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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플 Nov 04. 2023

나는 엄마처럼 안 살 거야

나의 이상형은 ‘이지고잉’하는 ‘곰돌이푸우’ 상의 푸근한 남자이다. 하지만 내 남자친구는 나만큼 예민하고, 푸근하기보다는 마르고 날카로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 ‘이지고잉’하지 못하고 매번 뭔가에 집착하고 괴로워하는 일이 많은 나의 걱정을 ‘후우’ 하고 불어줄 남자를 원했으나 아빠 말대로 ‘산 좋고 물 좋은’ 남자는 없었다. 얼마 전 친한 언니네 둘째 아기를 보러 갔는데, 울지도 않고 너무 순해서 신기했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나도 어릴때 밤마다 우는 예민한 아기였는데 남자친구도 아기 때 그랬다는 얘기를 하자 엄마가 “느그 애 낳으면 우짜노”라고 했다.


아기가 배 속에 있을 때 엄마가 얼마나 마음이 편안했는지는 아이의 정신적인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리고 아기를 낳은 다음에는 세 살이 될 때까지 엄마의 심리상태나 행동양식이 어땠느냐에 따라 아이의 심리상태가 전적으로 결정되어 자아가 형성된다. 우리 가족은 전반적으로 불안감이 높고 완벽주의적이고 강박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어렸을 때 엄마는 우리를 키우느라 버거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할머니와 전화를 하며 우는 모습도 많이 봤는데, 엄마의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그 모습 때문에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를 좋아하지 못했다. 아빠는 우리를 혼자 키우며 버거워하는 엄마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는커녕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재테크, 자식 교육 등의 짐을 엄마에게 전가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엄마처럼 가족에게 희생하며 자아를 잃고 살고 싶지 않았고, 무슨 일이든 겁부터 내는 엄마의 모습이 싫었다. 최근에도 여행을 가자고 해도 익숙한 집 주변에서 산책하는 게 좋다는 엄마에게 나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나는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내가 큰소리를 친 것처럼 엄마보다 잘 살 수 있을까 겁이 난다. 어릴 때는 엄마 아빠가 어른 같아 보였지만 내 지금의 나이에 엄마는 벌써 나를 낳아서 키웠다고 생각하니 엄마의 불안감이 이해가 된다. 엄마도 이런 아빠하고 함께 사느라 참 마음고생 많이 했겠다 싶고, 까다로운 시엄마를 만나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을까 안쓰럽다. 딸은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닮는다는데 내가 결혼이나 퇴사 등 새로운 시작에 대해 겁이 나고 불안감이 높은 것도 엄마를 닮아 어쩔 수 없나 싶었다가, 문득 다시 엄마는 더 겁나는 출산까지 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다시 용감해진다. 


부모님을 탓하고 싶진 않지만 내가 이렇게 오래 방황하는 것도 우리 가족의 강박 성향과 완벽주의에 기인한다. 아빠는 한 번도 출근하기 싫다는 말이나 행동을 보인 적 없는 사람이지만 본인의 직업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에서 의사만큼 힘든 직업도 없다며 직업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은 탓에 나는 학창시절 의사를 진로로 고려한 적이 없었다. 인생네컷 사진보다 엑스레이 촬영이 싼 게 말이 안 된다며 의료수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편 여느 상업적인 ‘장사치’ 의사들과 달리 자신은 양심적인 참의사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 우리 아빠였다. 나도 이런 아빠를 닮아 대학교 시절까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고, 딱히 경제관념도 없었다. 그러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책에서 가난한 아빠의 모습이 우리 아빠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빠가 말하던 ‘장사치’에게 더 배울 점이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아빠는 직업 외에도 어떤 선택을 하든 아쉬운 점을 찾고 말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러한 점을 나도 닮은 것인지 나도 결정과 추진에 있어 미리부터 단점을 다 파악해버리고 결정을 유보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 


엄마는 서울대 수학과를 갈 줄 알았는데 고3 때 방심해서 결국 약대를 갔다. 당연히 재수를 할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가 약대 원서를 썼다고 한다. 약사로 대학병원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수동적인 약사 일에 회의감이 들어 다시 대학을 가려고 퇴사를 했다. 그 후 어쩌다 다시 또 다른 약국에서 일을 하게 됐고, 나를 임신한 뒤에는 일과 육아를 병행할 자신이 없어 일을 그만두고 더 어렵고 캄캄한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다. 엄마도 지금의 나처럼 일에서 추구하고 싶은 이상향이 높고,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높아 ‘내가 여기서 이런 일을 하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힘들었을 것이 이해가 간다. 엄마는 수학을 정말 잘하고 좋아했는데, 학생 때 엄마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서 가면 학원 선생님이 엄마의 풀이법에 놀란 적도 있었다. 엄마는 이렇게 수학 문제와 같이 제한된 세계 안에서 답을 찾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육아와 온갖 가족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답이 없는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게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었을지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간다. 


우리 가족이 세계의 중심이고 엄마 아빠가 최고로 보이던 시간도, 왜 우리 엄마 아빠는 저런 모습일까 잔뜩 원망하던 시간도 좀 지나 내가 결혼할 나이가 되어 보니 이 나이도 별거 아니구나, 엄마 아빠가 함께 살면서 나를 키우느라고 참 마음고생 많이 했겠다 싶다. 그러면서 나도 나중에 아이를 낳게 된다면 아이에게 모범을 보여주어야 할 텐데, 내 마음을 편안하게 잘 다스려야 할 텐데 싶어 갑자기 책임감이 무거워진다. 행복해지려고 하는 퇴사와 결혼에서도 이런저런 각오, 계획, 생각, 걱정에 스트레스를 받아 밥도 많이 먹고, 간식도 자꾸 먹고, 자고 나서도 찌부둥하다. 너무 심각하게 하지 말고, 가볍게 하자. 내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집착을 내려놓자. 불안과 집착과 완벽주의의 피곤함을 나의 자식에겐 절대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이지고잉’하는 남편찾기엔 실패했으나 ‘이지고잉’하고 순둥순둥한 내 자식을 위해서라도 나는 집착과 강박을 내려놓고 자유롭고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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