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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Dec 25. 2023

07. 피할 수 없는 결론

*이 글을 느리게나마 남기는 이유는 조울증에 대한 의학적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겪었던 일과 같은 일을 겪고 있을 분들이 계시다면, 잠깐이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는 - 나만의 일이 아니구나 -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전달해드리기 위함입니다. 왜냐면 제가 일을 겪을 때 이런 이야기들이 너무 필요했거든요. 저는 정신과 질병에서 그 어떤 방법보다도 의학전문가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약물을 포함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제 가족도 그렇습니다. 혹시라도 같은 상황을 겪고 계신다면, 부디 병원의 도움을 받기를 꼭 권해드립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우당탕탕 이뤄진 아빠의 두번째 입원기간은 두달 정도였다. 이 기간은 첫번째 입원보다 유독 어려웠다.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로 인해 면회가 제한됐기 때문이다. 이전 입원의 전체 기간과, 두번째 입원의 초반까지는 주기적으로 방문해 아빠를 모시고 근교 나들이도 가고, 병원 내 면회도 용이했는데 순식간에 코로나가 심해진 이후 병원 통제가 이뤄지며 아빠를 포함한 환자들의 이동과 면회가 제한됐다. 아마 이때 병이 더 악화된 분들이 많지 않았을까? 그 분들은 지금 어떤 기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괜찮아지셨을까?

 접촉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병원 로비에 가서 아빠랑 영상통화를 하는 것 정도가 가능한 전부였고 너무 답답하고 속상해서 병원을 나오다가 차 앞에서 주저앉아서 몇 십분을 울다 온 적도 있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예상 입원기간을 한달 정도로 말했지만, 막상 입원해서 아빠를 보니 증상이 만만치가 않아 좀 더 시간을 달라고 하셨다. 이렇게 진행되는 게 맞나 머뭇거리는 엄마를 거세게 설득한 건 나였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계속 불신이 있었던 거 같다. 좀 더 다른 병원을 가봤어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 입원부터 시키는 게 맞아? 누군가는 우울증인데 잘못 판정한 것 아니냐, 조울증 환자들은 조증일 때 엄청 폭력적이고 공격적이라는데 아빠는 그런 적이 없지 않느냐고 말하고, 무속에 빠져 있는 가족 중 하나는 아빠는 병이 아니라 귀신들림이라고 계속 주장했다.


나는 그냥 시종일관 아무 말도 믿지 않았다. 어찌 보면 시야가 좁은 걸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내 판단은 시종일관 하나였다. 입원 상황에서 판단한 전문가의 진단을 믿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정신병은 본인 스스로도 본인의 병을 인지하지 못한다. 가족도 혹하기 쉽다. 계속 책을 찾아보고 커뮤니티를 둘러보면 조울증 완치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뿐이다. 초기의 조증 삽화 및 자살시도 단계에서 강하게 잡아놓지 않으면 결국 자살로 끝날 확률도 높은 병이다.


우리가 살면서 조울증 환자를 만나볼 일이 몇번이나 있는가.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우리보다 더 많이 만나본 전문가의 말을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입원은 당사자에게 너무나 괴롭겠지만 일종의 실험실 내의 판단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더 올라간다. 나도 그냥 내원 과정에서 조울증 판단이 났다면 어느 정도 추가진단을 받아보자고 했을 것이다.




지독하게 어려웠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아빠는 수시로 전화를 해서 자기를 퇴원시켜달라고, 괜찮다고 반복했고 엄마랑 나는 더 참으라는 말만 냉정하게 하고 끊었다. 나중에는 아빠도 자포자기했는지 더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병세가 완화되서인지 아니면 정말 포기했던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그렇게 길고 긴 2달의 긴 시간이 끝나고 주치의 선생님이 퇴원을 결정했다. 그때 선생님이 하신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퇴원하자고 하니까 그렇게 표정이 밝아지시는데, 저는 입원하시고 그런 표정 처음 봤어요"




 들어갈 때는 그래도 적당히 살이 붙었던 사람이 나와서는 살이 빠져 뼈만 남았다. 퇴원했다고 끝은 아니다. 부모님은 강원도에서 살고 있고, 강원도에서는 우리 식구 입장 상 믿을 만한 병원이 없었다. 그래서 아빠가 입원했던 엄마 외가(전라도 지역) 근처의 병원으로 월에 한번씩 내원을 해야 했다.


