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병이 깊어가는 고비마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함을 느꼈다. 어느 때고 갑자기 침통한 전화가 걸려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나는 그러한 고비 때마다 병에 걸려 죽어가는 삶을 쓴 에세이를 찾아 읽었다. 명목은 마음을 준비하기 위해 책으로라도 그 상황에 나를 먼저 넣어보자는 것이었지만 그 이유만으로 그러한 책이 끌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 감정을 깨닫지 못하니 비슷한 얘기를 읽고 글에 나타난 감정을 내 감정으로 체화한 건지 모르겠다. 그 글들을 통해 나는 내 감정을 대신 풀어내었다. 내가 어떤 기분인 것인지 아빠의 깊어가는 병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어떤 기분인 건지 모호하다는 느낌이 맴돌았다. 슬픈 것은 맞지만 진짜 슬픈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슬픔을 스스로 견딜 수 있도록 미리 연습하는 것이기도 했다.
책들을 읽으며 비통하고 슬프고 무서운 죽음과 고통을 글로 대신 느꼈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밤에 무서워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처음엔 내 인식 저편에 있다가 나 나이 서른이 되자 내 친척들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서른 중반이 되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까지 오더니 이제는 아빠에게로 바짝 다가오고 있었다. 그 어둠이 나를 덮치지 않으리라는 보증은 없다. 결혼 전엔 무섭지 않았건만 이제는 그 무엇보다 무섭고 잠이 안 오기도 한다.
사후세계에 대해서 흥미로 많이 읽고 알아보던 이십 대였지만 난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더 두렵다. 내가 이럴진대 죽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던 이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