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묻고 육십이 답하다
6. 금요일, 헤어짐이 지나간 자리
효경: 헤어진 남자친구 곁에 있을 때는 죽을 것처럼 사랑하고, 곁에 없을 때는 마음에 그림을 그리듯 그리워하면 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네요.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고 차갑게 등 돌린 건 나인데 상대방이 떠나니 가슴속에 숨어 있던 그리움은 "네가 어떻게 날 떠나?" 하며 매달려요. 그리움은 마흔이라는 바다를 따라 출렁거려요.
현정: 헤어진 남자친구는 없고, 나는 헤어진 남편 얘기를 해야 하나? 남편한테도 시댁에도 할 만큼 해서 그런가 미움도 미련도 없어. 남자도 여자도 따로 보면 좋은 사람일지라도 그 둘이 안 맞을 수도 있으니까. 좋은 남편이 아니라도 좋은 아빠일 수 있고, 아들 말처럼 우리는 각자 잘살고 있으니 된 것 같아. 외국 사람들처럼 친구같이 노후를 보낼 수도 있겠지. 그보다는 나도 바다처럼 마음이 출렁거리는 남자친구를 찾아야겠네
효경: 나는... 낙태하려다 낳은 아이라는 농담 섞인 말을 듣고 불안하게 자랐던 아이였어요.
그래서인지 세상과 사람들에게 ‘그댄 소중한 사람’이라고 ‘그대가 있어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현정: 누구나... 세상에 태어난 그 자체로 축복받고 소중한 존재야. 일부러 내 가치를 증명할 필요는 없는 거야. 특히 아이들은 모두 귀하게 대접받아야 해. 요즘 아동학대 기사들을 보면 정말 안타깝고 가슴이 아파. 나는 어릴 때 잘난 오빠와 비교해서 항상 모자란 아이였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나보다 오빠가 더 힘들었겠다 싶기도 해. 나는 엄마 사랑을 못 받아서 애정 결핍이라고 부르짖고 다니는데 오빠는 장남에 대한 부모의 기대가 너무 힘들어서 집을 나가고 싶었다고 하더라구. 누구나 참 다른 자기의 입장이 있는 거구나 다시 깨달았어. 나는 집에서 관심을 못 받은 덕분에 독립적인 성격이 되어서 힘든 세상을 혼자 버티기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거든.
7. 토요일, 그리워 하는 날
효경: 엄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했는데 그때 보았던 엄마 신발이 내 신발장에서 보여요. 엄마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는 신발에 내 발을 넣고 엄마가 그토록 살고 싶어 하셨던 오늘을 살고 있네요.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지금의 나의 나이였을텐데, 저는 그다지 그토록 살고 싶은 삶의 간절함은 없는 듯해요,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어서일까요? 나이가 들수록 삶을 기대어 대화를 나누던 어른들이 곁을 떠나고 점점 삶의 물음들을 입 밖으로 꺼내는 만남이 줄어들어요. 그래서인지? 쉬는 토요일은 그리운 이름들 보고픈 얼굴들이 많아지네요.
현정: 토요일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는 날로 정하는 것도 괜찮겠네 얼마 전 보았던 드라마 대사가 생각이 나. “나의 하루는 기다림으로 시작해서 그리움으로 끝이 난다.“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과 <무브 투 헤븐>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죽음과 유품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던 거 같아. 사람이 가고 남기는 것들. 돌아가신 부모님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나는 무엇을 남기게 될까. 유품을 보면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보인다는데 나는 쓸데없는 것을 남기지 말고 깔끔하게 가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해. 아들에게 남겨 줄 재산도 없고 내가 줄 수 있는 건 시간과 추억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매년 가을 여행도 가고, 사진도 같이 찍고. 눈에 보이지 않는 기억들도 유산이니까.
8. 일요일, 죽음과 마지막
효경: 무소의 뿔처럼 살고 있는 용기는 엄마를 돌보던 7년의 시간과 죽음을 마주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몇 년 전에는 믿었던 친구가 같이 살던 전세금을 빼서 도망갔어요.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시집갈 때 쓰라던 돈이었는데 하루아침에 길에 나앉았어요.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친구를 찾았는데 그는 나에게 줘도 빚쟁이고 안 줘도 빚쟁이니 안 갚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앞으로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 했어요.
그 후로는 슬프고 상처받아도 사람에게 연연해하지 않고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대로 그냥 두어요. 물 흐르듯이 만나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든, 아니면 오래 곁에 머물러있는 친구이든 만나는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어떻게 네가 그럴 수가 있니?’라고 누굴 원망하거나 애달파하지도 않게 되네요.
요즘은 혼자 밥을 먹고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혼자 예배드리는 환경에서 묵묵히 기도하고, 성경책을 읽고, 나의 공간에서 내 할 일을 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현정: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오늘을 사는 것이다’ 내 책에 있는 꼭지 제목이기도 하다. 가끔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죽음을 얘기할수록 하루하루가 소중해져. 아마 2017년 동생이 떠나고 나서였던 것 같아. 가족들을 두고 먼저 가버린 동생을 원망하고 화를 내며 몇 년을 보내고 나서 내 인생이 더 소중하고 시간이 아깝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어. 한 번뿐인 인생, 그리고 너무 짧은 인생.
‘오늘 하루를 잘 살자’ 보통 사람들도 다 알지만 잊고 사는 거지. 그러다가 나 같은 일을 겪거나 주변의 누가 갑자기 떠나면 새삼스레 죽음이 항상 옆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어느 날 문득 정신 차려보니 죽음에 내 앞에 와 있을 수도 있다. 더 늦기 전에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채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