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이다.
나와 언니 오빠는 엄마에게 수시로 전화했지만 아침만 되면 긴장돼서 손이 떨렸다. 전날 밤 무슨 일이 있었을지 두려웠다. 잘 주무신 날에는 우리도 하루 방긋했고, 그렇지 않고 묶이신 날에는 하루 종일 심장에 무거운 추를 메달고 살았다. 우리 역시 툭하면 눈물이 났다. 이 어쩔 수 없는 비극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으니까.
아빠의 입원기간이 길어진 것은 아빠 뇌에 있는 암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을 하려면 붓기를 낮추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스테로이드를 투여하고 있는데 아빠 뇌막에 존재하는 자잘한 종양 때문에 섬망 증세가 계속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 수술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는 날이 다가왔다. 나는 신랑에게 아이 둘을 맞기고 오빠와 함께 병원에 갔다. 의사를 만나기 전 엄마의 말을 들었다. 최종 결정자는 결국 엄마이니까 말이다. 그동안 오며 가며 의사나 간호사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니 엄마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뇌종양 수술의 경우 수술 직후 섬망이나 이상 증세가 나타날 수 있으며, 수술 후 약 한 달을 재활치료를 해야 한단다. 이 한 달 재활치료에 벌써 기가 질려버렸다. 지금 단 며칠 병원에 있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거닐며 잠 한 숨 못 자고 버티어내고 있는데, 이런 증세가 더 할 수도 있는 데다가 협조도 안 되는 치매환자를 재활치료를 할 수나 있을는지... 무엇보다 그 걸 엄마가 버텨줄 수 있을는지, 아무리 우리가 옆에서 번갈아가며 해도 말이다.
치매환자는 평소 살아온 익숙한 환경에서는 일상생활도 무리 없이 하고 심신도 안정되지만, 환경이 바뀌면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도 한다. 아빠의 경우도 환경이 바뀌면 잠 못 자는 건 제쳐두고 이상 행동을 많이 한다. 소변 실수 같은 건 예사고 자꾸 나가려고 한다거나 이상한 말을 하고 방향을 못 찾기도 한다. 게다가 그 환경이 병원이라면 이상행동은 더욱 심해진다. 결국 재활치료는 거의 불가능할 것인데, 그를 시도할 여력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단 며칠 병원 입원만으로도 이미 쓰러지기 직전이었으니 말이다.
엄마에게 보호자를 하루라도 바꾸자고 설득해도 엄마는 부득불 자신이 한다 했다. 엄마는 자신 대신 우리 자식이 그 고생을 하는 것도 불편하거니와, 자식과 남편은 병원서 못 자고 고생하는데 자신만 집에서 편히 잘 수도 없다 생각하셨다. 그렇게 생각하셨더래도, 강하게 우겨서라도, 하루라도 교대했어야 했는데 뒤늦은 불효자의 후회다.
엄마는 아빠의 수술은 수술 후 오히려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며 그러느니 익숙한 집에서 편히 보내드리는 게 낫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병원이 지옥이라고 하셨다. 엄마의 말을 아빠는 멍하니 듣고 있다. 아니 듣지 않으실 테다. 아빠의 정신은 과거 어디쯤에 있던지, 아니면 아무 곳에도 없었을 테니까.
우리는 의사를 만나기 전 결정을 내려야 했다. 뇌종양 수술을 할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뇌종양을 안고 집에 갈 것인지. 엄마의 의견이 수술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향했으나 선뜻 말로 꺼내질 못하셨다. 수술이라는 기회를 놓치는 건 아닌지,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병원에서 수술해주겠다는데 거절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자신이 남편을 살릴 기회를 놓치는 건 아닌지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나는 설득했다. 아빠가 편한 방향으로 하자고. 엄마의 결정이 최선이라고. 아빠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 거니까 죄책감을 느끼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아빠의 의견을 물어보자며 물어보신다.
"당신 수술하지 말고 집에 갈까? 수술하면 오래 병원에 있어야 된대."
