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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입가경 Mar 03. 2020

커피를 좋아하는 마음

춘곤-윤석철 piano solo ver.

https://www.youtube.com/watch?v=ctpodgrz60A

*오늘의 글과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는 '춘곤-윤석철 piano solo ver.'입니다.

(컴퓨터/아이패드 환경에서는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읽으실  있습니다.)


자기 전에 지도를 켜서 가고 싶은 카페들을 카카오 맵에 별표 해놓는 습관이 있다. 주요 동선에 평점이 높은 카페를 발견하면 체크해 두었다가 간다. 연희동 플릿커피도 그렇게 다녀왔다. 좋은 기분에 무리해서 커피를 두 잔 마셨다. 드립 커피와 라떼. 인상 깊은 맛이었다. 조리 있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소중한 사람을 데려다가 맛 보이고는 “어때, 좋지?”하고 묻고 싶은 마음이 든다.


커피를 좋아할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진다. 나는 그저 다크와 라이트 중 다크를 고르는 사람, 겨울엔 캐러멜이나 초콜릿 맛을, 여름엔 꽃이나 과일맛을 고르는 사람. 그러다 근사한 드립 커피를 마시면 원두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직접 갈아 마시기를 해본다. 단순한 방식으로 취향을 확장한다. 최근에 좋아하게 된 원두는 브라질 다테하 스위트 컬렉션, 홍대 커피랩에서 마시고 사 왔다. 커핑 노트에는 예쁜 단어들이 많았다. 견과류, 카카오, 균형감, 고소함, 단맛, 편안함.


플릿커피의 메뉴는 선택지가 많았다. "브라질 원두를 좋아하게 됐는데 비슷한 맛이 있을까요?" 하고 코스타리카 미겔 로하스를 추천받았다. 커핑 노트는 복숭아, 포도, 캐러멜, 황설탕, 밀크 초콜릿. 천천히 드시라고 조금 뜨겁게 내어 왔다는 말에 예쁜 잔에 나온 까만 커피를 한참 봤다.


호로록, 커피를 맛봤다. 깊고 달큰한데 상큼했다. 신기하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다크한데 라이트 할 수 있다니? 이럴 수가? 하며 한입 두입 하다 보니 금방 바닥이 보였다. 황급히 끝나버린 커피타임에 멋쩍어서 벽에 붙은 엽서들과 꽂인 책들, 사장님이 콩 볶는 모습을 구경했다. 콩 볶는 소리와 냄새가 좋았다. (사운드하운드로 찾은) 글렌 굴드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맞춰 착착착착, 울리는 소리가 리드미컬했다. 종종 라떼를 테이크아웃하는 손님이 들렀다 갔다. 라떼는 무슨 맛이길래? 그렇게 라떼도 주문했다. 시럽을 넣었나 싶을 정도로 원두의 향긋하고 달달한 맛이 살아있는 라떼였다. 아, 나는 이제 다른 카페에서 라떼를 마시다가도 플릿커피의 라떼를 언급하고 싶은 기분이 들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했다.


기원도 모르게 커피를 마시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 됐다. 출퇴근 시절에는 아침에 정신을 차리거나, 점심 먹고 또다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커피를 보조제처럼 마셨는데, 이제는 커피를 취미나 습관처럼 여긴다. 커피를 위한 카페 방문, 갈지 않은 원두를 품에 들고 와서 직접 갈아 마시기. 좋아하는 원두를 기억해 두었다가 또 사 먹고, 드립 기구를 사모으고, 커피 내리는 법을 배우면서 더 궁금한 것이 많아진다.


직접 내려먹는 커피의 맛은 불안정하지만 재미있다. 이제는 커피의 맛보다 내려먹는 과정 자체를 사랑하고 있다. 물이 끓는 동안 원두를 갈고, 물이 적절한 온도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필터를 적시고 컵을 데운다. 잘 갈린 원두를 통통 두드려 평평하게 만들고, 작은 원을 그리면서 천천히 물을 떨어뜨린다. 뜸을 들이고, 다시 부풀어 오르는 원두를 구경하는 시간들. 좋아하는 마음은 이제 어디로 향할까? 중배전이나 강배전, 그런 것들을 빠삭하게 아는 때가 올까. 원산지마다 특징을 줄줄 꿰고 있지만, 물어오는 사람에게는 그림 그리듯 쉽게 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 직접 프라이팬에 콩을 볶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고. 그러다 내가 만든 일관된 맛의 커피를, 작고 예쁜 모양의 라떼아트를 그려 넣은 라떼를 내어 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일단은 날이 좀 더 따뜻해지기 전에, 플릿커피의 따뜻한 라떼를 다시 마시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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