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youngKim Jan 19. 2021

"숨결이 바람 될 때"

슬픔을 슬픔으로 달랬다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 숨결이 바람 될 때, 아침의 피아노, 나는 간호사입니다'

내가 슬플 때 찾아 읽은 책이다.


어느 청명한 가을날, 갑작스러운 동료의 비보를 들었던 때.

아빠가 치매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아빠의 병환이 급속히 진행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러한 때 슬프고 심란한 속을 달래려 내가 읽었던 책이다.


아빠의 병이 깊어가는 고비마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함을 느꼈다. 어느 때고 갑자기 침통한 전화가 걸려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나는 그러한 고비 때마다 병에 걸려 죽어가는 삶을 쓴 에세이를 찾아 읽었다. 명목은 마음을 준비하기 위해 책으로라도 그 상황에 나를 먼저 넣어보자는 것이었지만 그 이유만으로 그러한 책이 끌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 감정을 깨닫지 못하니 비슷한 얘기를 읽고 글에 나타난 감정을 내 감정으로 체화한 건지 모르겠다. 글들을 통해 나는 내 감정을 대신 풀어내었다. 내가 어떤 기분인 것인지 아빠의 깊어가는 병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어떤 기분인 건지 모호하다는 느낌이 맴돌았다. 슬픈 것은 맞지만 진짜 슬픈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슬픔을 스스로 견딜 수 있도록 미리 연습하는 것이기도 했다.


책들을 읽으며 비통하고 슬프고 무서운 죽음과 고통을 글로 대신 느꼈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밤에 무서워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처음엔 내 인식 저편에 있다가 나 나이 서른이 되자 내 친척들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서른 중반이 되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까지 오더니 이제는 아빠에게로 바짝 다가오고 있었다. 그 어둠이 나를 덮치지 않으리라는 보증은 없다. 결혼 전엔 무섭지 않았건만 이제는 그 무엇보다 무섭고 잠이 안 오기도 한다.


사후세계에 대해서 흥미로 많이 읽고 알아보던 이십 대였지만 난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더 두렵다. 내가 이럴진대 죽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던 이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래서 부모님을 생각하면 어찌 견디고 계신 건지 걱정된다. 견디지 않음 어쩌겠니라고 얘기하실 분들이지만 그들이라고 두렵지 않을까.






최근엔 더 이상 슬픈 에세이는 읽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그런 에세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저 지금 상황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책 속 타자의 슬픔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난 5월 어버이날에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