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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디 Oct 23. 2023

엄마 덕분에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엄마의 죽음을 바라보는 언니의 시선

백만장자(百萬長者, millionaire)는 순자산이나 부가 백만 달러(한화 약 13억)를 초과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 위키피디아


백만장자가 13억부터라면, 나는 상속으로 백만장자가 되었다.


또 다른 절반을 물려받은 동생도 백만장자가 되었으니, 우리 자매는 금수저가 맞는 것 같다.

동생은 비록 출가하며 그 금수저를 녹여버렸지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다.


(참고로 금수저를 녹여버린 동생 이야기는 여기서)




난 동생 몫까지 그 금수저를 열심히 휘젓고 있다.


쌓인 집안일이 하기 싫으면 가사도우미를 부른다. 단돈 6만 원에 내 소중한 휴식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하루가 울적하면 해외로 훌쩍 떠난다. 코로나로 억제된 여행 수요의 대표주자가 나다. 갔다 오면 다음 여행을 위해 더 열심히 일 할 수 있다는 핑계를 댄다.


삶이 울적하면 인테리어 해서 분위기를 바꿔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혼자 살기엔 넓은 집에서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퇴근 후의 삶이 행복해진다.


살면서 부당한 일을 당해도 쫄지 않고 변호사를 쓸 수 있다. 세상 무서울 것이 없다. 요놈, 나한테 잘 걸렸다.


무엇보다 회사가 힘들면 쿨하게 다 때려치워 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덜 받아 더 오래 다니게 된다.


이런 날 보며 이모는 돈 작작 쓰라며 내 등짝을 때린다. 그러면 난 되바라지게 소리친다.

딸 편하게 살게 하려고 부모님이 그 고생하셨는데! 제가 기꺼이 써야 효도죠!

그러고 입만 살았다고 한 대 더 맞는다. 난…34살이다.




엄마는 내가 22살, 동생은 고3일 때 돌아가셨다.

내가 홍콩에 1년 간 교환학생을 갔을 때였다.

엄마도 최대한 버텼던 것 같다. 당신이 죽기에 그나마 괜찮은 시기를.

나는 교환 학기가 다 끝나고 귀국 전 마지막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달려와도 아무런 행정적 문제가 없을 시기였다.


홍콩에서 인천까지, 김포에서 다시 제주도까지, 가는 내내 펑펑 울었다.

다시 제주공항에서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중환자실에서 "엄마 사랑해요"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뿐이었다.

엄마는 내가 도착한 바로 다음 날 돌아가셨다.


장례식장 가는 길, 햇빛이 쨍쨍했다.

나의 세상은 무너졌지만, 이 세상은 여전히 눈이 부셨다.


5월 18일 푸르른 봄날.

사인은 급성 백혈병이었다.



어른들은 우리 자매에게 어린 나이에 엄마가 돌아가셔서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난 운이 좋은 아이였다.


나는 엄마가 없으면 세상이 무너질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옆에 있었다.

엄마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기댈 수 있는 아빠가 있었다.

무엇보다 엄마의 죽음은 나에게 큰 경제력이라는 힘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 경제력은 뭐든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오히려 부모를 먼저 보내는 일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리고 누구나 겪는 일은 누구나 이겨낼 수 있다.

차라리 누구나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은 이겨내기 힘들다. 자식을 떠나보내는 일은 그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자식을 떠나보내놓고 홀로 집에서 멍하니 슬픔을 삼키셨다.

나는 엄마를 먼저 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효도를 다 했고, 충분히 사랑했으니 아쉬울 게 없다.


난 엄마의 죽음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취업 대신 돈이 안 되는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연봉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러 스타트업에 갔다.

하던 일이 질리면 훌쩍 이직을 했다. 연봉도, 네임밸류도 중요하지 않으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있다면 메여있을 이유가 없었다.


다음 갈 곳은 또 다른 회사일수도, 사업일 수도, 아예 다른 나라일 수도 있다.

돈이 없다면 불안해 했을, 이 자유를 맘껏 누리고 있다.




지인들은 간혹 내 "여유"를 부러워한다. 그러면 나는 웃으면서 되묻는다.

너는 네 엄마와 10억을 바꿀 수 있어?

엄마 유산이 있어서 좋다고 하지만, 막상 엄마 돈을 써본 적이 없다. 엄마가 살아있었으면 엄마의 노후였을텐데, 그걸 쓰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이 유산은 엄마의 목숨값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엄마의 유산은 내 노력으로 받은 게 아니니, 적어도 그 돈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싶다. 그 능력을 갖추기 전까지 내 근로소득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있다.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다.

돈이 있다는 생각에 당당해지는 마음가짐.

그걸 내 힘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마음가짐.

엄마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가짐.


나는 엄마 덕분에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비구니 동생이 바라본 엄마의 죽음▼

https://brunch.co.kr/@hhy134/9​



▼비구니 동생이 바라본 아빠 이야기▼

https://brunch.co.kr/@hhy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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