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보다 더 나은 '그곳'은 없다.
'이곳'보다 더 나은 '그곳'은 없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당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어떤 삶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있다.
필요한 해답은 모두 자신 안에 있다.
그리고 태어나는 순간
당신은 이 모든 규칙을 잊을 것이다.
- 삶이 하나의 놀이라면 (체리 카터 스코트)
5년간 운영하던 캠핑장을 정리하고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이케아에서 사들인 가구들을 조립하고 방 닦고, 마당 쓸다 보니 한 달이 금방 지난듯하다. 어느덧 가평에서의 가열찼던 시간들은 희석되어 벌써 술 안주거리가 되었다.
나에겐 '삶이 송두리째 변화하여 새로운 터전, 환경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먹고사는 일들이 싸지른 스트레스, 인간관계에 낀 때들이 수북한 책상을 송두리째 업어버리고 제주도로 확 가버리는 로망 같은 거 말이다. 리셋이 가져다주는 달콤함은 상상만 해도 힐링이 될 정도다.
이번엔 경기북부 끄트머리에서 남한 땅 남동쪽 끝으로 내려왔으니 얼마나 속 시원하고 설레겠는가...
허나 안타깝게도 15년 만의 귀향, 새로운 터전은 그다지 셀레이지도, 달콤하지도 않다.
5년 전 멀쩡한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캠핑장을 하겠다고 경기도 가평으로 도주한 전과가 있다.
답답한 회색 공기를 벗어나 맑은 공기와 사치스러울 정도의 여유를 선물 받은 것 같아 한창 들떴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 젊은 시절의 귀촌이 쫓겨 가듯 흘러가는 청춘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런 기대들은 구석구석 뒤져야 겨우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가물가물해졌다. 낭만적이었던 산속 공간들은 일터가 되어 있었고, 꾸미고 가꿔가던 터전은 귀찮고 고된 일거리가 되었다. 그렇게 원하던 여유로움은 지겨움과 나태함, 그리고 정체가 빚어낸 조급함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일 년이라도, 하루라도 가능하다면 이 지겹고 고된 일터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새로운 환경 따위, 꿈꾸던 터전 따위 이 얼마나 하찮은가!
분명한 것은 꿈꿔오던 이상적인 터전을 고통의 공간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일 것이다.
5년 전 도주 전과로 인한 학습효과 덕에 15년 만의 귀향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삶의 여유와 낭만을 제공해주는 무대들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회색빛 서울에서도, 비. 바람 몰아치던 캠핑장에서도- 더불어 변함도 없다. 다만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나의 시선과 정의로 그 공간은 파라다이스가 되기도 하고, 다람쥐 챗바퀴가 되기도 한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공간들을 사랑할 줄 모르면, 그 어떤 파라다이스에서 다른 삶을 시작하더라도 그 공간은 머지않아 정체되어 지루함과 나태함에 신물 나는 다람쥐 챗바퀴가 될 것이다.
1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곳'보다 더 나은 '그곳'은 없을 것이다.
동네 한 바퀴 돌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