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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빛 Sep 09. 2020

내 안에 두 개의 심장이 뛴다

임신 후 첫 병원 방문기


[두려움 속 첫 병원 방문]


    임신 4주 차에 임신 테스트기로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병원에서 임신 확인을 땅땅땅 받는 일은 조금 미루고 있었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보통 초음파로 임신 4주 차에는 아기집만 보이고, 5주 차에는 난황(아기에게 영양을 공급해주는 주머니)까지 보이고, 6주 차는 되어야 아기가 보일 거라고 했다. 너무 일찍 가서 애매하게 '아마도 임신인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오세요.'라는 소리를 듣느니, 내 두 눈으로 아기를 볼 수 있을 때 가고 싶었다. 폭풍 검색으로 우리 집에서 가까운 좋은 병원과 원장님도 알아냈다. 병원 홈페이지에서 원장님들의 사진까지 확인하며 우리 기준으로 인상이 좋은 분을 골라 6주 차에 맞춰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 몸은 갈수록 피곤해졌고, 매일매일이 설렘과 불안으로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양가 부모님께는 미리 임신 사실을 알렸다. 모두 매우 기뻐하셨지만 진심의 축하와 기쁨의 표현은 임신 확인 땅땅땅 이후로 미뤄두셨다. 하루하루가 너무 천천히 지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 일, 5주 차 2일쯤 되던 날 속옷에 피가 비쳤다. 임신 상태에서 피가 비치는 일은, 가장 위험한 징조 중 하나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나는 이때 정말 말 그대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안 그래도 콩알만 한 심장이 더 쪼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아기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갑자기 나의 온 세상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한두 달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아기가 이제 나의 온 세상이 되었다는 게 놀랍다.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엉엉 우는 나를 보고 신랑도 당황했다. 나를 달래며 진정시키려 했지만 신랑도 몹시 긴장했을 터. 그 날은 휴일이라 우리가 예약해두었던 병원이 문을 열지 않는 날이었다. 패닉의 상태에서 우리 둘은 휴일에도 문을 여는 근처 병원을 열심히 검색했다. 그리고 차려 놓은 밥상도 그대로 두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초음파 검사를 시작했다. 집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내 자궁 안 아기의 상태를 드디어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게 아기집이고요, 여기가 아기에게 영양을 제공하는 난황, 그 옆에 조그마한 게 아기예요. 피는 확인이 안 되는데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계속 흔들리던 나의 세상이 겨우 제 자리를 찾았다. 내가 본 피는 착상혈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분비물일 수도 있다고 하셨다. 아기는 이제 2mm라고 했다. 하나의 생명이 그렇게 작을 수 있다니. 그리고 그 생명이 내 안에 있다니. 여전히 실감은 잘 나지 않았지만 안도와 기쁨으로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엉엉 울고 긴장했던 것이 언제였냐는 듯 나는 한순간에 행복해졌다. 집에 돌아와 아까 차려놓고 먹지 못한 밥을 먹었다. 꿀맛이었다. 양가 부모님께도 소식을 알렸다. 이제야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축하를 아끼지 않고 해 주셨다.



    태동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20주 전까지는 배 속의 아기의 존재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느낄 수는 없는데 너무 소중한 존재이다 보니, 자꾸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 몸 중에 어딘가에 이상이 생기면 웬만하면 눈에 보이는데 배 속의 아가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병원을 가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게다가 난생처음 겪는 임신이기에 생소한 증상들도 많아서 더 불안하다. 임신 초기에는 내내 불안 속에 살았다. 배가 조금만 아프면 아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몸이 너무 피곤하면 아가도 피곤한 건 아닐까. 그냥 매 시간이 불안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임신 초기에는 배도 참 많이, 그리고 자주 아프다. 콕콕 쑤시기도 하고 생리통처럼 싸하게 아프기도 하다.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많았다. 나중에 들은 의사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다 자궁이 커지느라 생기는 자연스러운 통증이었다. 지금은 아기의 태동이 느껴져서 그 불안이 조금 줄어들었지만 건강한 아이를 내 품 안에 안게 되는 그날까지, 불안은 계속될 것 같다. (물론 아기를 낳고도 늘 노심초사하는 마음은 여전하다고들 하지만.)


[설렘 속 두 번째 병원 방문]


    불안 속에 살다가 맞이하는 "병원 검진의 날"은 늘 설레는 날이다. 아기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니까. 폭풍 검색으로 예약해두었던 6주 차의 병원 진료, 그 날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바로 이 날 우리 아가의 심장소리를 처음 들었다. 임신한 대부분의 엄마, 아빠는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 작고 소중한 존재의 심장 소리를 듣는 일은 정말 감동의 물결이다. 아가의 크기는 이제 3.5mm. 며칠 사이에 2mm에서 3.5mm가 된 것부터가 일단 감격스러웠다. 심장 소리를 듣기 전부터 3.5mm의 아가 몸에서 하얀색으로 반짝반짝 심장이 뛰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그리고 소리를 들었다.

벌컥벌컥, 칙칙폭폭

대략 이런 느낌이었다. 표현하기 어렵지아주 우렁찼다. 아기의 몸통은 아직 작은 올챙이 같은 형태였는데, 그 작은 생명에 심장이 우렁차게 뛰고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가만히 내 심장에도 손을 대 보았다. 두근두근, 내 심장은 늘 그랬듯이 쉼 없이 뛰고 있었고, 이제는 내 몸 안에 또 하나의 심장이 저렇게 힘차게 뛰고 있다. 두 개의 심장을 잘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에 큰 책임감을 느꼈다. 

또 하나의 심장, Unsplash


    작지만 너무 소중한. "너무 소중한"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다 안 될 만큼 정말 눈부시게 소중한. 그런 존재가 내 안에서 생명력을 키워가고 있다. 계속되는 불안감도 이 존재가 나에게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지만, 그 불안감을 견디면서 꿋꿋하게 아가를 지켜낼 수 있는 힘도 이 존재의 소중함 때문에 생겨난다. 오늘도 다짐한다. 이 작지만 너무 소중한 존재를 꼭 잘 지키겠다고.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으로 아기를 키워내겠다고.

"아가야 안녕? 엄마랑 아빠가 앞으로 많이 사랑해줄게. 무서운 세상에서 건강하게 지켜줄게."

조심스레 읊조리면 아기의 심장도, 나의 심장도 함께 두근두근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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