"그래... 집에 가자."
최종적으로 아빠의 의견을 듣고 아빠 휠체어는 오빠가 밀고 긴장에 차가워진 엄마 손을 잡고 우리는 의사를 만나러 갔다.
아빠의 머리 엑스레이 사진을 봤다. 그 안에는 골프공만 한 하얀 덩어리가 잡혀있었다. 의사는 말했다. 이번 수술은 이 종양을 제거하는 것인데 수술을 한다고 해서 왼쪽 시력이 돌아오진 않는다고. 그럼 섬망 증세는 없어지느냐 물었으나 그도 아니라고 했다. 뇌막 전체에 자잘하게 암이 퍼져있어서 그것 때문에 나타나는 섬망이라 이번 수술하고는 관계가 없단다. 그러고는 수술 일정을 얘기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지금 같은 이상행동은 계속하는 것이고 시력저하도 돌이킬 수 없고 그저 큰 종양만 없애는 것이다. 방사선 치료도 감마나이프 시술도 모두 했으나 종양이 없어지질 않았으니 방법은 수술뿐이라고. 그리고 이미 5년 전 폐암 발병 때 뇌에 종양이 있었는데 그동안 문제가 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라고. 수술을 하기 전과 후가 나아질 게 없고 오히려 재활치료에 더 힘들어지는데 왜 수술을 하자는 건지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그저 목숨만 이어나가자는 것인가... 하루하루가 지옥이 더래도?
그럼에도 엄마는 수술하지 않겠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오빠도 못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선생님. 수술 후 재활치료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지금 상태와 크게 다른 게 없다면......"
의사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가족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
이다음 말은 생각이 안 난다. 의사의 표정이 굉장히 아니꼬운 표정이었다는 것 정도 밖에는. 마치 '내가 해주겠다는데 감히 너희가 안 한다고 해? 뭘 안다고 의사도 아니면서 판단을 해. 의사가 하람 하는 거지.' 뭐 이런 느낌이었다. 환자와 보호자의 삶의 질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안 해본 그냥 직업이 의사인 철저한 타인. 그 타인의 냉랭함 속에 나는 긴장 때문만이 아니라 세상의 무정함에 몸을 떨었다. 나는 병원에 가면 그 무정함에 매달려야 하는 철저한 약자임을 깨닫는다.
수술을 안 하겠다는 결정을 하기 까지, 그리고 그런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깊은 고민과 슬픔이 있을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철저하게 분리된 다른 세계 사람이 저 의사였다. 그냥 우리가 의사인 자신의 결정대로 끄덕거리고 빨리 이 방을 나가줘서 다음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만 느껴졌다. 그러한 그 의사에 대한 내 느낌이 순전히 내 오해이길 바란다.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당신도 우리와 같은 아픔을 꼭 겪길 바란다고 생각하며 병실을 나왔다. 우리는 다시 로비 의자에 앉았다. 엄마 등을 쓸어드리며 잘 결정한 거라고. 얘기해드렸으나 엄마는 "너희 아빠 불쌍해서 어쩌냐..."라면서 눈시울을 붉히셨다. 아마 그 날 우리가 가고 난 후 더 우셨으리라. 안 그래도 병원에서 빼짝 말라가는 엄마 이건만 얼마나 눈물을 더 빼셨을지 모르겠다. 그 눈물조차 너무 아까웠다. 점점 엄마가 말라가니까.
수술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이틀 후 아빠는 퇴원했다. 퇴원 후 상태가 더 나빠졌을까 봐 걱정했던 우려와는 달리 아빠는 상태가 더 좋아지셨다. 입원 전 혼자 배회하던 이상행동도 줄어 엄마도 좀 덜 긴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더 이상 아빠의 병세를 위해 다니던 대학병원에서 해줄 건 없었다. 그래서 조금 가까운 병원으로 전원 했다. 그리고 아빠의 상태는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했지만 그 방향은 항상 내리막이었다. 이제는 병원조차 갈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