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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디 Sep 23. 2024

금수저, 녹여버렸습니다

동생 이야기 | 금수저로 태어난 김에 출가했습니다.

이 글은 브런치북으로 엮기 위해 재업로드한 글입니다.
(원문: https://brunch.co.kr/@hhy134/10)


국제사회활동가 워크샵으로 대만에 출장왔다.대만은 건물 외관이 참 허름하다. 근데 내부는 새 건물이다. 지진이 많이 일어나는 땅이라 외관에 신경을 안 쓴다고 한다.


출장 와서 13개국(미얀마, 태국, 인도, 스페인, 대만, 캄보디아, 한국, 캐나다, 스리랑카, 네팔 등)에서 모인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세상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며 자신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세계 곳곳에 사는 걸 보면서 영감을 많이 받고 있다.



승려를 포함해서 나같은 출가자들은 소수다. 온갖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배경에서 온 청년들. 한류(K팝, K드라마 등) 덕분에 굉장히 호의적으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개인이 살아온 배경에 대해서 발표하는 발표 시간이 있었다. 나는 내가 겪은 중고등학교의 경쟁, 그리고 대학 이후에도 비전이 없는 것과 한국의 세계 1위의 자살률, 세계 최저 자살률을 연결해서 발표했다. 깜짝 놀라는 청년들. 

한국, 왜 그래?


엄청난 경제 성장을 한 한국. 그 안에 태어나보니 경제적으로 부유한 부모를 둔 나. 처음엔 금수저가 다른 사람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근데 살다 보니 내가 금수저더라. 물론 나보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도 많다.

하지만 부러울 것 하나 없는 환경에서 자란 나로서도 '감히' 내가 금수저로 자랐다고 생각한다.


금수저 : 부모의 부와 지위 덕분에 노력 없이 그 열매를 누리는 사람들
 - 드라마 '금수저' 기획 의도 중


사람들은 다 부러워하는데,

사람들이 원하는 생활을 하는데

왜 나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다른 길을 가보기로 했다.

'~~ 하면 좋다'라는 세간의 인식에 눈을 감고,

내 마음대로 살기로 한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옷은 아래 사물함 두 칸에 들어가있다. 이 세상에 '내 옷'이라고 말하고 입고 있는 것들. 봄 여름 가을 겨울 - 4계절의 옷.


농사지을 때 입는 일복,

잠자고 생활할 때 입는 생활복,

외출할 때 입는 외출복,

추운 겨울의 필수템 내복까지


계절이 바뀌면 옷장을 뒤집는 것이 귀찮아서, 올인원을 했다.


이번 출장에서 방글라데시 청년이 자꾸 내가 입고 다니는 걸 보면서 웃길래, 왜 웃냐고 했더니 - 방글라데시인 처럼 입는다고.


나는 정리 정돈을 잘 못한다.

작업을 할 때도 섬세함이 떨어진다.


위 사진의 아랫칸 옷장 - 칸 지르는 선반을 직접 제작했다. 오른쪽 열이 삐끗해 보이는 건, 실제로 삐끗해서 그렇다. 길이를 재고 시작한다고 했는데, 다 만들어보고 나니 선반 길이가 모자라서 한 변만 고정이 돼서 그렇다. DIY만의 예술적인 포인트라고 해석한다.




나는 업무 상 통화를 많이 해야 해서 통화 무제한이 필수다. "통화 무제한, 문자 무제한, 데이터 11GB+"알뜰 요금제를 사용한다. 4,500원이다. 멤버십 혜택은 없다. 손품을 팔아서 구한 요금제.


어딜 가든 먼저 챙기는 3가지. 이번 출장에도 함께 하는 텀블러, 손수건, 그리고 수저집. 종이컵, 휴지, 일회용품을 쓰는 내 편리함보다 다회용품을 쓸 때의 만족감을 선택한다.


샤워는 5분 안에 끝난다. 머리는 비누로 감는다. 얼굴도 비누로 씻는다. 샴푸와 폼클렌저 등, 쓴 지 10년이 넘었다.


머리는 짧게 깎는다. 나는 머리숱이 많고, 땀이 많다. 고로 머리가 길면 두피에 땀이 찬다. 그래서 그 핑계로 오직 이발기와 면도날로 시원하게 민다. 너무 바싹 깎으면 깎은대로 혼난다. 스님과 구분이 안된다고.


화장을 안 한다. 선크림은 바르지 않는다. 씻은 후에는 로션을 얼굴에만 한 가지 바른다. 뭘 바르는지는 관계없다. 다만 로션은 3년 정도 실험해 보니, 아예 안 바르면 도리어 얼굴에 뭐가 나더라.




통장 잔고가 0원.

처음 0원이 되기 전에는 엄청 걱정이 됐다.

근데 막상 되고 나니 오히려 고민거리가 줄어들었다.


살까 말까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못 사니까.


목욕탕을 갈까 말까 고민을 안 해도 된다.

어차피 못 가니까.


남들에게 뭘 안 사줘도 눈치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못 사주니까.


내가 돈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주변에 물어본다.

어차피 못 하니까. 그런데 지원을 받으면 할 수도 있으니까. 밑져야 본전.


나는 평생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묶여 살고 싶지 않다. 그러면 먹고, 입고, 자는 곳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돈을 버느라 평생 묶여있고 싶지 않다. 그게 뭐라고, 평생을 전전긍긍해야 하면서 살아야 할까. 그냥 주어지는 대로 먹고, 사람들이 안 입는 옷을 입고, 주어지는 곳에서 자면, 그 시간과 에너지만큼 다른 곳에 쓸 수 있지 않을까. 그 시간과 에너지만큼 더  쓰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돈을 잘만 쓰는 우리 언니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어떤 삶도 "틀린" 삶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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