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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Mar 15. 2020

108. 밀양 삼랑진읍_벼랑길 너머 한숨 돌리고

Chapter 6. 욕심마저 내려놓게 한 아름다운 시골길 <대구–부산>


일본으로 가는 조선통신사들이 부산으로 내려가던 길. 과거 보러 경상도 선비들이 한양 가던 길. 보부상들이 봇짐을 가득이고 벼랑길 낭떠러지를 숨죽이며 걷던 험한 지름길. 한양과 동래를 잇던 조선의 영남대로다. 한양에서 동래까진 길이 너무 멀어 천리 길이라 불렀는데 그 먼 길도 영남대로를 따라가면 족히 14일이면 한양에 떨어졌다고 하니 당시로는 엄청나게 빠른 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빨리 가려면 지름길을 택해야 했기에 대로라곤 하지만 때론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고 지났어야 했을 것이다.

     


그 고비가 이곳 삼랑진에 있었다. 천태산 기슭의 깎아지른 듯한 벼랑에 길이 뚫려 있는 일명 벼룻길(베랑길이라고도 한다)이다. 실제로 당시엔 이 길을 지나던 많은 사람들이 불귀의 객이 될 정도로 험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까치도 넘어가기 힘들다는 비유로 ‘작원잔도’라 이름을 붙였을까. 새도 힘들어했었다니, 아무튼 우리네 선조들의 풍류와 기개가 좔좔 넘치는 길이다.     


그런데 아무리 지름길이라도 좀 돌아가면 되지 굳이 험한 삼랑진 길을 지나갔을까. 삼랑진은 지명처럼 강, 길, 산이 모두 세 갈래로 갈리는 요지다. 조선의 대로인 영남대로가 이런 요충지를 비껴갈 리 없었을 것이다. 현재 삼랑진의 그 험한 길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경부선 철도에게 오솔길을 내주고 역사 속으로 표표히 사라졌지만, 옛 작원잔도의 원형 일부가 확인되어 문화재급 가치를 지닌 옛길로 평가되고 있다. 삼랑진에서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 자전거도로를 달리다 보면 영남대로의 옛길인 작원잔도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예전 영남대로엔 거리를 표시하는 장승의 입표가 삼 십리마다 세워져 있었다. 그 거리를 일식이라 했다. 주막에서 국밥 한 그릇 먹고 쉴 때라는 보부상들만의 거리 단위였다. 그러니까 30리 걷고 쉬라는 말인데 이를 위해 나라에서 삼 십리마다 역참을 두었다. 밀양길에선 작원관이 역참 기능을 대신했는데, 좁고 험한 길목이라 유사시엔 적은 규모의 군사로 적을 막아내는 중요한 요새로 활용되곤 했다고 한다.     



삼랑진역에서 조금 떨어진 내부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천 길 낭떠러지를 간신히 넘어서 도착한 통창골 주막거리에서 ‘아휴~나는 이제 살았네’ 하며 낮술을 걸친 보부상 장사치들의 술판 소리가 강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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