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욕심마저 내려놓게 한 아름다운 시골길 <대구–부산>
밀양에서 오래 있지는 못했다. 오늘 안으로 삼랑진과 김해를 거쳐 부산까지 도착해야 했기 때문이다. 버스는 밀양 터미널을 지나 삼랑진까지 가는 길에 오른편으로 한동안 밀양강을 여러 번 넘나 들었다.
조선시대까지 응천으로 불렸던 이 밀양강은 발원지가 울산시 소호리에 있는 고헌산이다. 내가 탄 버스는 밀주교를 지나는 바람에 보물 제147호 영남루의 멋진 전경을 볼 기회는 없었지만 아름답게 흐르는 밀양강을 바라보며 다소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리처드 필립스의 [지리 답사란 무엇인가?]란 책이다.
꼭 지리를 배우지 않더라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현장이란 지리적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영감과 상상력이 현실로 체화되는 공간이다. 이 책은 답사가 지리학의 전유물이 아님을 강조하며, 답사와 여행을 깊고 진지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가 답사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의 선입견이 바뀐다. 이 책을 번역한 서태동 교사는 이 책의 놀라운 장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 답사란 아는 것을 확인하려고 떠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때론 알기 위해서 떠나는 답사도 있으며, 모르는 것 자체를 찾기 위해서 떠나는 답사도 있다. 심지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지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오직 직관과 지각에 의존해서 영감을 얻으려고 떠나는 답사도 있다.
둘째, 오히려 알고 있는 지식이 풍부한 답사를 방해한다는 주장이다. 답사는 배우는 사람이나 인솔하는 사람이나 자신과 타인의 앎의 상대성과 불완전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할 때, ‘보는 것’은 답사활동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시각 중심주의를 배제하고 답사자의 정신과 감성, 육체를 아우르는 총체적 경험을 하라고 설득한다.’
나는 이 고단한 버스여행을 왜 시작했을까 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었다. 여행과 답사를 통해서 이 땅을 새롭게 경험하며 나의 생각과 실천을 바꾸고, 이런 교감을 나눔으로써 사회를 보다 풍부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뭐~그런 허무맹랑한 상상을 혼자서 해보았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누가 이 책의 추천사를 한 줄로 얘기해 달라고 한다면 나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후 그냥 답사가 좋아졌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