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즐리컴퍼니가 가격을 정하는 방법
이 글은 회사를 대표하지 않는 의견이자, 컨펌 없이 올리는 저의 개인적인 고찰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와이즐리컴퍼니는 일상을 채우는 현명한 습관이라는 슬로건 아래 성능 대비 뛰어난 가격을 보여주는 커머스 플랫폼이다. 성능은 물론, 와이즐리 사이트에서 가격을 보고 고객이 단번에 파격적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나는 와이즐리에 근무하면서 고객들은 얼마나 싸야 싸다고 느낄지 처절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잘 알려진 대로 와이즐리는 처음에는 면도기로 시작했다. P&G에 다니던 대표가 생각하기에 질레트는 그렇게 비쌀 이유가 없었다. 결국 창업자 3명은 잘 다니던 회사를 나와 직접 면도기 공장과 컨택하며 "최고의 품질, 최저 가격"을 노리고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관련 영상 보러 가기)
그런 DNA를 가지고 있던 와이즐리는 창업 4년이 지나서도 가격을 설정하는데 다소 집착적이었다. 고객 경험에 집착한다는 회사 문화답게, 타사에서 프라이싱하는 방법과 사뭇 다르게 진행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 와이즐리에 입사했을 때 당황스러웠던 당시의 프라이싱 방법에 대해서 털어놓고자 한다.
와이즐리... 너희는, 아니 우리는 모두 변태였어.
단돈 100원이라도
가성비엔 치명적일 수 있어!
내가 처음 입사했을 당시, PM들은 같은 제품 디자인, 설명을 이미지로 만들어 1~2000명의 고객에게 설문조사를 돌렸다. 그리고 NPS(Net Promoter Score)를 측정했다.
위 이미지를 보면, 각 제품의 가격 차이는 단돈 300원이다. 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를 출시하면서 3600원이 좋을지, 3900원이 좋을지, 우리는 이 300원을 가지고 일주일 동안 끊임없이 토론하고 테스트했다. 그리고 어느 가격에서 고객 만족도와 회사 매출이 최적화되는지 계산했다. (결국 3,390원 최저가 선에서 결정이 되었다.)
이 방식은 와이즐리의 1세대 프라이싱 방법론이다. 시장에서 당연시 여기던 관행을 파괴하고, 언제나 최선의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문화가 엿보였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도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고객이 300원으로 인해 갑자기 와이즐리가 초심을 잃었다고 싫어했을까? 하지만 난 신규 입사자로서 회사 문화에 적응하기 바빴다. 모든 의사결정의 최선이란 이런 것이구나 감탄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사이, 회사의 가격 정책이 바뀌었다.
PM들이 프라이싱에 너무 시간을 쏟네.
계산기를 만들자!
PM들이 모든 제품의 프라이싱에 이렇게 일주일씩 시간을 쓰자, 제품 출시 속도가 더 중요했던 회사는 시스템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시장의 규모가 큰지, 가격 인지도가 뚜렷한지, 품질 기준선이 뚜렷한지 정성적인 지표를 정량화한 후, 각 제품의 등급(tier)을 메겼다. 이 등급에 따라 경쟁 가격과 함께 넣으면 뿅! 적정 가격이 나오는 혁신적인 계산기였다.
이 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 해당 카테고리 제품에 대한 품질의 차이를 인지하는지였다. 물티슈를 예로 들면, 원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두께에 따른 품질 차이를 분명하게 인지하는지, 인지한다면 시장에 55g 두께의 물티슈 가격이 어디에 형성되어 있는지 인지하는지를 측정했다.
그렇다. 여전히 없애지 못한 변태력은 남아있었다.
아, 몰라. 원가에 20% 일괄적으로 붙여.
계산기가 있어도 여전히 PM은 품질인지도, 가성비 인지도 등 정량화할 수 없는 정보에 매달리느라 리소스를 쓰고 있었다. 게다가 2세대는 초창기 계산기여서 제품 크기에 비례하는 배송비, 카드수수료 등 판관비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모델이었다. 그래서 두둥! 3세대 계산기가 등장했다.
가장 큰 차이는 경쟁 가격의 반영을 최소화시키는 것이었다. 와이즐리는 모든 제품에 언제나 경쟁 가격이라는 지표가 있다. PM이 설정한 이 경쟁 가격에서 몇 % 이상은 저렴하다는 기준으로 프라이싱이 정해졌는데, 3세대로 넘어오면서 이 기준을 없애고 일관적인 마진율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경쟁가격은 주관성을 띄고, 변동되기 때문에 불안정한 지표이긴 하다.
음, 일관적인 기준이 적용되면서 변태력이 드디어 사라진 것 같았다.
두둥, 제로마진멤버십의 등장
하지만 회사는 4세대 제로마진멤버십(ZMM)이 탄생시키면서 모든 마진을 없애버렸다. 내가 생각하기에 와이즐리 최고의 변태력은 이번에 출시한 제로마진멤버십에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20%씩 일괄적으로 붙이던 마진을 멤버십 고객에 한해 아예 없애버렸다. 그럼 회사는 어떻게 돈을 버냐고? 유료 회원이 10만 명 이상 모이면 우리 월급과 사무실 등 고정비용을 상쇄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프라이싱을 이제껏 복잡하게 하던 PM인 내 입장에서는 나의 모든 것이 까발려진 기분이었다. 고객은 우리의 원가를 알고, 우리가 얼마나 먹는지 이젠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회사가 원가표를 아예 공개해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시장에서 제조사가 얼마나 원가경쟁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회사의 기밀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기밀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고정관념을 회사는 파괴해 버렸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화살은 날아갔다.
이 멤버십 정책을 도입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밤낮을 쏟아부었다.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친다. 한낱 고용인인 나는 회사가 망하지 않게 빌 뿐이다.
참고로 제로마진멤버십은 여기서
우리 회사 망하지 않게 도와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