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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디 Dec 09. 2023

효도에 대한 괘씸한 고찰

언니 이야기 | 최고의 재테크 수단은 효도

우리 가족은 고슴도치 마냥 서로 떨어져 지내야 사이가 좋다. 오래 같이 시간을 보내면 싸운다. 아니, 사실 한 명은 일방적으로 혼내고, 다른 두 명은 무시한다.


상관없다. 난 가족 사이에서 진즉 스스로를 불효녀로 포지셔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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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엄마는 돌아가셨고,

동생은 출가해 버렸다.

그래서 더더욱 주위에서 아빠한테 잘하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이제는 아빠한텐 나밖에 없다고.


하지만 나는 뼛속까지 이기적인가 보다. 그런 어른들의 말에 반박하기 바쁘다.

(이모) 하나 남은 아버지한테 잘해야지. 아빠한텐 너뿐이잖니.
(나) 이렇게 살기 힘든 세상, 저 혼자 어찌어찌 잘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효도 아닌가요?
(이모) 그래도 낳아주신 것에 감사해야지.
(나) 에이~ 아빠 본인 욕심에 낳으신 거죠. 제가 낳아달라고 해서 낳았나요?
(이모) 꼭 너 같은 딸 낳아봐야 정신 차리지.
(나) 그래서 안 낳으려고요.
(이모) 그러면 나이 들어서 외로워.
(나) 나이 들어서 이혼할지 사별할지 어떻게 아나요?
(이모) 너... 너 꼭 너 닮은 딸 낳아라.
(나) 그래서 안 낳겠다니까요?


그리고 이모와 나는 같은 주제로 무한 굴레를 반복한다.




우리 할머니도 똑같은 소리를 하신다.

(할머니) 우리 손녀도 이제 좋은 사람 만나야지.
(나) 요새 결혼은 왜 꼭 해야 하나요? 아빠가 부자면 됐지.
(할머니) 그래도 결혼해서 효도해야지.
(나) 에이~ 사별도 할 수 있고, 이혼도 할 수 있는데?
(할머니) 그래도 자식은 있어야 안 외로워.
(나) 자식이 있으면 뭐해요? 제 동생처럼 출가하면 그만인데.
(할머니) 그건 네 동생이 특이한 거고….
(나) 애초에 공부를 못해서 제주도를 안 벗어나는 게 효도예요. 저희처럼 괜히 공부 잘해서 고향 떠나버리면 결국 불효 아닌가요?
(할머니) (질린 얼굴로) 에고…. 머리 아프다. 난 모르겠다.
(나) 공부 잘하는 게 효도가 아니듯이, 결혼한다고 안 외로운 게 아닙니다, 보살님~

모든 건 본인 생각하기 나름이다.

할머니 자식 6명 중 4명은 사별, 이혼, 미혼으로 인해 배우자가 없다. 할머니를 이겨먹는 나는 패륜아에 가까워 보인다.




자식은 부모의 기쁨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 내가 부모님에게 "조건부 기쁨"이었을까.


강아지를 키워도 그 아이가 나한테 와서 재롱을 안 부린다고 화나거나, 괘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식이 공부 잘하길 바라고, 돈을 많이 벌길 바라고, 당신들에게 보답하길 바라는 부모 마음에 자식에게 화가 나고, 괘씸해지는 게 아닌가?


이렇게 살기 힘든 세상에, 부모님은 당신들이 행복하려고 나를 멋대로 낳았다.

그런데도 나는 자발적으로 사회구성원으로서 1인분을 해내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 나는 효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부족하다 하면, 왜 애초에 나를 낳으셨을까?

이런 반항아적 생각에 아빠와 크게 싸우고 멀어졌었다.




이 갈등을 겪는 동안 아빠는 우울해하셨다.

이제까지 열심히 살았는데 허무하셨던 걸까?


환갑이 넘은 나이에 배우자는 먼저 세상을 떠났고,

딸이라곤 둘이 있는데, 하나는 잘 다니던 대학 자퇴하더니 출가해 버리고,

다른 하나는 안 그래도 탐탁지 않은데, 더 탐탁지 않은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했다. 결국 안 했다.


하지만 원인 제공자인 딸 둘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건 당신이 이겨낼 몫이라고.




내가 보기엔 아빠에겐 우울해할 이유가 없었다.


아빠에겐 비록 배우자가 더 이상 세상에 없어도

같이 사는 여동생과 조카들이 있어 집은 언제나 북적북적하고,

언제나 부르면 달려오는 형제자매가 5명이나 있다.


환갑이 넘어서도 아흔 넘은 양친 모두 살아계시고,

1년에 두세 번 해외여행 가고 싶을 때, 같이 갈 친구들이 여럿 있다.


스스로 노년이 외롭다고 생각하시기엔 가진 것이 많았다.

우울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딸인 내가 아니라, 당신 스스로 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우리 부녀는 이런 갈등을 통해 서로 "잘" 떨어져 있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은 그 우울감을 잘 극복하신 듯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그런데, 최근 나만의 효도가 아니라, "세상이 얘기할 법한 효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재테크를 열심히 하는 편인데, 최근 장이 안 좋다.

내가 아무리 아등바등해서 모으고 투자해도, 엄빠가 쌓아온 재산에 티끌이다.

내 최고의 재테크는 효도 아닐까...?
효도가 제일 ROI가 높을 것 같은데?

아, 효도를 해야겠다고 자본주의의 화신인 딸은 생각한다.


문득 뜸해진 안부 전화라도 해봐야겠다.

그리고 깝치지 말고 소소하게 투자하자고 결심한다.



▼상속권을 포기한 착한 동생 이야기▼

https://brunch.co.kr/@hhy134/8


▼스님 동생을 둔 언니의 투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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