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이사를 한다.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를 남편과 함께 디자인하고 설계해서 아기자기 예쁘게 살아왔는데 사실 믿어지지 않는다.
깊은 잠, 깨고 싶지 않은 꿈이 누군가의 뒤척임으로 쨍그랑. 뜨여지지 않는 눈을 찡그리며 겨우겨우 아이들 등원을 돕는 그런 느낌이다. 가끔 설레기도 하지만 대체로 부정적 감정이다.
남편과 5년, 아이들과 또 5년..
그렇게 이곳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썼다. 이성적으로는 안다.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쓰면 된다는 걸.. 이사하는 게 번거롭고 의도치 않은 많은 만남과 대화를 해야 하는 게 귀찮아 그럴지도 모른다.
가기로 했으니 그냥 그것만 생각하자 하며 하루하루 달래 본다.
이사는.. 이사는 마치 길고 긴 여행 같다.
조금은 두렵지만 또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동네에서 살아보는 것.
여행이 즐겁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떠나는 것처럼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이사도 인생도 녹록할 수는 없다는건 분명하다.
긴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이사를 해야겠다.
적어도 여행을 하는 그동안은 확실한 그만의 설렘이 있으니까.
수많은 여행에서 얻는 기억들을 한 주머니에 담아 내 곁에 꼭 간직한 채로 그렇게 떠나야지.
그런 기분으로 이사를 한다는 건 굉장히 신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서랍에 담아뒀던 글을 꺼내보는 건 굉장히 나 스스로도 은밀한 일이다. 내가 쓴걸 내가 보는데도 기분이 이상하다. 이사 온 지 두 달이 되어간다. 그래.. 내가 이런 글을 썼었지. 그때 나의 힘들었던 감정들이 느껴진다. 뭐가 맞는 건지 어떻게 해야 꼭 맞는 건지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감정들이 나를 괴롭힐 때가 있다. 맞출 필요 없는데.. 그냥 하면 되는데.. 그냥 걸어가면 되는데.. 가끔은 뛰어도 되는데.. 꼭 들어맞는 상자 속에 나를 꼭 맞춰서 넣을 필요 없는데.. 가끔 보면 스스로를 숨 막히게 한다.
이사를 하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아이들 유치원과 학원도 적당히 잘 옮겼고 새로운 취미도 생겼다. 비우면 비울수록 더 크게 보이고 정리가 된다. 꽤 많이 비워진 느낌이다. 큰 일을 치러서 또 그동안의 걱정거리들이 모두 해결이 되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 아직은 낯선 부분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