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인의 말에 따르면 이 여자의 전생은 크게 세 가지라고 한다. 하나는 춘추전국시대 도교의 수행자로 살면서 이름난 스승들과 이름이 나지 않아도 은둔해 있던 숨은 스승들을 찾아다니면서 공부를 했던 삶이다. 또 하나는 8세기 일본의 천왕가에서 왕족들의 치유사로써 살았던 전생이 있다. 왕족들 중 심리적으로 예민한 대상들을 치유하고 상담하는 삶의 시간이 있었다. 신관으로서 자기 수행과 기도를 끊임없이 하면서 자기 자신을 다스리기 위한 공부와 노력을 했던 삶이다. 다음 생에는 16세기 프랑스 귀족으로 살았었는데 오리엔탈리즘이나 고대의 신비 등을 연구하고 탐구하는 삶이었다. 세 전생 모두 영적인 영역에서의 공부가 많았던 시간이었지만 적극적으로 지식과 학문을 나누고 베풀었던 삶의 경험은 부족했던 면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생의 영적 자아는 오랜 시간동안 지속되어온 연결점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이끌고 도울 수 있는 그런 영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한다.
여자는 30년의 생에서도 심리학 공부를 선택했다. 집안에서 도울 수 없어도 운명처럼 이끌리는 마음 공부에 대한 열망을 이기지 못했다. 사람들을 돕겠다는 의지는 있었지만 그녀가 알지 못하는 카르마가 있었다. 과거 생 내내 남들과는 다른 영적인 삶을 살아온 그녀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다른 사람을 낮춰보는 습(관)이 있었던 것이다.
그 카르마를 해소하기 위해 신은 끝없이 그녀가 소외되고 힘겨운 삶을 살도록 여자의 인생을 설계했다. 끝없이…아주 끝없이 하나를 해결했다 싶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도록 모든 것을 무너트렸다. ‘이래도 너 남들을 무시하며 살거야? 이래도?’라고 신은 물었다. 여자는 탁월함을 추구하면서 겸손해야하는 인생의 과제를 아직 풀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신의 메시지는 그녀를 주기적으로 영적 위기 상태에 몰리게 했는데, 그때마다 여자는 모든 관계를 내려놓고 남들의 시선을 견뎌내야 했다. 마지막 영적 위기에서는 궁지에 몰려 여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만다. 말그대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초라해진 여자는 그제서야 그녀의 카르마를 벗어던지게 된다. 그녀는 벌거벗은 아이처럼 아무것도 없는 존재라는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이제 여자는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