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빠는 보통 누워 계시고 식사 때에나 겨우 앉으신다. 너무 누워만 있으니 몸이 퉁퉁 부으셨다. 시간 개념, 공간인지, 시력, 청력, 균형감각 모두 잃어가는 아빠.
아빠는 폐암이 뇌로 전이되어 치매가 되셨다. 한 계절 한 계절 지날수록 급격히 달라지는 아빠를 본다. 작년 이맘때 아빠는 정신이 왔다 갔다는 했어도 집안일도 하고 눈도 치우셨다. 올 해는 하루 대부분을 누워 있고 혼자 다른 세상에 가 계시다.
저녁 즈음 아빠는 누워있다가 뭐라뭐라 하시더니 앉으려 한다. 이젠 말씀도 알아듣기 어렵다. 뭐라고 하시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씻는 사이 아빠랑 나 둘만이 있을 때 아빠가 이상한 말이나 행동을 하면 어째야 할지 몰라 덜컥 겁이 난다. 갑자기 상소리 하거나 화내는 건 아닌지, 내가 부축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쓰러지시는 건 아닌지 두렵다. 오늘도 그런 와중이었다.
앉으시려는 걸 남편 도움으로 겨우 앉혔다. 아빠는 일어날 때 필요한 균형감각과 몸의 근육 사용과 팔다리 사용법을 거의 잊어버린 사람 같다. 그래서 보통 아파서 힘없는 사람을 일으켜주는 거보다 세네 배는 힘들다. 아빠가 자세를 바꿀 때 힘을 엉뚱한데 주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와 남편의 도움으로 겨우 앉자 아빠는 어서 전화해보란다. 어디다 하냐고 묻자 집에 가야 된단다. 우리는 지금 집에 있는데 말이다. 내가 뭐라 대답해야 하나, 전화하는 시늉을 할까 망설이는 사이 아빠는 성질이 나기 시작했는가 보다. 나를 향해 짐승처럼 이를 드러내며 표정이 사나워진다. 저 표정 낯설다. 아빠가 아프기 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다. 그리고 아빠가 이상한 소리 하실까 겁난다. 심장이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빠가 뭐라 하든 감내하기로 다짐했다.사실대로 말했다.
"아빠 우리 집에 있어요." "그... 그래?"
우리 집이라 하면 거짓말한다고 난리 치거나 못 알아듣고 집에 전화하라 닦달할 줄 알았는데 아니다. 아빠는 당황한 눈치다. 본인은 지금 다른 곳에 있다는 느낌이겠지만 무언가 모르겠는 거다. 익숙한 것 같기도 하지만 낯설기도 한 것이다.
나는 이어서 아빠에게 나를 소개했다. "아빠. 저 막내딸 소영이예요. 김소영." 그제야 표정이 누그러진다. "맞아. 소영이. 소영이네 집이지." 아빠는 세상이 낯설다. 그러나 막내딸 이름은 기억나시나 보다. "엄마는 씻어요." "씻어?" "네. 화장실에서 씻고 있어요." 엄마 얘기까지 하자 안심하신다.누그러진 아빠 표정 따라 내 심장도 누그러진다.
소영... 아빠가 나 태어날 때 직접 사전 찾고 획수 맞춰가며 지어주신 이름이다. 그 아빠에게 당신이 제일 사랑했던 막내딸이 직접 이름을 소개했다. 아빠의 사라져 가는 기억 어딘가에 내가 조금이라도 숨어있길, 그래서 부르면 나타나 주길 바라면서...