초반에 인근의 정신과 (라고는 해도 차로 2시간 이상 가야한다) 에서 우울증으로 잘못 판정을 해서 초반 파악을 놓치고 병이 악화된 경험도 있거니와, 어쨌든 아빠의 병을 잘 아는 분이 계시기 때문에 그게 맞았지만 3개월 정도 해보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인근 도시를 좀 더 찾아봐야 하나? 아빠는 병원을 바꾼다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표했고 엄마는 내원 과정과 그간의 병간호에 지쳐있었다. 큰삼촌이 월에 한번씩 왕복 8~10시간이 넘는 거리를 운전하고 와서 부모님을 모시고 내원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지역 의료 인프라의 부족, 지역별 교통 인프라의 부족. 서울에서 나고 자라 남 일인줄만 알았던 일이 이렇게 갑자기 어느날 나에게 뼈저리게 다가온 것이다. 그 뒤로도 나는 계속 이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게 된다. 한국은 인프라가 좋다고는 하지만 서울 외 지역으로 내려가면 여전히 부족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지금도 만약 우리 집 근처에 믿을 수 있는 병원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 본다.




 그러다 퇴원 후 집으로 돌아가신 뒤 고모들이 찾아왔다. 아프기 전에는 왕래가 잦진 않았는데 아빠의 병으로 인해 아빠 쪽 식구들도 다시 모이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고모들이 찾아와서 부모님에게 했던 제안은 "가장 큰 병원을 가장 전문가에게 진단을 받자" 였다. 가장 큰 이유는 조울증이라는 걸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두번째 이유는 그래도 외가 쪽으로 이동하는 거리보다는 서울 쪽으로 이동하는 거리가 훨씬 짧다는 거였다. 전자는 왕복 8시간이지만 후자는 일부 구간에서 고속버스와 대중교통이 가능하다. 어쨌든 집에서 고속터미널까지만 어찌어찌 오면 - 그것도 기본 1시간 반 이상 걸리지만 - 그 다음은 훨씬 낫다.


 첫번째 의견에 대해서는 나는 극렬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미 입원 통해서 판정이 났는데 왜 이 판정에 대한 신뢰가 없는가? 지금까지 약을 잘못 써서 그런 것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아빠의 상태는 호전이 되고 있었고 병원과 주치의 선생님에 대한 우리 가족의 신뢰도 컸다.


 하지만 또 내가 반대하는 것도 우스운 것이...결국 아빠가 너무나 쉽게 그러자고 했다. 다른 병원으로 옮기자고 했을때는 거부하시던 분이 가장 크고 가장 권위있는 곳에 가자니 지체없이 OK를 하신 것이다. 아마 아빠도 스스로 반신반의 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난 아픈게 아닐 수도 있잖아? 다른 병일 수도 있잖아? 식구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난 위에서 말했듯 지금부터 단 한번도 아빠가 조울증이 아니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이할 정도다.


어떻게 보면 의사들 입장에서는 참 편한 보호자였겠지만 얼마 전 암 말기에 접어든 철학자와 인류학자가 주고받은 편지를 담은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이라는 책을 보다 나온 구절에 문득 마음이 아파졌다. 좀 더 반론을 가져볼 걸. 다른 생각도 해볼 걸. 이런 흔들림 없는 자식을 보면서 아빠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내가 믿었던 것을 실현시킬 기회의 장으로 아빠의 병을 이용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과는 다행히 좋았지만, 그것이 내 합리성(인 척 했던 아집)의 결과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대사회에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설명이나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가 눈앞에 있으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뿌리 깊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그러는 게 합리적이고 편하니까요. 결과적으로 자신이 더욱 괴로워지더라도 말이지요.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대치하기란 힘들고, 계속 화내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한다고 여겨지는 것'에 매달려서 그대로 떠밀려 흘러갑니다.

미야노 마키코, 이소노 마호 지음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두번째 이유는 더 어쩔 수가 없었다. 강원도 정선에서 전주까지 이동하는 건 안막힐때 차를 몰고 안쉬고 가도 4~5시간이 넘는 길이다. 서울대병원 가는 길은 4시간 내외로 시간은 비슷했지만 교통편이 훨씬 편했다. 결국 서울대병원 진료를 받기로 하고, 1달 반 후에 진료를 운좋게 잡을 수 있어 진료 전일에 근처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숙박한 뒤 진료를 받았다.

 당연히 반전은 없었고, 전주의 주치의 선생님이 정확했다. 피할 수 없는 결론이었다. 아빠는 조울증이다. 이제는 이 병을 정말로 받아들여야 한다. 진단을 듣고 나온 가족들은 무거운 침묵 속에 밥집에서 밥을 먹고, 엄마와 나는 다시 한번 의지를 다지고 헤어졌다.


그렇게 다시 강원도로 돌아간 뒤, 서울대병원 내원은 1개월에 한번씩 진행이 됐다. 진료는 짧았고 아빠의 병세는 나아질 거 같지 않아 보였고 옆에서 그런 아빠를 견디고 봐야 하는 엄마의 상태도 점점 나뻐지는 것 같아보였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가, 끝날 것 같다가. 또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상황이 어느덧 2년차를 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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