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고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만으로 기억하고 싶은 날이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빔프로젝터를 들인다면 벽 한편에 매일 틀어두고 싶을 만 큼 장면마다 좋은 영화였다. 소리 없이 눈으로 말하는 사랑. 그날을 접어두려고 글로 복기한다. 영화에 대한 정보라고는 '평론가 이동진이 평점 5점을 준 퀴어영화'라는 한 줄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볼 이유는 충분했다.
영화는 아름다웠다. 중반부의, 뒤를 돌아본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 낭독 장면부터는 눈물이 마음대로 흘렀다. 영사 중인 절절한 사랑 앞에 앉아있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영원한 이별과 일방향의 재회 두 번, 28페이지에 마음을 묻어두고 사는 일, 서로 뜨겁게 바라보는 것, 지나가버린 많은 장면들이 벌써 그리웠다.
마리안느는 보지 않고도 초상화를 그릴 정도로 엘로이즈의 얼굴을 외웠다. 엘로이즈는 그런 마리안느를 눈감고 만나러 갔다. 눈빛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종종 뜨겁고 애틋하다. 그래서 보고 싶다는 말을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에 발을 그려 넣은 것 같다. 그런 의미로 내가 아는 사랑의 언어 중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시선이다. 뒤집기 하기 직전의 아이를 보듯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보게 되는 것. 마주친 눈에 깜빡 사랑을 깨달아 버리는 것.
무언가에 집중한 입술을 관찰하거나, 잠든 눈썹을 쓸어보는 일, 안녕하고 멀리 걸어가는 모습을 작은 점이 될 때까지 바라보는 일. 그런 것들이 지닌 기쁨과 슬픔을 이 영화를 통해 알아차린다. 사랑은 시선이 닿는 아주 사소한 점에서부터 시작하여 존재한다. 그것은 숨기거나 꾸며내기가 어렵다. 바라보는 일은 통제나 노력의 단위로 셀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