 같이 하기엔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 차라리 나도 너처럼 얼굴에 있는 그대로 내 감정이 죄다 확확 드러나는 성격이면 차라리 나았을 지도. 아냐, 그럼 애당초 우리 둘 다 비행기 표조차 안 끊었을지도 몰라.

4. 
그렇게 우리는 김포에서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고, 진정 스펙타클한 첫 여행을 맞이했다. 시작부터 딜레이. 불필요한 건 줄여서 둘 다 짐을 기내에 갖고 타자했으나 친구 고집으로 기어이 부친 캐리어 하나가 직원 실수로 다음 비행기에 실어져 오고 있었다. 우리는 몇 시간이고 공항에서 죽치고 앉아 캐리어를 기다렸다. 
여행 시작이니까 기분 나빠도 꾸욱- 꾹- 최선을 다해 하고픈 말들을 눌러 담았다. 너 어차피 여기와도 그 책 전혀 안 읽을 거잖아. 카프카 전집을 도대체 왜 챙겼던 건데... 글고 고작 2박 3일인데 무슨 갈아입을 옷이 그렇게 많아... 연예인이냐... 속으로 울컥 불컥 끓어오르는 열 받은 감정들을 마음 속 깊은 곳에 송곳으로 바를 정(正)자 새겨가며 삭히고 있는데 친구가 옆에서 캐리어 안에 든 인형 없어 지면 안 되는데 걱정을 했다. 무슨 사연있는 인형이면 또 몰라. 남자친구가 사준 거란 거 다 아는데... 기숙사에서 짐 쌀 때부터 일본 가서도 이거 안고 자야 편하게 잔다며 해맑게 인형을 챙겨 넣던 모습이 욱 하고 떠올라 소심한 나는 속으로 계속 정정정정정(正正正正正) 새기며 애써 참았다. 공항 콘비니(편의점)에서 산 향긋한 일본 밀크티를 빨며.

 4-1. 
캐리어를 기다리며 나는 신주쿠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을 일본인 친구가 생각났다. ‘걔한테 늦는다고 어떻게 전하지? 기다릴 텐데...' 연락할 방법이 없어 막막한데, '기다리겠지. 뭐 다른 방법 있어?’ 무사태평한 대답이 돌아왔다. 난 울면서 그냥 화장실로 가버렸다. 야, 어디 가. 어, 나 물 좀 먹고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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